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 입맛에 맞춘 러시아 교육
2022년 2월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사회에 수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그중 하나는 교육과 학교의 일상이다.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 정부는 교육 관련 법안을 다수 통과시켰고 교육계를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어 보면 독재 정권이 사회를 엄격히 통제하고자 할 때 특히 신경 쓰는 영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동과 청소년의 교육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학교에서부터 지도자에 대한 충성,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의 형성, 권력에 대한 복종 같은 ‘가치’를 심어 주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교육계에서 일어난 변화는 이 소설 속 상황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 있다.
러시아를 조지 오웰의 ‘1984’처럼 만들려는 새 역사 교과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역사 왜곡이다. 예전에 <민들레> 칼럼에서도 언급했듯 러시아는 2023년부터 중고등학교 역사 수업용 새 교과서를 만들어 전국 학교에 의무화했다. 전국의 학생들이 이 한 권의 교과서로만 러시아 역사를 배우게 되었고, 그 결과 역사 해석의 다양성이 사라지게 됐다. 2023년 7월 새 교과서가 발표되자 많은 논란이 일었다. 러시아의 고대 역사뿐만 아니라 특히 현대사까지 왜곡했고, 교과서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팩트처럼 서술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교과서는 역사 전문가가 아닌 메딘스키 전 문화부 장관이 집필한 것이다. 그는 여러 차례 물의를 일으킨 발언으로 악명이 높은 대표적인 푸틴 지지자다. 새 역사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 푸틴의 말을 인용할 만큼 현 정부의 입맛에 맞는 책이라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교과서 내용은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부정하거나 우크라이나 민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 전쟁을 정당화하는 어조로 가득하다. 이 교과서는 통계의 조작, 근거 없는 주장, 그동안 가설 정도로 여겨지는 것들을 사실처럼 묘사하는 방식으로 편향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 교과서만 보면 러시아는 1차 세계대전도, 2차 세계대전도 외부 도움 없이 승리했으며 소련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였고 미국 때문에 쇠퇴했지만 지금은 되살아나고 있다는 식의 서사가 펼쳐진다.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유일하게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나라는 러시아라는 식의 내러티브다. 중세와 고대 역사에서도 왜곡이 많다는 지적이 다수의 역사학자들로부터 제기되었다. 현재 러시아에서 역사가 정치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가장 뚜렷한 사례라 할 만하다.
새로 시작된 정신교육 수업, 쫓겨나거나 감옥에 가는 교사들
학교의 일상도 많이 달라졌다. 교사는 정부 조직에 속한 공무원이기 때문에 전쟁을 ‘전쟁’이라고 부를 수 없고, 무조건 찬성해야 한다는 비공식적 지침이 내려졌다. 전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새로운 지시를 거부한 교사는 해고되거나 투옥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몇몇이 그런 운명을 맞이하자 나머지 교사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러한 환경에서 ‘더 이상 교육을 할 수 없다’며 떠나는 교사도 있었고 해고되는 교사도 생기면서 인력난이 벌어졌다. 러시아에서는 애초에 교사 연봉이 낮아서 교사직의 인기가 높지 않았는데 현재 분위기에서는 신규 인력이 더더욱 유입되지 않는 바람에 남아 있는 교사들의 업무량이 배로 증가한 문제도 생겼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 발발 이후 전국의 초중고 학교에서 ‘Разговоры о важном’(‘중요한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라는 이름의 정신교육 수업이 새로 의무화되었다. 정부가 이 수업을 개설하며 공식적으로 밝힌 취지는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 국민 등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 학생들이 쏟아지는 뉴스의 폭포 속에서 중요한 것을 걸러내고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수업”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설명과 거리가 멀다. 러시아 국기의 역사나 일상 속 운동의 필요성 같은 유익한 주제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매우 편향적인 주제들이다. 우크라이나 민족을 조롱하거나 미국을 폄하하고 전쟁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빈번히 등장한다. ‘전선의 병사에게 편지 쓰기’ ‘전사에게 따뜻한 양말 짜 주기’ ‘나치화된 우크라이나의 몰락이라는 주제로 그림 그리기’ 등 이른바 ‘애국’을 중심으로 한 수업이 진행된다. 과거 북한 학교에서 아이들이 반미 교육을 받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현재 러시아에서도 이런 일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 수업은 전국 모든 초중고에서 월요일 아침 첫 수업으로 30분 동안 진행된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2분간의 혐오’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학교와 교장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수업이 의무이기 때문에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학생들이 이 수업 시간에 집에서 하지 않은 숙제를 하거나 다른 주제로 담화하는 등으로 대신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다만 그런 행위가 발각되어서는 안 된다. 푸틴 지지 성향의 학부모가 이를 알게 되면 교사를 경찰에 고발해 해고되거나 최악의 경우 감옥에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어머니와 자식이 배운 전혀 다른 역사
이런 변화는 생각보다 위험하다. 중고등학교 시절이 기억난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소련 해체 이후의 새 러시아였기 때문에 교육 내용이 부모 세대 때와 많이 달랐다. 고등학교 때 역사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2차 세계대전 수업에서 선생님의 설명이 유독 흥미롭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오늘 배운 것을 말했더니 어머니는 충격을 받으셨다. 내가 말한 내용은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에 불가침조약이 있었고 이후 스탈린이 핀란드를 침략했지만 패배했다는 것이었는데 어머니 세대는 전혀 다르게 배웠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소련과 나치 독일 간에 불가침조약이라는 것이 미국이 만든 거짓 뉴스이고 핀란드가 소련을 침공했고 소련이 승리했다고 배웠으며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아예 참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이 단독으로 전쟁을 이끌어 세계를 구했다는 식으로 배웠다고 나를 가르쳐 주시려고 했다.
이런 지식의 차이가 다시 생길 것이라는 점이 개인적으로 가장 큰 우려다. 소련 시절의 교육을 받은 세대가 왜곡된 서사를 배운 것처럼 현재 러시아 학교의 학생들도 비슷하게 교육받을 가능성이 크다. 1930년대의 독일 나치즘과 같은 극단적 이데올로기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다시 살아나 그 나라가 나치화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파괴해야 한다는 거짓말을 기반으로 한 논리, 러시아 역사에서 전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다는 역사 왜곡, 미국과 나토가 러시아를 멸망시키려고 한다는 주장 등 선동적 서사가 교육을 통해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그런 환경에서 자란 세대가 과연 건강한 사회와 정상적인 외교를 펼칠 수 있을지 몹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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