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고기', 가난한 노인들에 관한 젊고 새로운 영화
영화 <사람과 고기>는 영국 사회주의자 감독 켄 로치의 <빵과 장미>를 연상케 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지만, 장미만으로도 살 수 없다. 사람은 고기 없이 살 수 없지만 고기만 먹고서도 살 수가 없다. 고기는 사람들과 같이 먹어야 맛이다. <사람과 고기>는 고기를 같이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고기는 특별할 게 없다. 삼겹살이다. 조금 더 가봐야 등심이다.
고기 먹고 튀는 세 남녀 노인들의 웃픈 무전취식기
고기는 말고, 같이 먹는 사람들이 특별하다. 극중 인물은 셋이다. 남자 둘이고 여자는 한 명이다. 남자 둘은 48년생과 45년생으로 80대이고 여자는 70대이다. 이 셋의 공통점은 늙고 돈이 없다는 것이다. 남자 둘은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는 노인들이다. 여자는 채소 행상으로 살아간다. 이 셋은 어느 날부터, 같이 고기를 먹으러 다니며 이른바 먹튀를 한다. 먹튀는 먹고 튀는 걸 말한다. 무전취식이다. 돈 안 내고 슬쩍 도망가는 것이다. 이들 셋은 서울 일대 고깃집에서 유명한 먹튀 노인 3인방이 된다.
남자 둘이 줍는 폐지는 킬로당 60원이다. 노인 형준(박근형)이 종일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한가득 폐지를 주워 온다 한들 받는 돈은 1300원가량이다. 또 다른 노인 우식(장용)은 그보다 더 시정이 좋지 않다. 이 둘은 어느 날 길거리에서 박스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다 치고받는 주먹질에까지 이른다. 이들의 싸움을 지켜본 할머니가 채소 행상 백화진(예수정)이다.
싸운 두 노인은 화해 과정에서 고깃국 한번 끓여 먹자는 얘기를 나눈다. 고깃국은 의외로 요리법이 섬세하다. 고깃국을 계기로 셋은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먹튀 노인이 되기 시작한 건 우식의 제안 때문이다. 처음엔 쭈뼛쭈뼛 어색하고 힘들지만, 도둑질도 하다 보면 늘기 마련이다. 특히 이 먹튀 작전은 머리가 좋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치고 빠지기를 잘해야 한다. 같은 음식점을 다시는 가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고 고깃집이 있는 동네도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잡히지를 않는다. 노인 셋을 심문하던 경찰도 서대문 은평 노원 등등, 엄청나게 다녔다며 혀를 내두른다.
영화 <사람과 고기>는 노인들에 관한 얘기이다. 고기가 먹고 싶어 무전취식을 하는 노인들을 소재로 다룬다. 이들이 고기 고기 하며 살아가는 것은 고기 자체 때문만이 아니라 남들처럼 살고 싶어서, 남들과 섞여서 살고 싶어서, 엄연히 자신들도 이 사회의 일원임을 스스로 느끼고 싶어서이다.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얘기이다. 모든 행동의 동기는 복합적이다. 노인 셋은 당연히 각자의 사연이 기구하다. 폐지를 줍고 행상으로 나서기까지, 거기까지 ‘내려’ 오기까지 이런저런 일이 많았을 것이다.
자식들에게 의절 당한 노인, 간암 말기 노인, 야채 행상 노인
젊었을 때 ‘쓰레기’ 같은 인물이던(가정폭력 등) 형준에게는 브라질과 불란서로 떠난 아들 둘이 있다. 당연히 일절 연락이 없다. 아마도 의절 당한 것으로 보인다. 셋 중에서 유일하게 집이 있다. 사는 집은 낡고 오래됐지만 비교적 멀쩡한 편이다. 문제는 20년 넘게 연락이 없는 아들의 명의로 돼 있어 재산세를 비롯한 여러 세금과 공과금 내는 데에 쓸 돈이 없다. 그래서 종이박스를 줍고 다닌다.
노인 형준에 비해 노인 우식의 사연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나머지 두 명에게 ‘먹튀’를 가르쳐 준 장본인이 바로 우식이며 그는 자신의 ‘범죄행각’에 그다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간암 말기 환자이다. 노인 형준이 버럭 화를 내며 이제 (간에 좋지 않다는) 고기 같은 거 먹지 말라고 하자 우식의 답이 걸작이다. “아, 형님. 우리 같은 사람은 고기를 먹어도 죽고, 고기 안 먹다 감기만 걸려도 죽어요!” 이들은 다시 고기를 먹튀하러 다니고 결국 꼬리가 길어 밟히게 된다.
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많다. 길에서 사는 노인들, 거리로 내몰려 몸을 파는 여성들, 버려진 아이들, 성소수자들 등등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들이 지닌 대개의 공통점은 ‘돈이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듯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노인 셋에 판결을 내리는 재판장은 이들을 벌레 바라보듯 하다가 우식의 반발을 산다. 판사의 판결문은 이러하다. ‘자영업자들은 물론 전 사회 구성원들을 경악하게 할 만한 추태를 부렸다는 점에서 상습사기 혐의를 적용한다’라는 것이다.
돈 없는 노인에 대한 경멸은 세대 문제인가, 계급문제인가
돈이 없는 노인들은 지금의 우리 사회에 이른바 중층 모순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약한 고리이다. 젊은 세대 중 일부는 자신들이 낸 세금이 무턱대고 노인들 사회복지에 쓰인다고 반발한다. 게다가 사회는 점점 고령화 되어 간다. 노동 연령층은 줄고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하는 연령층은 늘어간다. 젊은 세대들의 계급의식이 이기적으로 되어 가고, 점차 우경화하는 것은 이처럼 인구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 <사람과 고기>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드는 얘기이다. 돈 없는 노인들은 누구인가. 우리 자신들이 아닌가. 돈 없는 노인들이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수렁의 한 가운데 빠진 존재들은 아닌가. 우리 모두 언젠가 곧, 세대 또는 계급 차원에서 이들과 같은 처지에 빠질 우려는 없는 것인가. 세대 간 문제가 계급의 문제와 결합하면, 그래서 그 두 가지의 모순이 합해지면 사회는 휘청거린다. 사회는 병이 든다. 간암 말기인 영화 속 우식처럼 치료하기 힘든 세상이 되고 만다.
이상하고 기이하게도 <사람과 고기>는 아주 그렇게까지 우울한 분위기는 아니다. 먹고 나서 몰래 빠져나가 추적을 피해 뛰어 도망 다니는 셋의 모습은, 다소 한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프랑수아 트뤼포의 전설의 영화 <줄 앤 짐>의 남자 둘과 여자, 그 셋을 닮았다. 한 쪽은 생존이고 한 쪽은 유희지만 세상에 반항한다는 측면에서는 웬지 닮은꼴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과 고기>를 만든 감독 양종현이 <줄 앤 짐>을 참조했을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오히려 <줄 앤 짐> 얘기를 꺼내면 불쾌해할 수도 있겠다. 계급적인 면에서 결이 다른 두 작품을 등가로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어제(9월 26일) 폐막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영화제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늙었지만,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이 젊고 새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형, 장용 두 노배우의 연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일품이다. 배우가 늙으면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일상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몸에 연기가 배어 있다는 것은 이 둘만이 아니라 연극무대에서 다져진 연기파 배우 예수정에게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연기는 가혹한 연습과 치열한 정신으로 완성돼 나가는 척 사실은 삶의 경륜이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을 여기 세 명의 배우는 여실히 증명해 낸다. <사람과 고기>는 뛰어난 소품이다. 저예산 독립영화가 어떠한 결기로 지금의 세상을 뚫고 나가려 하는지를 역설해 낸다.
결국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마음속이 처참하지만, 영화 속 형준처럼 허허, 낄낄대며 버텨나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영화 <사람과 고기>를 보면 삶에 대한 성찰을 얻는다. 영화를 보면서 그만큼 좋은 일은 없다. 10월 7일 전국 개봉한다. 극장 수는, 늘 그렇지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영화는 좀 찾아다니며 볼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