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혁신당 비판할 자격 없는 이준석과 국힘
클릭 장사하며 대립과 갈등 조장하는 주류언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성차별적 사회와 구조
왜 강미정과 피해자들이 당 떠났을까 돌아봐야
진정성 사라진 '영혼 없는 절차'가 낳은 결과인가
공동체 문화를 바꾸며 신뢰 회복의 기회 삼아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국혁신당 성폭력 사건은 이준석 의원, 국민의힘, 조선일보 등이 주장하듯이 '진보의 위선과 민낯, 진보정당에서 일상화된 성폭력'을 보여주는가? 그렇지 않다. 이 사건은 구조적 성차별과 폭력, 가부장적 남성중심주의 문화의 뿌리 깊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준석, 국민의힘 등은 이것을 옹호 강화해온 주범들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고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던 보수적 정치세력과 집단에서 성폭력 사건들이 벌어져도 공론화가 쉽지 않고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우연이 아니고, 단지 그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인격의 문제도 아니다. 이들은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에 벌어지면 성찰하기보다, 피해자를 공격하기 바쁘다. 바로 얼마 전 '고 장제원 성폭력 사건'에서 바로 그랬다.
문제는 반페미니즘적 보수우파가 옹호해 온 성차별적 사회와 구조 속에서 누구도, 성평등과 진보적 가치들을 지지해온 이들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조국혁신당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은 누구든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우리 단체는, 저 사람은, 나는 그럴 리가 없다’라는 확신이야말로 가장 피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더구나, 거대 자본과 국가 권력을 욕하기보다 자신을 성찰하는 것, 멀리 있는 가해자를 비난하기보다 가까이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가해자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언제나 더 어렵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진보진영과 운동사회 내에서도 성폭력 사건은 항상 해결이 어렵고 불신과 갈등으로 연결돼 왔다.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꼬이게 하는 것은 주류언론의 자극적 클릭 장사와 보수우파의 정략적 접근과 악용이다.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들어 민주진보 진영을 공격할 기회로만 여기며 대립과 갈등, 2차 피해를 조장한다. 이번에도 이 사건을 다루며 공격하는 언론과 보수 정치인들의 의도는 공공연하게 드러났다.
대부분은 2019년 검찰-언론의 조국 마녀사냥에 앞장서거나 동참했던 이들이었다. 조국혁신당이 추진하는 사회 개혁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중단시키고 싶어하던 이들은 갑자기 '피해자 중심주의가 중요하고 2차 가해를 방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문제 해결이나 피해자 치유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안희정 사건의 피해자 김지은 씨는 "직업윤리나 별다른 의도조차 없이 트래픽 조회 수에만 관심있는 기자들이 많았다. … '너는 이 취재 요청에 응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마구잡이였다"고 돌아본다.(<김지은입니다>) 성폭력 사건을, 평소에 싫어하던 정치인이나 세력에 대한 공격 기회로 여기는 태도도 문제다.
최근에도 또다른 한 진보정당에서 내부적 다툼 속에 불거진 과거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그런 식의 접근과 피해자 의사도 거스른 강제 공론화는 지켜보기가 괴로웠다. 그 사건을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활용하는 단체나 개인, 언론들에게서 피해자의 의사나 고통은 별로 고려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접근은 가해자와 소속 집단을 사라져야 할 구제 불능의 괴물처럼 묘사한다.
따라서 일방적 매도와 비난만 남는다. 그러나 성폭력은 일부 개인과 특정 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 규범, 문화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절대로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고 지도부가 앞장서 조직적 2차 가해를 한 것 때문에 민주노총에서 연대 단절까지 하게 된 운동 단체인 '노동자연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들만 사라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대리인으로 활동하면서 항상 노동자연대의 문제점과 잘못뿐 아니라 장점과 기여도 인정하면서 잘못을 성찰하고 반성과 사과로 다시 연대하자고 촉구해 왔다. 반면에 조국혁신당은 적어도 피해자의 요구에 따라서 가해자를 징계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사과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왜 피해자들은 당을 떠나고 강미정 전 대변인은 공개 기자회견까지 하게 됐을까? 이러한 공개적 문제 제기는 언론과 외부 세력의 개입과 온라인 공방 속에서 문제가 뒤틀리고 피해자들을 더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보통 피해자들은 내부에서 문제 해결이 실패하고 더 이상 기대를 잃게 되면서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게 된다.
이것은 진정성이 사라진 기계적 문제 해결 과정과 '영혼 없는 절차'가 낳은 결과로 보인다. 조국혁신당은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다른 사회개혁의 과제들보다 덜 중요한 나중의 문제'라고 판단한 것 아닐까? 방어적 자세로 조직에 끼칠 피해를 더 걱정하며 문제 해결을 외주화한 것이 아닐까? 권위 있는 외부에 문제 해결을 위탁하지만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와 노력은 보이지 않았던 것 아닐까?
가해자에게 최고의 징계를 내리지만 그것은 공동체적 해결보다 꼬리 자르기로 다가온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2차 피해 예방'을 이유로 쉬쉬하고 문제 해결과 신뢰 회복을 위한 소통까지 사라지면 거꾸로 피해자는 더욱 고립되고 소외감으로 빠져든다. 금이 간 신뢰는 더욱 무너지며 문제 해결은 진실게임으로 변질되고 온갖 불신, 음모론, 원망이 자라난다.
그리고 원망은 시야에서 사라진 가해자가 아니라 힘겹게 문제 제기를 한 피해자를 향하게 된다. '원하는 대로 다 해줬는데 엉망이 됐고 조직이 힘들어졌다'라는 원망은 무분별한 2차 가해로 발전하고, '사회 개혁을 위해 소중한 조직과 지도자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거꾸로 조직의 심각한 위기를 가져오는 역설과 악순환이 시작된다.
실제로 조국혁신당 주요 당원들이 SNS에 올렸다는 '피해자 때문에 모두 힘들다', '당을 흔들고 있다', '이게 그토록 중요한 일이냐'는 발언들은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피해자의 불신을 더욱 강하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공동체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잘못을 바로잡아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피해자는 또 다른 늪에 빠졌다는 절망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거듭 말하지만 사회구조는 물론 공동체 문화가 바뀌지 않은 채, 가해자만 가장 강력하게 처벌하고 징계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 처벌로만 갈등을 다룰 때, 가해자의 처벌이 끝난 자리에는 또 다른 가해자가 들어올 것이며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결국 규정과 절차대로 가해자를 처벌했지만, 피해자의 상처는 더 커졌고, 공동체는 혼란과 위기에 빠지고, 피해자도 가해자도 지켜보던 사람도 모두 곪아가는 상처와 불신을 안고 마음의 문을 닫고 하나둘 조직을 떠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전형적인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의 실패 이후에 나타나는 상황이다.
"공동체 성폭력 사건은 그 사건 자체는 물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무수한 ‘신뢰의 위기’를 초래한다. 이 위기를 잘 다루지 못한 경우, ‘규정에 정해진 대로 절차는 다 끝났는데, 달라진 건 별로 없고, 피해자는 탈퇴하고, 남은 사람들은 아무도 그 얘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전희경, <공동체 성폭력 '이후',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정무적 감각과 판단'이나 '정치인답게 잘 해결하려는 자세'가 아니다. 성폭력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안전한 공간이라고 착각하지 않고, 단지 가해자를 도려내는 게 아니라 어떠한 조직 문화가 그러한 성폭력을 낳았는지 성찰하고 오류 속에서 배우며 변화할 수 있는 용기와 자세이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친밀하던 관계들 속에서는 가해-피해가 어지럽게 섞여 있거나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건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누구든지 얼마든지 잘못할 수 있고, 문제는 무엇이 잘못인지 인식하고 고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더욱더 차별과 폭력에 민감하고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성폭력과 성차별적 조직 문화는 구분되기 쉽지 않으며 조직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진정으로 해결됐다고 느낄 수가 없다. 외부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얻고 조언을 듣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대신해서 해결해 줄 수는 없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스스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들에게 위안을 주고 다시 신뢰를 갖도록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신뢰의 회복이고, 따라서 성폭력 사건은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아니라 함께 돌아보고 배울 수 있는 공동의 기억으로 남겨야 한다. 더불어서 피해자도 잊혀지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용기 있게 나서서 공동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꿀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돼야 한다.
즉, 지금 조국혁신당이 직면한 고통스러운 시간은 오류 속에서 배우며 더욱 건강한 공동체로 변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피해자가 상처를 벗어나 조직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가해자가 반성 속에서 거듭나고, 공동체는 교훈을 배우며 더 성장할 수 있다. 성폭력을 낳는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문화를 함께 바꿀 힘을 키우기 위해서도 우리에게는 더욱 많은 미투Metoo와 위드유Withyou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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