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악마화 말고 구조적 접근으로 해결해야

낙인찍기는 진단 오류이자 해결 막는 장애물

병역의무에 대한 실질적 보상 방안 마련해야

‘젠더 갈등‘ 아닌 ‘세대 구조‘로 프레임 전환을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경기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 혁신공유라운지에서 청년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5.26.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경기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 혁신공유라운지에서 청년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5.26. 연합뉴스

‘이대남’은 단지 퇴행적인 집단인가?

최근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 담론으로 ‘이대남(20대 남성)’의 보수화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여성혐오'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들의 온라인 활동이 주목받기 시작한 지는 오래다. 지금은 정치적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며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유권자 집단으로 성장했다.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이들의 분노와 불만을 노골적으로 활용해 단기적 정치 이익을 얻으려 한다. 수구언론 역시 그들을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현상을 단순히 ‘혐오세대’ ‘퇴행적 집단’으로 낙인찍는 것은 진단의 오류일 뿐만 아니라, 해결의 길을 막는 장애물이 된다. 이대남의 정치적 반응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 성별 간 기대 격차, 병역제도, 교육·노동시장의 불안정성 등이 복합 교차한 결과다. 결국 이 현상은 청년세대 전체가 겪는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반응이며, 이들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악마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사회통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병역제도와 상실감, 이대남 보수화의 뿌리

한국 이대남의 보수화는 그 시작부터 군 복무라는 독특한 사회적 경험과 깊이 연결돼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혹은 대학 재학 중 남성들은 18~21개월의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 기간 동안 여성 동년배들은 학업, 인턴십, 유학, 취업준비 등 경력을 쌓을 수 있다. 이 차이는 사회진입 속도의 격차로 이어지며, 많은 남성들에게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박탈감을 안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를 위해 의무를 수행한 이들에게 사회가 충분한 보상이나 인정을 해 주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했는데, 사회는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생각은 깊은 상실감으로 남고, 이는 곧 여성에 대한 적대감으로 쉽게 번진다.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가 내세운 '여성가족부 폐지' 슬로건은 바로 이러한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새로운 시대에 맞게 성별 갈등과 세대 갈등을 풀어내겠다”고 말해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이 본격화됐다. 사진은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복도 모습. 2022.6.17. 연합뉴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새로운 시대에 맞게 성별 갈등과 세대 갈등을 풀어내겠다”고 말해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이 본격화됐다. 사진은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복도 모습. 2022.6.17. 연합뉴스

경제적 불안과 미래에 대한 절망

이대남의 보수화는 단지 성별 갈등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세대 전체가 겪는 구조적 불안과 절망감이 20대 남성에게서 보수주의와 반페미니즘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고용 불안정, 높은 주거비용, 학자금 대출 부담, 불투명한 사회 이동성은 남녀를 불문하고 젊은 세대를 짓누르고 있다. 그런데 일부 남성들은 이 문제의 원인을 ‘여성우대 정책’으로 단순화하고, 자신의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성별갈등 프레임에 빠져든다. 이는 복잡한 사회문제를 개인 정체성의 문제로 환원하는 위험한 경향이며, 실제로 청년들 사이의 연대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온라인 공간과 알고리즘, 혐오의 증폭기

이대남의 보수화는 디지털 플랫폼의 구조와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일베와 같은 커뮤니티는 처음엔 단순한 정보공유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젠더 혐오와 반페미니즘 담론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이는 이용자들의 성향 때문만이 아니라,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더 많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의 리스 등에서는 '여성은 특혜를 받는다' '남성은 억울하다'는 류의 메시지가 반복되며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이는 이용자 개인의 사고방식 자체를 왜곡시키고, 공감과 토론이 아닌 분노와 혐오의 정치로 이어지는 경로를 제공한다.

청년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성별을 넘어서 구조로

지금까지의 청년정책은 종종 성별로 따로 설계되어 왔다. 경력단절 여성 지원정책이나, 남성 군복무자 대상 가산점 제도 등은 결과적으로 세대 내 분열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 주거안정, 고등교육 기회확대 등은 남녀를 막론하고 모든 청년이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조건이다. 이러한 정책들이 성별이 아니라 계층과 세대 중심으로 설계되고 실현될 때, 청년 간의 불필요한 갈등은 줄어들고 연대의 가능성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26일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로 입영하는 한 장병이 병무청의 현역 입영문화제에 참석해 완전군장을 들어보이고 있다.2025.5.26. 연합뉴스
26일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로 입영하는 한 장병이 병무청의 현역 입영문화제에 참석해 완전군장을 들어보이고 있다.2025.5.26.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제시해야 할 해법

병역제도에 대한 실질적 보상 및 개선

이대남의 정체성과 불만의 핵심에는 병역제도가 자리잡고 있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 정책이 검토되어야 한다.

- 군복무 학점 인정을 자동 반영 하거나 확대한다.
- 복무 이후 대학등록금 전액 지원 또는 학자금을 면제한다.
- 공공기관 및 공기업에서 군 복무 경험을 경력으로 인정한다. 
- 모병제 전환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되, 단기적 추진보다는 공론화 장을 마련한다.

‘젠더 갈등’ 아닌 ‘세대 구조’ 프레임으로 전환

이대남의 반응을 단순한 ‘여성혐오’로 규정하면 정치적 소외와 분노만 키우게 된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는 다음과 같은 프레임 전환에 나서야 한다.

- 청년 문제의 핵심을 비정규직, 주거, 플랫폼 노동 등으로 재설정한다.
-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 아닌, '기득권과 청년의 싸움'이라는 대안 서사를 제시한다.
- 여성과 남성이 경쟁자가 아닌 연대가능한 파트너로 공감하도록 설계한다.

감정의 정치에 맞설 이성과 감정의 설득

국민의힘은 청년남성의 ‘억울함’, ‘상실감’이라는 감정을 정치적으로 조직해 정권을 잡은 경험이 있다. 이에 맞서는 이재명 정부는 도덕적 비판이 아니라 이성과 감정의 설득으로 이대남들에게 응답해야 한다.

“당신의 분노는 이해된다. 그러나 그 원인은 여성이 아니라 구조다.”

그런 차원에서 병역 후 성공적으로 사회에 적응한 청년남성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공유한다. '민들레'와 같은 진보 언론과 단체들이 이대남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연대 플랫폼을 구축하도록 지원한다. 

이대남은 ‘개조’ 대상이 아니다

이대남을 단지 ‘고쳐야 할 존재’로 보면 답은 없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이며,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중요한 세대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혐오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이대남들의 분노 안에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미처 듣지 못한, 혹은 외면해 온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재명 정부는 그 목소리를 적대와 무시가 아니라, 공감과 대화로 따스하게 수용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이대남들의 분노를 이해하되, 그 분노가 혐오와 배제를 향하지 않도록 제도와 언어, 그리고 연대의 정치로 응답해야 한다. 그것이 이재명 정부가 할 일이며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민주주의의 방향이다.

그래서 이대남 현상은 이재명 정부가 피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대상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들과의 공존, 연대, 공감의 정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야말로 이재명 정부가 마땅히 할 일이다. 진정한 민주정부는 가장 먼 타인의 목소리에 먼저 귀 기울이는 것이다. 지금, 이재명 정부는 그 중요한 길목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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