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 작전 범위, 인도·태평양 확대

핵추진 잠수함 계획의 '실체' 불분명

"아직은 동맹 단결 보여준 상징 수준"

이재명, 대외 리더십·대중 요구 부응

한국 대선, 미국 의회 승인 등 '난관'

"정당성 유지하려면 투명성 보여야"

"워싱턴이 오랫동안 미뤄온 서울의 핵(원자력) 추진 잠수함 개발 허용 결정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커지는 신뢰의 신호로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했지만, 이면을 보면 이야기는 더 복잡하다." 

국제 관계와 동아시아 안보를 전문가인 제이슨 콕스 해군사관학교 강사는 '핵잠수함과 제한적 자율성, 진화하는 한미동맹의 논리'란 4일 자 <더 디플로매트> 기고에서 지난 30일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요청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승인'과 관련해 이렇게 운을 뗐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핵추진 잠수함 계획의 '실체' 불분명
"아직은 동맹 단결 보여준 상징 수준"

먼저 콕스는 트럼프의 승인을 "실제 프로그램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고 봤다. 그는 "트럼프의 '청신호'는 작업 승인이라기보다는, 무역과 에너지 회담 이후 신뢰를 보이고 단합을 강화하려는 계산된 신호였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번 거래에서 한국이 승인받은 핵추진잠수함 계획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그 근거로 △ 아직 어떤 구체적 계약도 맺지 않았고 △ 한미 원자력협정(2015년 개정) 상 핵연료 주기 관련 제한 사항을 아직 수정하지 않았으며 △기술적 세부 사항 중 어떤 것도 확정하지도 않은 점 등을 들었다. 트럼프가 '프로세스' 없이 승인했다는 얘기다. '실체'가 있는 정책이라기보단 아직은 한미동맹의 단결을 보여주는 '상징'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견해다.

 

미국 해군 로스앤젤레스급 핵 추진 잠수함 '알렉산드리아 함'(SSN-757·6900t급)이 10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1991년에 취역, 국내에 처음 입항하는 이 잠수함은 길이 110m, 폭 10m, 승조원 140여 명 규모다. 2025.2.10. 연합뉴스
미국 해군 로스앤젤레스급 핵 추진 잠수함 '알렉산드리아 함'(SSN-757·6900t급)이 10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1991년에 취역, 국내에 처음 입항하는 이 잠수함은 길이 110m, 폭 10m, 승조원 140여 명 규모다. 2025.2.10. 연합뉴스

"트럼프, 핵추진 승인하고 경제 실익"
승인 약속했지만 들어간 '비용' 없어

콕스가 보기에, 이번 승인 과정에서 드러난 건 전략적 호의와 경제적 양보를 교환하는 동맹관계에 대한 트럼프의 거래 지향적 관점이다. 콕스는 "서울에서 이런 패턴은 분명했다"며 "트럼프가 핵추진 잠수함을 지지함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은 에너지 수입 확대, 미국 조선업 투자, 반도체 협력을 약속했다. 그 발표는 억지력과 무역 간의 연결고리를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화 그룹이 최근 인수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할 걸 제안함으로써, 트럼프는 산업 정책을 국방 협력으로 재정의했다. 트럼프는 이를 '동맹국들이 미국 안보에 투자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트럼프의 승인 약속엔 '비용'이 들지 않은 데 반해, 한국엔 "기회와 더불어 수년간의 협상, 투자, 인내가 필요한 의무도" 떠안겼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1.1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1.1 연합뉴스

이재명, 대외 리더십·대중 요구 부응
"한국이 더욱더 미국 정치에 노출돼"

이번 거래에서 이 대통령이 얻은 것도 있다. 대외적 리더십을 보여주면서 더 강력한 억지력을 원하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게 됐다. 그러나 부담도 생겼다. 뭣보다 한국이 더욱 더 미국 정치에 노출되게 됐다는 것이다. 첫 핵추진 잠수함을 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기로 함으로써, "미국의 산업 및 정치 사이클에 묶였다"고 우려했다. 능력을 확보했지만, 일정한 제약이 뒤따르는 셈이다.

이에 콕스는 "이 대통령은 자신의 (동맹) 현대화 노력을 예측 불가한 파트너와 연계함으로써, 거래 외교가 국가의 자율성을 제약하기보단 제고할 것이란 '계산된 리스크'를 떠안았다"며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면서도 인정받고자 하는 이런 긴장은 '비대칭 동맹'의 본질이다"라고 진단했다. 미국의 '약속'과 관련해 앞으로 한국은 계속 '재확인'함으로써 의존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재확인을 요구할 때마다 되레 의존도 높아지는 위험이 있다고 콕스는 예상했다.

 

 22일 경남 거제 한화오션에서 열린 장영실함(장보고-Ⅲ, Batch-Ⅱ 1번 함) 진수식에서 강동길 해군참모총장,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 변광용 거제시장 등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3600t급 장영실함은 수중작전 지속 일수가 기존함보다 향상됐고, 세계 최고 수준의 디젤 잠수함이다. 2025.10.22 연합뉴스
 22일 경남 거제 한화오션에서 열린 장영실함(장보고-Ⅲ, Batch-Ⅱ 1번 함) 진수식에서 강동길 해군참모총장,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 변광용 거제시장 등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3600t급 장영실함은 수중작전 지속 일수가 기존함보다 향상됐고, 세계 최고 수준의 디젤 잠수함이다. 2025.10.22 연합뉴스

트럼프 '극적 승인'…건조에 최소 10년
한국 대선, 미국 의회 승인 곳곳 '난관'

트럼프의 극적인 승인으로 시작됐지만, 한국의 핵추진 짐수함 건조까진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해군에 따르면, 미국의 도움을 받아도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최소 10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콕스에 따르면, 새로운 원자로 기술, 훈련된 인력, 확실한 자금이 필수적인데 이 중 현재 갖춰진 건 아무것도 없다. 소형 원자로와 필요한 안전 프로토콜을 숙지한 해군 요원도 몇몇에 불과하다.

또한 10년 이상이 걸릴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5년 단임의 대통령제인 한국으로선 다른 정권이 들어설 경우 프로젝트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에 콕스는 "선거 때마다 이 프로젝트가 국가적 우선순위로 남을지 아니면 당파적 상징으로 전락할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에도 유사한 제약이 있다. 핵추진 기술의 이전은 미 의회의 승인과 부처 간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콕스는 "명확한 로드맵이 없으면 이 프로젝트는 희망 사항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성공은 수사보다는 일관된 거버넌스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8일 평안남도 남포조선소를 방문해 북한의 첫 번째 5천t급 신형 구축함 '최현호'의 무장체계 통합운영 시험 과정을 점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2025.8.19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8일 평안남도 남포조선소를 방문해 북한의 첫 번째 5천t급 신형 구축함 '최현호'의 무장체계 통합운영 시험 과정을 점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2025.8.19 연합뉴스

한반도 넘는 파급 효과…핵추진 도미노?"
"정당성 유지하려면 투명성을 보여줘야"

이번 결정은 한반도를 훨씬 넘어서는 파급 효과도 지닌다. 콕스가 보기에, 수십 년 동안 미국은 핵비확산조약(NPT)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 제공을 신뢰하는 극소수 파트너들로 제한했다. 2021년 호주에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제공할 오커스는 이미 그 한계를 확장했다. 이번에 한국에도 승인함으로써 그 한계를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자칫 일본·캐나다·브라질 같은 역량 있는 국가들이 유사한 합의를 모색할 수 있고, 그 결과, 핵추진이 주요 강대국 지위의 상징으로 '새로운 기준'이 될 우려도 있다. 중국은 이를 미국 주도의 '해저 연합'의 또 다른 단계로 보고 있다. 동맹국들의 반응도 미묘하다. 호주는 더 강한 한국을 지지하지만, 오커스((미·영·호)가 희석되는 것을 우려하고, 일본은 재래식 한계에 대한 논쟁에 직면하고 있다. 콕스는 "정당성을 유지하려면 서울은 투명성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3자 협의 틀을 통해 책임 있는 관리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없으면 이 구상은 원칙에 근거했다기 보단 정치적으로 보일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월 31일 경북 경주시 라한셀렉트호텔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환영 만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5.11.1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월 31일 경북 경주시 라한셀렉트호텔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환영 만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5.11.1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한국 해군 작전 범위, 인도태평양 확대
장거리 순찰은 경쟁국들의 감시 촉발

핵추진 잠수함의 전략적 의미는 물론 크다. 콕스가 보기에, 핵 추진 잠수함은 한국 해군의 작전 범위를 서해에서 더 넓은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장해, 미국·일본 파트너들과 함께 대만과 루손 해협 근처에서 순찰을 가능하게 한다.

콕스는 "추진력이 '존재'를 결정한다. 해양 전략에서 '존재'는 곧 힘이다. 한국에 원자력 추진의 주된 혜택은 지구력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지구력'이란 잠수함이 인도·태평양의 필수 해상 교통로 전역을 무대로 배치되어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지다. 디젤-전기 잠수함은 연안 해역을 방어할 수 있지만, 장거리 순찰을 위한 항속 거리가 부족하다.

더 큰 작전 범위엔 더 큰 책임이 뒤따른다. 장거리 순찰은 동맹국들의 기대를 높이고 경쟁국들의 감시를 끌어낸다. 콕스는 "베이징이 서울은 '비확산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상기시킨 건 (핵추진 잠수함의) 지구력이 전략적 모호성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우려를 시사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도쿄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핵추진을 향한 한국의 기동은 2021년 오커스 때 그랬듯이 조용하게 다시 '균형' 논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일본, 대만을 잇는 해역은 공유된 지리적 공간에서 '적응 경쟁'의 영역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거기에선 억지력이 더 분산되고 상호의존적이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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