국회에 원전 위험 감시기구 설치해야

"가동기한이 지난 원전도 안전성이 담보되면 연장해서 쓰고, 짓던 것도 잘 지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안전’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확인했는가이다. 지난 9월 25일 열린 제222회 및 10월 23일 223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는 우리의 원전 안전심사가 정말 믿을 수 있는지 의문을 남겼다.

심사 대신 ‘통과를 위한 절차’

회의의 주요 안건은 고리2호기 수명연장과 사고관리계획서 승인이었다. 사고관리계획서가 무엇인가? 안전을 예방하고 사후조치의 방안을 구체화하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아닌가? 그러나 이에 대한 심사는 깊이 있는 검증이라기보다 형식적인 절차에 가까웠다. 위원장은 “그건 기술원이 검토할 사안”이라며 책임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넘겼고, 위원들도 대부분 그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결국 감독기관이 기술기관의 판단을 그대로 따라가는 구조가 드러났다. 감독기관은 기술기관과 달라야 한다. 독자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의 검증과정이 있어야 하고 그걸 국민에게 공유할 의무가 있다. 국민이 기대한 ‘안전 확인’은 사라지고, ‘서류상 안전’만 남은 셈이다. 가장 심각한 직무유기다.

 

23일 서울 중구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고리원전 2호기 수명연장 심사 중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0.23 연합뉴스
23일 서울 중구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고리원전 2호기 수명연장 심사 중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0.23 연합뉴스

중대사고를 ‘가벼운 사고’로 축소

심사보고서에서는 중대사고 시나리오가 7건만 제시됐다. 그 중 다수는 실제 대형사고가 아니라 일상 운전 중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의 사고로 평가됐다. 냉각 불능이나 격납건물 손상 같은 중대 위험은 빠졌고, 결국 사고의 심각성을 축소해 평가한 셈이다.

이런 방식이면 방사선 피폭량도 실제보다 적게 계산될 수밖에 없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요구하는 “설계기준을 넘는 복합재해 평가”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지금 한반도에서 사고가 나면 풍향이나 해수로 인해 이웃국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원전사고는 본질적으로 국제문제인 것이다. 국제기구가 요구하는 설계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로서의 직무유기다.

격납용기 우회사고 - ‘괜찮다’ 한 줄로 끝난 위험

보고서에는 격납용기 우회사건(방사능이 직접 새는 사고)에 대해 “냉각수 주입으로 방지 가능하다”는 한 줄 설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실제 사고에서는 밸브 고착이나 배관 파손 등으로 냉각수 주입이 실패할 수 있다. 이런 불확실성을 구체적으로 검증하지 않은 채 ‘관리 가능하다’고 결론 낸 것은 안전 철학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지진 평가의 불투명성

내진성 평가도 문제다. 보고서는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지진(BDBE) 을 직접 해석하지 않고 전원상실 시나리오로 대신했다. 이렇게 되면 지진이 구조물이나 배관에 미치는 직접 피해가 빠진다. 게다가 그동안 조사평가된 고리 지역의 활성단층 재평가 결과(0.2g 초과 가능성) 가 심사에 반영됐는지도 불분명하다. 결국 “지진에도 안전하다”는 결론은 충분한 검증 없이 내려진 셈이다.

노후 원전의 피로와 부식 문제

오랜 가동으로 인한 금속 피로와 환경피로(부식·온도 영향) 문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보고서는 “설계 수명 내에서 안전하다”는 문장으로 끝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기준에 따르면 수명연장 시 피로누적도(CUF)를 새로이 계산해야 하지만, 우리 심사보고서에서는 이런 과정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즉, 시간이 만든 위험을 평가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의 책임은 사라지고 숫자만 남았다

이런 기술적 문제보다 더 심각한 건 규제기관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사 과정에서 핵심 질의나 재검토 요구는 거의 없었고, 위원장은 “추후 보완하면 된다”며 의결을 마무리했다. ‘사고 가능성은 낮다’는 통계만 믿는다면, 그건 안전이 아니라 위험의 합리화다.

‘안전의 정의’를 되찾아야 한다

원전의 수명연장은 단순히 기술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사회적 책임이다. 지진 평가의 불투명성, 중대사고 축소, 피로 문제 미검증, 그리고 규제기관의 무기력한 태도가 이어진다면 “안전하다”는 말은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진짜 안전은 숫자가 아니라 끝까지 확인하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주민 공청회에서 제시된 전체의견 267건 중 21%(57건)만 반영했지만 79%는 반영하지 않았다. 반영하지 않은 사유가 전부 ‘작성요령과 무관’이라는 동일한 사유로 일괄 기각되었다. 하지만 반영하든 안하든 제시한 주민에게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수명연장의 속도가 아니라, ‘안전의 정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국회가 교차감시하는 체제를 갖춰야

행정부 산하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만 맡겨둘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아졌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원안위는 행정부 산하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비호할 수밖에 없다. 본 센터의 주장처럼 국회가 교차감시해야 선진국과 같은 감시체계가 확립될 수 있다.

그런 교차감시체제라야 이번 고리2호기의 결함도 투명하게 조사하여 평가하고 이를 국민에게 떳떳이 내놓고 평가받을 수 있다. 대통령이 ‘안전하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을 때는 그만한 객관성을 갖추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이고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갈 민족에 대한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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