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문제'가 제기하는 민주공화국의 원칙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요즘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 문제로 사회 일각에서 격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헌법학자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중대한 문제이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자, 입법부와 사법부가 갈등하고 있는데 이는 쉽게 결말이 날 것 같지 않다. 대선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대법원장이나 판사들을 국회 청문회에 세워야 한다는 민주당 주장과 그것이 삼권분립 원리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삼권분립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과연 대법원장이나 판사는 탄핵 대상이나 국회청문회 대상이 될 수 없는 걸까?

삼권분립은 국가권력을 입법·행정·사법 셋으로 나누어 상호 견제와 감시를 통해 권력 독점과 전횡을 막고 국민주권과 국민 기본권 수호의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설계된 원리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삼권분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국민주권과 민주공화정 수호라는 목적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주로 근대사회의 출현과 함께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한 원리로서 시민혁명을 통해 법률제정권을 군주로부터 분리해 의회에 부여함으로써, 군주의 전횡으로부터 새로 등장하는 시민과 자본 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조직원리이다.

그러나 삼권이 분립되어 독립적 권력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런 감시와 견제도 받지 않고 국민과 동떨어져 마음대로 권한을 휘두르라고 있는 원칙은 아니다. 입법 사법 행정 삼권은 분리되어 있고 독립되어 있는 권력이지만 서로 견제와 감시를 하도록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는 사법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리이다. 사법부 독립의 본질은 단순히 사법기관을 어떤 견제도 없이 맘대로 운영하라는 허가증이 아니라 법관 각각의 ‘재판의 독립’을 가리키는 것이다.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 개입 의혹 청문회'에 불출석한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출한 '출석 요구에 대한 의견서'를 공개하고 있다. 지난 5월과 이번에 제출한 불출석 의견서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2025.9.30. 연합뉴스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 개입 의혹 청문회'에 불출석한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출한 '출석 요구에 대한 의견서'를 공개하고 있다. 지난 5월과 이번에 제출한 불출석 의견서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2025.9.30. 연합뉴스

그런데 정치 현실을 보면 수단인 삼권분립의 원리가 그 목적인 국민주권의 원리를 침해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민주공화국을 수립한 사람들은 주인인 국민주권의 원리를 실현하라고 삼권분립이라는 종을 들였는데, 그 종이 오히려 주인을 부리려 하는 꼴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법은 행정의 일부분으로서 간주됐고 그래서 로크는 행정-입법 이원론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역사를 보면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은 그 주도권을 놓고 끝없이 갈등했는데,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하다. 입법부가 선거로 당선된 국민의 대표로 구성되는 반면, 행정부는 대통령 등 일부 선출직 공무원을 제외하면 모두 공무원들로 구성되어 있고, 사법부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국민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즉, 사법부는 어느 누구도 선거로 선출되지 않는 판사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국민주권 원리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행정부와 충돌한 것은 야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였는데, 왜 이제 와서 사법부가 전면에 등장했을까. 제 1공화국 이래 야당을 중심으로 하는 국회는 군사독재 권력에 맞서 그야말로 치열한 투쟁을 전개해 왔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권력은 온갖 정치공작을 동원해 의회 권력을 회유 억압해 왔다. 심지어 박정희는 유정회라는 기괴한 단체를 설립하면서까지 의회 권력을 통제하려 했으나 끝내 민주항쟁으로 무너졌다. 그 과정에서 사법부는 대체로 독재 권력에 부역해 온 것이 사실이다. 로크가 주장했듯이 사법부는 행정부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정부 수립 이후 특히 1987년 6월항쟁 이후 이 나라의 검사 판사들은 군인들이 물러간 자리에다 사법권력을 형성하고 ‘전관예우 혹은 전관비리’로 통칭되는 그들만의 특수이익을 위한 성역을 구축해 왔는데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그것이 진실로 위태로워지자 이익 수호에 적극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입법부와 사법부 충돌의 이면에는 민주정과 귀족정 사이의 충돌이 있다

귀족정과 민주정은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충돌한 이래 끝없이 갈등해 왔는데,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에서 다시 요란한 충돌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일하는 중산층과 민중들은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에게 의회 다수당과 행정권력을 부여해 민주정을 완성시켰는가 했는데, 여기에 갑자기 사법부가 대선에 개입함으로써 귀족정을 유지 내지는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물론 합리적 자본은 이재명 정부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다수의 자본 관료 언론 등 기득권 이익집단은 삼권분립을 부르짖고 있는 사법부를 지지함으로써 구체제를 떠받들고 있다고 보인다.

시민혁명의 역사는 봉건주의 귀족정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의 도전을 받고 패퇴하고 말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행정 입법 사법 삼권은 결코 동등하지 않으며 입법부의 우위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입법부는 민주적 정통성에서 우위에 있다. 국회는 국민의 직접적인 선거를 통해 구성되므로, 국민의 주권적 의사를 가장 잘 반영하는 기관으로 간주된다. 국민의 의지는 오직 입법권만을 통해서 나타나며, 국민주권 원리야말로 민주공화정을 실현하는 핵심 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의 결정을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오늘날 전자정보화 시대에 이를수록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보인다.

특히 로크, 몽테스키외, 루소, 시에예스 등 근대 정치 법철학자들은 행정권과 사법권은 입법부가 만든 법률을 집행하고 해석하는 권한을 가질 뿐이므로, 입법권이 모든 권력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로크는 의회를 통해 행사하는 입법권을 최고의 권력으로 보았으며, 사법권은 집행권의 일부로서 집행권과 함께 한 기관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소는 <사회 계약론>에서 주권은 국민 전체에게 속하며, 주권자는 오직 입법권을 통해 일반 의지를 표현한다고 보았다. 집행권은 이미 제정된 법을 실행하는 권리로, 이는 정부나 집행기관이 담당하고, 사법권은 법을 해석하는 기관으로 주권자의 의지에 따라야 하며, 행정권이든 사법권이든 그들 스스로의 독립된 의지란 국민주권과는 다른 별개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민주권론에 의하면, 권력분립원리는 반드시 채택해야 하는 필수적 원리가 아니라고 제시한다.

이런 시각에서는 오직 입법부만이 국가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할 주체이다. 오직 국민의 대표인 의회만이 국가의 방향과 운영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만 작동한다. 사법시험으로 공무원이 된 판사들이 어떻게 국민의 아픔을 알 것이며 그들을 대변하겠는가. 우리 헌법에서도 국회는 행정부에 대한 예산 승인권, 국정감사권, 탄핵소추권 등을 가지고 있으며, 사법부에 대해서는 법률 제정을 통해 그 구조와 권한을 설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입법권 우위론에 대한 비판 및 반론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주로 귀족정이 최고의 정치체계라고 주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후학들로서 헌법학계와 법조계 일부는 입법, 행정, 사법 3부가 상호 대등하며, 어느 한 권력이 다른 권력보다 우위에 있다는 주장은 권력 분립 원칙에 어긋난다고 비판한다. 이 견해에 따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국회가 만든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심사할 권한(위헌 법률 심판)을 가진다. 이는 사법부가 입법부를 견제하는 핵심적인 장치로, 사법권과 입법권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근거가 된다. 이는 물론 국민의 기본권이 입법부의 자의적인 입법으로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이다. 바로 우리 헌법이 갖고 있는 공화제의 한 측면이다.

그런데 근대 세계사를 돌아보면 사법부 판사들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 기여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판사들은 '법복 귀족'으로서 행정부의 일원으로서 민주주의 발전을 끝까지 막았던 앙시앵 레짐에 부역했다. 프랑스 혁명에서 루이 16세보다 먼저 단두대에 올랐던 사람들은 법관들이었다. 당시 최고법원이었던 고등법원은 혁명 발발 이듬해 바로 폐지됐다. 고등법원 판사들은 재판 당사자들에게 뇌물을 받는 일이 횡행했고 각종 세금과 징집 면제 등 특권을 누렸으며 세습했다. 그들은 귀족이 아니었지만 또 하나의 특권계급이었다. 그들은 노동자 농민 등 평민에게는 한없이 가혹한, 귀족과 대부호에게는 더없이 너그러운 판결을 내렸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법부가 보호하고 있는 국민은 누구일까? 조희대 대법원장은 어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법원에 올라온 이재명 재판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고법으로 파기 환송한 것일까? 지귀연 판사는 어떤 국민을 위해 날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전례가 없는 방법으로 윤석열을 석방했을까? 인혁당 사건과 수많은 간첩 사건에서 보듯이 많은 국민들이 판사들의 잘못된 판결로 큰 고통을 받은 적이 있다.

지난 대선에서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은 사법부 수장이 스스로 사법부 독립, 삼권분립의 원칙을 깨고 국민주권의 핵심인 대통령 선출권을 탈취하려 시도한 중대한 헌정 파괴 의혹 사건이다. 그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사법부의 정치 개입을 차단하고 국민주권 원리와 삼권분립의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법제사법위원회 청문회는 물론 국회 국정조사도 못 할 이유가 없다. 우리 국회법 121조는 ‘위원회는 특정한 사안에 대하여 질문하기 위하여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감사원장 또는 그 대리인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고 명기하고 있다. 대법원장을 청문회에 부르는 건 삼권분립을 침해하는 행위가 아니라, 법률에 입각해 입법부의 사법부 견제라는 삼권분립 정신을 실현하는 행위인 셈이다. 또, 국회사무처가 발간한 ‘국회법 해설’을 보면, “국회가 독자적인 진실규명, 정치적 책임 추궁, 의정자료 수집 등의 목적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국정감사 및 조사를 진행한다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정감사 및 조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중인 사건도 사안 성격에 따라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제 우리 정치권과 언론은 왜 우리 국민이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행정권과 입법권을 민주당에 몰아주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사법권의 독립은 판사가 아무런 견제와 감시 없이 판사 마음대로 자의적 판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사법부는 성역이 아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기관이든 모든 행위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이다. 사법부의 판결이 국민주권의 원칙을 침해했는데도 국민의 대표가 불러서 따져 묻지도 못한다면 이 나라는 민주국가도 아니요 법치국가도 아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지귀연 부장판사는 국회청문회에 출석하여 국민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정이다’라고 할 때 ‘민주’가 앞에 위치해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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