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20여명 미공개 정보 이용해 주식매매

‘KBS 단독’ 대부분 외면…비뚤어진 동업자 의식

‘타율’에 의한 강제와 사회적 통제 함께 필요

전·현직 기자 20여 명이 취재 중 얻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선행매매’를 벌인 혐의로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최근 알려졌다. 언론인이 ‘선행 정보’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것은 자본시장을 교란시키는 중대한 범죄이자 기자의 윤리를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다. 그러나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이 같은 심각한 사건에 대해 대다수의 언론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론 스스로의 자정 능력에 대한 깊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은 전·현직 기자 20여 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다. 이들은 취재 과정에서 얻은 기업의 미공개 내부 정보(영업 실적, 신사업 계획 등 호재성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선매수하고, 이후 해당 주식에 대한 호재성 기사, 특히 '단독'이나 '특징주' 기사를 작성·보도해 주가를 급등시킨 뒤 매도해 시세차익을 얻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자본시장법상 명백한 부정거래행위로 금지된 ‘선행매매’에 해당한다. 11개월간 10개 종목에서 5억 원 이상 수익을 거둔 기자도 있었다. 여러 기자가 공모해 동시에 기사를 출고하거나 SNS를 통해 확산을 유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배우자 명의 계좌를 사용하고, 사고판 종목이 총 900여 개에 이르는 경우도 확인됐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한 순간의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치밀하고 계획된 범죄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주식시장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5.6.11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주식시장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5.6.11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더욱 큰 문제는 기자들의 주식 선행매매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을 첫 보도한 KBS 기자의 "기자들이 작전 세력과 함께 '플레이어'로 뛰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았다"는 말처럼 단지 일부 기자의 일탈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드러난 것은 일부일 뿐 불법 행위, 혹은 불법성 행위가 암묵적으로 용인되거나 방치돼 왔을 가능성이 적잖다는 얘기다.

그러나 기자들의 일탈, 비리 행위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다. 이 같은 중대한 사안에 대해 언론계는 '침묵'하고 있다. KBS의 단독 보도 이후 주류 언론의 후속 보도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미디어오늘 8일 <‘선행매매’ 기자·언론사 압수수색에도 조용한 언론계> 등 일부 군소매체들과 한겨레 정도만 보도했을 뿐이다. 언론계의 비뚤어진 동업자 의식과 언론 윤리 둔감증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스로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는 극도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언론인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일단 응당한 사법처벌이 필수적이다. 일반 시민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깊숙히, 또 더 일찍 ‘선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언론인의 증권 금융 거래에 대해서는 많은 나라들에서 예방 금지 및 감시 장치를 두고 있다. 한국도 적잖은 규정과 장치들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그같은 규정이 실제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미국의 경우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에 대해 사법 처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기자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다른 사안들에서와 같이 언론계에 대해서는 사법당국이 '봐주기식 수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은 결국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호받는 ‘특수한 직역(職域)’인 언론에서 그 특수한 직역에 걸맞는 자율 정화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에는 기자의 청렴성과 품위 유지, 사적 이익 추구 금지 등 기본적인 원칙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는 체화되지 않은 규정에 불과한 형편이다. 대부분의 언론사에서도 경제부·증권 담당 기자의 주식 투자를 엄격히 금지하거나 자사주 외 주식 보유를 전면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는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버젓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윤리강령의 규정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부정거래 혐의로 고발된 기자가 징계가 아닌 '퇴사' 처리로 마무리된 매일경제의 사례가 그걸 보여준다. 언론 내부의 윤리위원회나 인사 규정이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거나 심지어 기능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무엇보다 구체적 처벌 규정을 갖춘 곳은 드물다. 윤리강령, 인사규정 등이 있어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언론의 자율적인 자기규제와 자정의 필요성을 더욱 심각하게 확인시켜주고 있다. 언론의 자율적인 자기규제와 자정 기능은 언론인 개인, 소속 언론사, 그리고 언론계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작동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이 모든 차원에서 허점과 부실이 드러났다. 기자 개개인의 윤리 의식은 물론, 언론사의 내부 통제 시스템, 그리고 언론계 전체의 동업자 감시 기능 모두가 마비된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자율 정화 시스템의 정비와 함께 한편으로는 그 ‘자율’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언론계 바깥의 개입과 감시가 더욱 면밀하게 이뤄져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수사 대상 언론사와 기자 명단 공개 및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 것처럼 언론 관련 시민 단체와 독자들이 감시와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 스스로가 변화의 의지를 보이지 않을 때는 외부의 강력한 압력이 그만큼 더욱 더 요청된다. 이번 주식 부당거래 사건뿐만 아니라 불신 받는 언론의 거듭나기를 위해서도 그렇다. 언론의 자율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더욱 강력한 ‘타율’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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