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 일제와 독재에 저항했지만 비폭력 견지
이, 방북 활동으로 남북정상회담 토대 마련
권력보다 양심, 두려움보다 희망 택한 그들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 전파
함석헌 "누구에게도 악의 없이", 이행우 "기쁘게 살자"
분단과 독재, 이념 대립의 격랑에 휘말린 20세기 한반도에서 두 명의 퀘이커가 조용하지만 단단한 양심의 등불을 밝혔다. 바로 함석헌(1901-1989)과 이행우(1931-2021)다. 이들은 평화, 진리, 단순함, 평등이라는 퀘이커의 핵심가치를 몸소 살아낸 사람들로, 시대를 뛰어넘어 통일과 민주주의의 씨앗을 이 땅에 심었다.
함석헌은 이상주의적 예언자였고, 이행우는 실천적 중재자였다. 성격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권력보다 양심을, 두려움보다 희망을 택했다. 그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시대에 양심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의 간디' 함석헌, 비폭력으로 저항하다
190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함석헌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군부독재를 모두 겪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 어떤 억압에서도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역사적 진실을 비폭력적으로 외쳤다.
그의 삶을 바꾼 것은 1919년 3·1운동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수줍음 많던 청년에서 민족정체성과 자유를 향해 싸우는 젊은 지식인으로 거듭났다. 1930년대 역사교사로 재직하며 억압받는 자의 시각에서 한국사를 서술한 책을 집필했다. 이로 인해 일제에 의해 투옥되어 고문을 당했지만, 그의 책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지금도 중요한 역사서로 평가받고 있다.
해방 이후에도 시련은 계속되었다. 공산화를 추진하던 북한의 소련군정에 저항하다가 또다시 투옥되었고, 남한으로 내려온 뒤에도 독재 정권(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 의해 반복적으로 투옥과 고문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퀘이커 신앙의 핵심가치에 깊이 공감했고, 제도화한 종교보다는 개인의 양심과 '내면의 빛'을 신뢰했다. 퀘이커의 비폭력주의, 공동체, 평등정신은 그가 추구한 민주주의와도 깊은 친화성을 이루었다.
그는 두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로 미국 퀘이커들에 의해 추천받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지만, 그의 삶 자체가 퀘이커정신의 구현이었다.
고통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도 함석헌은 낙관주의와 인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비폭력과 평화주의를 끊임없이 옹호했으며,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지지했다. 그의 근본적인 사상은 "누구에게도 악의 없이" 강한 정의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조용한 실천가 이행우, 평화의 다리를 놓다
이행우는 함석헌처럼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그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그는 입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1960년 함석헌과 함께 서울 퀘이커모임을 창립했다. 1968년에는 미국 펜들힐 퀘이커 연구소에서 공부한 후 미국에 정착하여 컴퓨터 분석가로 일하면서도, 평생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월급과 휴가 대부분을 한반도 평화통일운동에 사용했고, 수십 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남북 간 신뢰회복을 위해 애썼다. 또한 미국 국회의원과 연구원, 언론인들에게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상황을 알렸고, 남한의 정치범과 반체제인사들을 조용히 지원했다.
1982년부터는 미국 퀘이커 단체인 '미국 친우봉사회(AFSC)'를 대표해 북한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1995년에는 미국 내 평화통일연구소를 설립해 꾸준히 관련 보고서를 발행했다. 이러한 지속적 노력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데 중요한 뒷심이 되었다.
그는 화려한 연설보다 조용한 실천을 중시했고, 단 한 채의 집도 없이 살면서도 자신보다 이웃과 조국을 먼저 생각했다. 2021년 세상을 떠나기 전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필자에게 남긴 말은 "성수, 기쁘게 살자!"였다.
현실에 뿌리내린 영감(Inspiration)
함석헌과 이행우 모두 퀘이커로서의 삶을 단순한 종교적 정체성이 아닌, 역사적 실천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기도와 명상만이 아닌,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했다.
그들의 신앙은 단순히 이상주의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일제의 탄압, 냉전의 분단, 군부독재의 탄압이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더욱 빛났다. 이들의 정신과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금 묻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 양심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리를 따라 산다는 것은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가?"
살아있는 유산, 이타적인 삶
21세기에도 한반도는 여전히 갈등과 긴장의 공간이다. 하지만 함석헌과 이행우가 보여준 이타적인 삶은 여전히 우리를 비추는 꺼지지 않는 빛이다.
한 사람은 시대를 앞서간 예언자고, 다른 한 사람은 조용히 남북간 평화의 다리를 놓는 자다. 두 사람 모두 권력보다 양심을, 두려움보다 희망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신념과 꿈은 지금도 생생히 살아있다. 그들이 남긴 유산은 오늘날 인권운동가, 평화통일활동가들의 땀 속에, 이상주의자들의 꿈속에, 진리를 향한 구도자들의 조용한 걸음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함석헌과 이행우의 삶은 평범한 사람들이 절대적인 가치와 그 영감에 의해 감화될 때 놀라운 사회변화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삶은 평화, 인권, 민주주의에 대한 충실함이 개인에게는 종종 큰 희생을 요구하지만, 그러한 희생이 개인의 상상을 넘어 큰 사회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증명했다.
양극화와 폭력이 심화하는 오늘날, 함석헌과 이행우가 남긴 정신적 유산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도정에 강력한 힘과 영감을 준다. 우리도 그들처럼, 기쁘게, 양심적으로 두려움 없이,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함석헌과 이행우의 이타적인 삶을 통해 우리는 평화로운 한반도, 크게는 지구공동체에 대한 꿈이 머나먼 희망이 아니라 현재의 가능성임을 본다. 평범한 사람들이 대의를 위해, 타인을 위해, 평화의 도구가 되도록 힘쓸 때, 그 꿈은 비범하게 기적적으로 실현된다.
함석헌과 이행우가 남긴 정신적 유산은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울려 퍼지며, 절망과 어려움 속에 사는 이들에게 한 가닥 양심을 일깨워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리고 우리가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구하도록 끊임없이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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