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위 '국정과제' 이름에 보기 힘든 한글
핵심 용어에 한자말 84%, 토박이말은 14%
K-컬처, AI 등 외국어도 자리를 파고드는 현실
'토박이말'과 '한글' 살릴 국정과제 추가하기를
광복 80돌을 맞는 뜻깊은 해에, 새 정부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가슴 벅찬 큰 뜻을 보여주었습니다. 지난 13일 발표된 '123대 국정과제'는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밝히는 등대와 같으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약속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국정과제를 '대한민국 5년의 나침반'이자 '국정운영의 설계도'이며, '국정을 관리하고 평가하는 기준점'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크나큰 뜻과 꼼꼼한 계획이 담긴 이 밑그림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새 정부에 새로운 기대를 품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 훌륭한 밑그림을 더욱 알차고 튼튼하게 만들어줄 '주춧돌' 하나가 빠져 있는 듯하여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바로 우리 문화의 바탕이자 겨레 얼이 담긴 '토박이말'과 '한글'에 대한 정책적 보살핌입니다.
우리가 왜 이 주춧돌을 이야기해야 하는지는, 국정과제에 쓰인 말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하게 어림할 수 있습니다. 123개 과제 이름을 이루는 데 쓴 모두 667개의 알맹이 낱말을 살펴보니, 정책 내용을 풀이하는 말에 '한자말'이 557개(83.51%)나 됩니다. 이는 나라 살림의 전문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때로는 국민과 정책 사이에 거리감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에 견주어, 우리의 삶과 얼을 오롯이 담고 있는 토박이말은 87개(13.04%)에 그쳐, 우리가 가진 넉넉한 말글살이 밑천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여기에 'AI', '글로벌', '디지털', '콘텐츠', 'K-컬처', '거버넌스', 'NEXT(넥스트)', '바이오헬스', 'K-AI 시티', '코리아 프리미엄', '시스템', '스포츠', 'K-방산', 'G7+'과 같은 외국어(23개, 3.45%)가 자리를 파고드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고 애를 쓰지 않으면 우리말과 글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가 왜 토박이말과 한글 정책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값진 바탕 자료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정부는 103번 'K-컬처 시대를 위한 콘텐츠 국가전략산업화 추진'과 104번 '전 국민이 누리고 세계인과 소통하는 K-컬처'라는 과제를 통해 문화강국으로 나아가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참된 문화강국은 살아 숨 쉬는 숨탄것(생명체)와 같습니다. 우리 겨레의 삶과 얼이 오롯이 녹아있는 '토박이말'이 그 뼈대이자 몸통이라면, '한글'은 그 몸통을 싣고 드넓은 하늘로 솟구치게 하는 두 날개입니다. 대한민국 문화의 꾸준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우리 문화의 몸통을 살찌우고 날개를 힘차게 가꾸는 일에 눈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더욱 안타까운 까닭은, 이러한 제언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박이말 진흥을 바라는 국민들’은 새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으로 ‘토박이말 진흥 정책 제안서'를 국정기획위원회에 이어주었습니다. 이 제안서는 어려운 다른 나라말과 한자말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가 막히는 현실을 넘어, 참된 언어 주권을 이루는 길을 하나하나 담고 있었습니다.
제안서는 ▲정책의 구심점이 될 '국립 토박이말 진흥원' 만들기 ▲대학 전공 개설 등 '전문 일꾼을 키우는 틀' 마련 ▲공공 부문부터 토박이말 쓰기를 앞장서는 '살가운 사용 환경' 만들기라는 세 가지 큰길을 담았습니다. 결코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정부의 '나침반'이 더 바른길을 가리키고, '밑그림'이 더욱 튼튼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인 보탬말이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123개의 과제에 더해, 우리 문화의 뿌리를 튼튼히 할 '124번째 국정과제'로 토박이말과 한글을 살리는 정책을 받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국정의 큰 뜻은, 그 주인인 국민이 가장 쉽고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말과 글을 아끼고 가꿀 때 비로소 이룰 수 있습니다.
부디 국민들의 참마음이 담긴 제안에 귀를 기울여, 언어문화라는 굳고 튼튼한 주춧돌 위에 세계가 우러러보는 참된 문화강국을 세워주시길 바랍니다. 새 정부가 그 크디큰 걸음을 내디디리라 믿으며, 온 마음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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