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도 지하벙커엔 벙커버스터, 두 곳엔 토마호크

계산된 ‘최선’ 아닌 ‘최악’의 결과로 끝날 수도

이라크 침공 때처럼 또 ‘대량살상무기’ 문제삼아

조지 오웰 <1984> “전쟁은 평화”식의 트럼프 어법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반미’를 침공 구실로

CIA 등이 사주한 모사데크 민주정권 붕괴 역사

6월 21일 밤(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날 감행된 미군의 이란 공격에 대해 설명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욕타임스 6월 21일
6월 21일 밤(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날 감행된 미군의 이란 공격에 대해 설명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욕타임스 6월 21일

미국이 결국 21일 밤(한국시각 22일 새벽) 이란 핵시설들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의 이란 공격 직후인 이날 밤 10시(22일 오전 11시) 백악관에서 행한 대국민 연설에서 미군의 B2 폭격기와 잠수함이 벙커버스터와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로 이란 중부 포르도와 나탄즈, 이스파한의 핵 농축시설들을 공격해 “완전히 모두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목적은 이란의 핵 농축시설을 파괴해 세계 제일 테러 지원국의 핵 위협을 중단시키는 것”이었다며 포르도 산 속 지하 핵시설과 나탄즈의 대규모 핵농축시설, 핵무기급 농축 우라늄을 보관한 이스파한의 시설들을 파괴했다고 밝히고, “중동의 골목대장 이란은 이제 평화 실현에 나서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훨씬 더 거대하고 손쉬운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평화가 찾아올지, 더 큰 비극이 찾아올지는 이란에게 달렸다”면서 “아직 많은 표적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평화가 빨리 실현되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표적들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공격할 수 있다. 그들 다수는 몇 분만에 없앨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21일 밤(이란 현지시각 22일 새벽) 미군이 공습한 이란 핵농충 시설이 있는 세 도시. 위에서부터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뉴욕타임스  6월 21일 
21일 밤(이란 현지시각 22일 새벽) 미군이 공습한 이란 핵농충 시설이 있는 세 도시. 위에서부터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뉴욕타임스  6월 21일 

포르도 지하벙커엔 벙커버스터, 두 곳엔 토마호크

익명의 이란 관리들에 따르면, 이날 공격은 새벽 2시 30분쯤(이란 현지시각)에 시작됐다. 미국 관리들은 제1 표적 포르도의 지하 80~90m에 구축된 핵시설 공격에는 3만 파운드(약 13.6톤) 벙커버스터(GBU-57)를 (2발씩) 탑재한 B2 폭격기 6대가 10여 발의 벙커버스터를 투하했으며, 나탄즈와 이스파한 핵시설은 잠수함에서 발사한 순항미사일 토마호크 30발로 공격했다고 밝혔다.

미군의 공격이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표적들의 핵시설을 완전히 제거하는데 성공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진 않고 있으나, 현지의 이란 관리들은 해당 지역들이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획인했다고 <뉴욕타임스> 등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격기에 만재한 폭탄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투하한 뒤 이란 영외로 무사히 빠져나와 귀환 중이라면서, “위대한 미국의 군인들에게 축사를 보낸다. 세계에서 이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군대는 미군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평화의 시간이다”라며 작전을 수행한 미군들을 추켜세웠다. 또 “비비(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총리에 감사하고 축하하고 싶다”면서 “우리는 아마도 이전에 그 어느 팀도 해보지 못한 일을 하나의 팀으로 해냈다”며 자축했다.

‘이라크 침공’ 실패 피해 효과 극대화 노린 ‘도박’

미국의 이번 공격은 지상군 투입 없이 이란의 주요 핵 시설들 제거만을 겨냥한 제한적인 공습으로, 미국을 장기간의 중동전쟁 늪에 빠뜨린 2001년과 2003년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 때와 같은 위험을 피하면서 군사 및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트럼프의 도박’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는 6월 13일 시작된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이란 공격을 통해 제대로 반격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이란의 ‘약체화’를 확인하고, 미군의 큰 손실 없이 이란의 핵 능력을 제거하고 반체제세력과의 연계를 통해 반미적인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 신정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계산까지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란 공격이 계산대로 성공한다면 트럼프 정권으로서는 출범 이후 터져 나온 여러 골치아픈 국내외 악재들과 실정에 대한 비판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부터 당선 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해결하겠다며 평화 전도사를 자처해 온 그가 취임 몇 개월만에 공약을 뒤집고 새로운 전쟁을 시작한 것에 대한 미국 안팎의 비웃음과 비판이 거세지겠지만, 미군의 벌다른 피해 없이 오랜 적대국 이란의 핵시설을 ‘솜씨좋게’ 제거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당장은 비판보다 지지가 더 클 것이다. 트럼프는 그것을 노렸을 것이다.

 

중동지역에 산재한 미군 기지들. 이란 주변국들인 이라크와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UAE, 요르단, 지부티 등에 흩어져 있다. 붉은색은 장기주둔 기지들.     뉴욕타임스 6월 21일
중동지역에 산재한 미군 기지들. 이란 주변국들인 이라크와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UAE, 요르단, 지부티 등에 흩어져 있다. 붉은색은 장기주둔 기지들.     뉴욕타임스 6월 21일

‘최선’ 아닌 ‘최악’의 결과로 끝날 수도

하지만 이란이 그의 뜻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란은 이번 공격 전부터 미국이 자국을 직접 공격할 경우 가혹한 보복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 경고해 왔고. 중동지역에는 이란 혁명수비대와 남아 있는 ‘저항의 축’이 보복공격을 가할 수 있는 미군과 기지들이 널려 있다. 이란이 그들을 공격하면서 주요 석유 등 에너지 수송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이스라엘-이란 전쟁은 중동 전체로 확전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석유가 급등 등으로 지지부진한 세계경제가 더욱 흔들리면서 미국경제도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최선의 결과’를 바라고 감행한 ‘트럼프의 도박’은 ‘최악의 결과’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1979년 반미 ‘호메이니 혁명’을 침공 구실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평화 실현(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나서지 않는다면, 장차 훨씬 더 가혹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며 “40년 간 이란은 ‘미국에게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외쳐 왔다고 했다. 미국이 자국을 직접 공격하지 않은 이란을 공격할 명분이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그 구호를 이란 공격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듯하다.

40년 전 일이라면 1979년의 ‘이란 혁명’, 시아파 이슬람 지도자 호메이니가 이끈 반체제세력이 친미·친서방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호메이니 혁명’과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을 두고 한 얘기일 것이다. 호메이니 혁명으로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전략의 거점이었던 이란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반미세력 거점의 등장을 지켜봐야 했다.

따라서 40년간 이란으로부터 들어 온 “미국에게 죽음을!” 구호를 떠올리는 트럼프의 이란 공격 명분 찾기는 그럴 듯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호메이니 혁명을 부른 이란의 바로 그 이전 역사는 그것이 환상이거나 억지임을 보여 준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4년 11월 7일에 촬영된 사진. 그해 7월 5일 테헤란에서 열린 대선 결선 투표에서 투표를 마친 후 연설하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왼쪽)와 2024년 11월 4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PPG 페인츠 아레나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전 미국 대통령이자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모습을 담고 있다. 2025.6.22. AFP 연합뉴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4년 11월 7일에 촬영된 사진. 그해 7월 5일 테헤란에서 열린 대선 결선 투표에서 투표를 마친 후 연설하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왼쪽)와 2024년 11월 4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PPG 페인츠 아레나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전 미국 대통령이자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모습을 담고 있다. 2025.6.22. AFP 연합뉴스

CIA 등이 사주한 모사데크 민주정권 붕괴 역사

이란에서 석유가 발견된 뒤 러시아와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던 영국과 서방의 석유컨소시엄은 지배하고 있던 그 곳 팔레비 왕가와 함께 그 이익을 나눠가졌다. 거기에 반기를 들고 이란의 민주화와 석유 국유화를 선언하며 1950년대 초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사람이 모하메드 모사데크였다. 영국과 미국은 독점적 석유 및 전략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중앙정보국(CIA) 등을 동원해 이란 정치에 개입했다. 그들의 공작으로 1953년에 쿠데타가 일어나 모사데크 정권은 무너지고 다수가 처형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1979년에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호메이니 혁명’의 배경에는 팔레비 왕조와 그 왕조를 옹위한 서방의 억압과 착취를 거부한 이란 민족주의의 열망이 깔려 있었다.

트럼프가 이번 공격을 감행하면서 1979년 이전 팔레비 왕조 시절의 친미국가 이란의 복원까지를 염두에 뒀다면, 오산일 가능성이 높다.

이란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호메이니 혁명 직후 침공했을 때 10년을 싸워 물리쳤다. 후세인의 이라크가 호메이니 혁명 뒤인 1979년 9월 이란을 침공하자 미국은 후세인을 지원했다. 그러나 호메이니 체제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 뒤 미국 등 서방의 오랜 제재로 인한 경제난 등으로 호메이니를 계승한 하메네이 신정체제가 약체화됐으나 ‘지역 대국’인 이란이 미국에 쉽게 굴복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1990년에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은 이번엔 후세인 징벌(조지 부시[아버지]의 ‘걸프 전쟁’)에 나섰고, 결국 나중에 그를 붙잡아 처형했다.

이라크 침공 때처럼 이번에도 ‘대량살상무기’ 문제삼아

2003년에 조지 부시(아들) 대통령이 유엔과 프랑스, 독일 등 서방 동맹국들의 반대까지 물리치고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이유(명분)로 내세운 것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생화학무기) 개발·보유 등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그 내세운 이유가 사실무근이었음이 서방의 자체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미국은 2011년 12월 이라크에서 철수할 때까지 막대한 물적 인적 자원을 투입해 테러세력 척결과 민주화 등 내세웠던 침공목적을 실현하려 했으나 수십만 명의 민간인들을 희생시키는 등 엄청난 파괴와 손실만 안긴 채 실패했으며, 미군 철수 뒤 이라크는 다시 무정부적 혼란상태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이란 공격 이유(명분)로 내세운 것도 ‘대량살상무기’(핵) 개발이었다. 그러나 핵 발전용임을 주장하는 이란의 핵 농축이 무기급에는 훨씬 못 미치는 최대 60%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3월 25일 연방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나온 털시 개버드 미국 국가정보국 국장의 발언도 그것을 뒷받침했다. 개버드 국장은 그때 “정보당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한다”면서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는 2003년에 중단시킨 핵무기 프로그램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 증언 때문에 개버드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몇 차례 지탄을 받고 트럼프 안보논의 라인에서 제외됐다는 보도까지 나온 뒤, “이란을 공격할지 말지 2주일 안에 결정하겠다”던 트럼프는 그 발언 불과 사흘 뒤 새벽에 돌연 이란의 세 도시 급습 명령을 내렸다.

조지 오웰 <1984> “전쟁은 평화” 연상시키는 트럼프 어법

미국 본토를 떠나 괌 기지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던 B2 관련 보도들도 이미 현지에 도착해 대기 중이던 상황 호도용이었나. 지난 3월 이란에게 60일 간의 시간을 주겠다고 한 뒤 그 기간이 끝나자마자 그 다음날 이스라엘이 대대적인 이란 공격을 시작한 것도 수상쩍다. 대대적인 공습과 3만 파운드짜리 벙커버스터와 토마호크 공격을 잇따라 펼친 참혹한 ‘전쟁의 시기’를 ‘평화의 시기’라고 한 것도 그렇다.

이런 트럼프의 어법을 두고 ‘더블 스피크’(이중 어법)라는 지적도 나왔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오세아니아’의 슬로건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이날 공격 뒤 미국 국무부는 이스라엘에서 자국민들을 철수시키도록 현지 대사관에 지시했다.

이스라엘-이란 전쟁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이란의 대응 여하에 달렸지만, 지금으로선 예측 불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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