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도둑질 아닌, 학문에 대한 모욕이자 배신
표절이 앗아간 지성의 영광, 그리고 도덕의 추락
시시포스는 그리스 신화의 인간 중 가장 교활한 자로 손꼽힌다. 그는 잔꾀로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속이고 제우스의 비밀을 팔아 이익을 얻으며, 심지어 저승의 신인 하데스마저 속인다. 타인을 속이고 탐욕스럽던 그는 마침내 신을 기만하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힌 죄로 끔찍한 벌을 받는다. 그가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힘겹게 밀어 올리지만 정상에 닿기 직전 바위는 아래로 굴러 떨어져, 다시 처음부터 올려야 하는 끝없는 형벌이다.
오늘날 학문과 교육의 세계에서 이 신화는 불편하게 되살아난다. 학자의 삶은 본디 진실과 성찰을 향한 고된 여정이며, 그들에게는 고결한 윤리와 자부심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사회가 스승으로 모신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고행을 남의 어깨 위에서 시작한다. 제자의 논문을 표절하거나, 동료의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가로채면서 말이다. 그들이 쌓는 상아탑은 진실이 아닌 기만의 돌들로 이뤄진 허상일 뿐이다.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논문 표절 의혹은 그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후보자의 논문과 제자의 논문을 표절검사 프로그램 '카피킬러'로 비교한 결과 표절률이 37%~48%라고 보도됐다. 학계에서는 유사도가 20% 이상이면 표절로 간주한다. 이 후보자는 자신의 총장 선거 때의 검증에서 문제가 없었다며 합리화를 시도하지만, 자신의 부정행위를 정당화하려 동료 교수까지 끌어들이는 모습이 참담하다.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호도하려는 모습은 시시포스가 끝없이 굴리는 바위보다 더 무거운 도덕의 추락이다.
표절은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다. 그것은 학문에 대한 모욕이며, 신뢰에 대한 배신이며,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해악이다. 많은 국민이 김건희 씨의 '멤버 유지'라는 희대의 논문에 분노했던 이유도 그것이 지성의 상아탑을 농락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우리의 상아탑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며 안이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침묵하지 말자.
이진숙 후보자는 여론의 향배나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기 전에, 학자이자 교육자라는 본연의 책임을 돌아보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 거취를 정하는 것이 본인의 명예를 지키는 마지막 기회이며, 국민주권정부가 허물어진 공정을 회복하려는 길에 동참하는 최소한의 성의일 것이다. 청문회 이전 사퇴가 답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중 아리아 ‘와인에 취할 때까지’는 쾌락에 중독된 위선자의 본색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쾌활한 선율과는 달리 타인을 유혹하고 이용하는 데 거리낌 없는 조반니의 모습을 통해, 겉으로는 품위를 지키려 하지만 본질은 타락한 자들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조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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