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의 고액 주택수당 특혜 폭로가 발단
프라보워 대통령 예정됐던 중국, 일본방문 취소
중국 저가품 대량유입+트럼프 관세로 수출 부진
불평등·부패와 싸우는 상징 ‘해적 깃발’ 앞세워
대량 해고가 이어지는 악화된 고용환경 속에 고액 봉급을 받는 국회의원들이 거액의 주택수당까지 받아 온 사실이 폭로되면서 지난 25일부터 수도 자카르타에서 시작된 인도네시아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시위로 지난해 10월 출범한 뒤 최대의 시련기를 맞고 있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정권은 예정돼 있던 대통령의 중국과 일본 방문을 출국 직전에 취소했다.
시위는 31일에도 계속돼 동부자바 주도인 수라바야에서 경찰청이 시위대의 방화로 불타고 약탈당했다고 CNN방송이 1일 보했다. 방송은 또 재무부 장관 집이 시위대의 습격을 받아 불탔으며, 정치인들 집들도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최근 수십년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최악의 반정부 시위사태라는 이번 시위로 이날까지 적어도 5명이 숨졌다. 정당 및 이슬람 지도자들과 연일 대책회의를 열고 있는 프라보워 대통령은 이날 시위의 발단이 된 국회의원들의 특혜를 없애는데 각 정당 지도자들이 동의했다며, 경찰에 과잉진압 자제를 호소하는 등 민심을 달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일부 시위에 “테러와 반역의 조짐이 있다”며 군과 경찰에 강력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프라보워 대통령 중국, 일본방문 취소
이에 앞서 30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프라보워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8월 31일 중국 톈진에서 개막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초청받아 참석할 예정이었으며,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릴 항일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 열병식에도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그는 또 중국 방문에 이어 일본 방문 일정도 조율 중이었다. 시위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모든 외국방문 일정들을 취소했다.
프라스티요 하디 국무장관은 30일 “대통령은 시위 동향을 직접 살피고 지도해서 최선의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며 “겸허한 마음으로 중국 정부에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 이번 초청에 응하기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공식 발표했다.
노동자 대량해고 속 국회의원들 고액 특혜 폭로
25일 자카르타에서 시작된 이번 시위에는 대량해고 등 고용환경 악화에 따른 노동자들 불만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올해 1~6월에 약 4만 2000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당했으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2%나 늘어난 것이다.
중국 저가품 대량유입+트럼프 관세로 수출 부진
이런 고용사정 악화에는 섬유제품 등 중국의 값싼 제조업 물품들의 대량 유입에 따른 인도네시아 제조업체들의 고전,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19%의 상호관세를 부과한 트럼프 관세로 인한 수출 부진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액의 봉급을 받는 국회(하원)의원 580명이 지난해 9월부터 매월 1인당 5000만 루피아(약 430만원)의 주택 수당까지 받아왔다는 사실이 최근에 보도를 통해 드러나면서 시위에 불을 붙였다.
25일 자카르타의 국회 주변에서 시작된 대규모 시위에 경찰은 1200명의 진압부대를 투입해 370여 명을 붙잡아 구금했다. 28일 4천 명 이상으로 불어난 노동자, 학생 시위대는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자카르타 중심가로 집결해 진압경찰과 중돌했다. 이날 시위는 인도네시아 노동조합연합이 주도했다. 참가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파견노동제 폐지, 해고규제 강화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전국적인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평등 및 부패와 싸우는 상징적 ‘해적 깃발’
시위대의 투석과 경찰의 최루가스 발사, 소방호스 분사가 맞부딛치는 충돌 과정에서 오토바이 택시 기사가 경찰차량에 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식이 SNS 등을 통해 전파되면서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시위대는 참가 노조와 학교의 깃발 외에 인기만화 ‘원 피스(ONE PIECE)’에 나오는 해적 깃발을 앞세웠다. 이 해적 깃발은 불평등 및 부패와 싸우는 상징으로 인도네시아 항의집회에 자주 등장하는 깃발이다.
이날은 서부 자바 주의 반둥과 같은 대도시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29일, 30일에도 벌어졌으며, 일부 공공교통기관이 운행을 멈췄다. 혼란이 확산될 조짐 속에 주말 전인 29일(금)에는 인도네시아 주가가 한때 2.3%나 떨어졌고, 루피아 화폐 시세도 하락했다.
프라보워 정권은 최대 8천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급식제도 도입해 국가예산의 약 10%에 상당하는 335조 루피아(약 28조 원)를 투입하는 등 민심 수습에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급식예산을 늘리면 그만큼 다른 교육예산 등이 삭감될 수밖에 없어서 기대하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들이 있다. 정부는 에너지와 인프라 건설 등에도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으나, 고용 창출 등 서민들의 경제사정을 호전시킬 근본적인 대책 없이는 유권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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