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공영방송 위한 제도개편 돼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서 이해민, 이훈기, 최민희, 한민수 의원 등이 발의한 다양한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이 과방위에서 위원회 대안으로 묶이는 중이다. 위원회 대안에서는 방송3법 개정과 관련하여 논의해왔던 공영방송 이사 추천 과정에서 정치적 후견 해소, 공영방송 이사 선출 제도 보완, 방송제작자의 제작자율권 보장을 명문화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보도된 미디어스 등의 기사에 따르면, KBS이사회는 현재 이사 수 11명에서 15명으로 증원하고, MBC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와 EBS이사회는 현재 이사 수 9명에서 각각 13명으로 늘어난다. 방송3법 개정 논의 때마다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제기했던 정치적 후견을 줄이기 위해, 국회추천을 KBS이사회는 8~9명, MBC방문진과 EBS이사회는 6~7명으로 명문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공영방송 사장은 사장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복수의 후보에 대해 이사회가 특별다수제를 통해 선출을 시도하고, 2회 이상 이사회에서 특별다수인 이사의 2/3 이상 표를 얻는 후보가 나오지 않을 때, 상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법제도 개편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행정부가 입법질서를 훼손하고 권한을 남용하는 폐해가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하고, 정권교체기마다 반복하는 정파적 이익에 따른 극단적인 정치적 후견과 공영방송 지배구조 흔들기를 억제하려는 입법이다. 이는 미디어 환경변화에 맞는 지속 가능한 공영방송 제도개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한 뒤 정치적 후견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는 비판도 있다. 국회 과방위에서 논의하는 방송3법은 2024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당론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공영방송 이사의 수와 국회추천 인원이 바뀌었다. 2024년 민주당 당론에서는 공영방송 이사의 수를 KBS, MBC방문진, EBS 모두 21명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2025년 법안에서는 KBS이사회는 15명, MBC방문진과 EBS는 각각 13명으로 이사의 수를 줄였다.
적절한 수준의 공영방송 이사의 수는 입법자 고유권한이다. 공영방송 이사의 수가 많으면 세비를 비롯한 관리비용 증가와 회의 운영의 비효율성을 유발한다. 반대로 공영방송 이사의 수가 증가하면 추천 권한 분산으로 정치적 후견을 줄이고 사회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다. 정답은 없다. 현재 추진하는 개정안의 제도적 원형인 독일 공영방송 제도도 남서독지역공영방송(SWR)은 방송평의회 74명, 경영평의회 20명을 두지만, 국제방송인 도이체벨레(DW)는 방송평의회 17명, 경영평의회 7명으로 구성한다. SWR이나 DW가 방송평의회와 경영평의회 위원의 수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공적 기능 수행에 지장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각 공영방송이 담당하는 공적 기능과 방송 환경에 따라 방송평의회와 경영평의회 위원 수는 유연하게 정할 뿐이다.
한국은 독일과 달리 시청자위원회가 있다. 독일 공영방송은 방송평의회가 시청자위원회 역할을 겸하지만, KBS의 경우 이사 11명과 시청자위원 15명이 독일의 방송평의회와 경영평의회 역할을 한다. 물론 권한에는 차이가 있다. 한마디로 공영방송의 적절한 이사 수는 입법자 권한이다. 문제는 국회추천 비율이다. 2024년 민주당 당론에서는 3대 공영방송의 국회추천을 21명 중 정원의 1/4수준인 5인으로 제한했지만, 2025년 법안에서는 KBS이사회는 15명 중 8~9인, MBC방문진과 EBS이사회는 13명 중 6~7인으로 국회가 추천하는 인원을 정원의 1/2로 검토하고 있다. 그래서 약속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국회추천을 독일처럼 최소한 전체의 1/3수준으로 정하자는 의견이다. 하지만 제도적 원형인 독일에서는 현역 의원이 방송평의원을 겸임하기 때문에,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전체 방송평의회와 경영평의회 위원 중 현역정치인의 수를 1/3로 제한했다. 한국은 국회의원이나 광역의원 같은 선출직이 공영방송 이사직을 겸임할 수 없다. 단순한 제도 비교는 어렵다.
이익단체와 직능단체 추천비율도 문제이다. 이익단체와 미디어 관련 직능단체가 추천하는 공영방송 이사의 적정비율은 없다, 독일 공영방송인 ZDF는 60명의 방송평의원 가운데, 정원의 1/3수준인 19명을 연방과 주의회, 지역 의회에서 추천하고, 나머지 41명은 법률에서 정한 단체가 추천하는 25명과 각 주에서 추천하는 직능전문가 16명으로 구성한다. 2024년 민주당 당론으로 채택한 법안에서는 미디어 관련 직능단체에 6인, 나머지 시청자위원회와 미디어 관련 학회 등에서 10인을 추천하도록 했다. 그러나 2025년 법안에서는 이익단체와 미디어 관련 직능단체 추천 인원을 전체 정원의 1/2로 검토하고 있다. 2025년 법안이 2024년 민주당 당론보다 정치적 후견 문제에서 후퇴한 점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익단체인 협회나 시민단체가 법·제도적으로 투명하거나 신뢰할 만한 사회적 제도로 정착하지 못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방송법으로 공영방송 이사 추천 권한을 가진 이익단체와 미디어 관련 직능단체를 법조계, 미디어학계, 시청자단체, 방송기자와 제작자, 방송기술인 관련 협회 등으로 자격과 조건을 법률로 정하면서, 특정 기관이나 단체를 나열할 수는 없다. 법률체계가 뒤엉킨다. 반대로 특정한 기관이나 단체에서 추천할 수 있도록 법으로 명시한다면, 해당 기관과 단체는 사회적 제도로서 공인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 추천권을 갖는 기관이나 단체를 꼼꼼하게 법률로 정해야 하고, 후속 입법도 필요하다. 가장 현실적인 절충안은 추천 분야를 법률로 정하고, 시행령으로 그 자격과 조건을 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입법은 윤석열 정부에서 선거방송심의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행정위원회를 상위법이 아닌 시행령을 통해 변칙적으로 추천단체와 기관을 선정한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현재 국회에서 추진하는 방송3법 개정안은 몇 가지 법·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 첫째, 국회에서 추천하는 공영방송 이사의 자격 분야를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한다. 예컨대 8명을 국회가 추천한다면, 그 가운데 변호사 자격이 있는 법조인 2인, 미디어학계 2인, 경영계 2인, 노동계 2인과 같이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국회추천이지만 추천 분야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면, 정당은 그 범주에서 추천할 수밖에 없다.
둘째, 공영방송 추천권자로 각 공영방송의 시청자위원회는 제도적으로 오염 가능성이 크다. 현재 공영방송 시청자위원은 형식적 공모를 거쳐 사장이 임명한다. 실질적으로 사장이 시청자위원회 구성에 무한재량권을 행사한다. 예컨대 방송3법이 통과되어 새롭게 KBS이사회를 구성한다면, 현 KBS사장이 임의로 뽑은 15인의 시청자위원들이 공정언론국민연대와 같은 뉴라이트 단체 관계자를 KBS 신임 이사로 추천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차기 KBS사장이 진보적 성향으로 바뀌면, 그때는 시청자위원회 구성이 달라지고, 그들이 뽑는 KBS이사는 진보적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추천방식은 현재의 정치 후견적 추천제도보다 더 악습이다. 시청자위원회 구성을 이사회에서 임명하는 방식과 같은 제도적 혁신을 하지 않는 한, 시청자위원회가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는 법안은 퇴행이다.
셋째, 노동이사제 도입이다. 대다수 북유럽국가에서는 공영방송 이사회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 노동이사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전통에 기반을 둔다. 스웨덴에서는 이를 협의(samråd)를 위한 제도로 본다. 노동이사제는 사내구성원이 투표를 통해 1~2인을 이사로 추천하는데, 노동이사는 프로그램 자체심의와 같이 이해관계 충돌이 우려되는 영역에서는 의결 권한이 제한된다.
넷째, 미디어 관련 직능단체 추천은 방송기자, 방송PD, 방송영상기자, 방송기술인, 방송경영직군이 추천하는 이사는 이러한 직능을 대표하는 단체 가운데 대표성과 투명성을 기준으로 추천자격을 시행령에 규정하도록 정할 필요가 있다. 이때 시행령에서 정할 기준을 법령에 명확히 하여, 법적 분쟁의 여지를 줄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KBS의 사장 임명 권한을 더는 대통령이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 공영방송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은 왕조시대 유산이다. 영국처럼 입헌군주제에서는 국왕이 칙령인 칙허장을 통해 공영방송 역할과 기능을 규정하고, 상징적으로 국왕이나 문화부 장관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지만, 공화제에서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방식은 낙후한 제도이다. 방송3법 개정 부칙에 따라, 새롭게 구성할 공영방송 3사 이사회는 공영방송 사장을 새롭게 선출해야 한다. 선출 이후에는 MBC사장처럼 공영방송 독립성 보장을 위해 별도의 행정부 승인 혹은 임명절차를 폐지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이 극악무도한 방식으로 KBS이사와 이사장, MBC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와 이사장을 해임했을 때, 법원은 KBS이사와 이사장 해임에 대한 가처분 신청과 본안소송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 결정에 손을 들어주었지만, MBC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와 이사장에 대한 해임은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때 방송통신위원회가 패소한 가장 큰 이유는 절차적 정당성이다. EBS사장에 대한 가처분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공영방송이지만 법원은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하는 KBS와 합의제 행정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 권한을 가진 MBC방송문화진흥회와 EBS가 법·제도적으로 다른 절차적 정당성이 있다고 판단한 부분을 자세히 검토하여 입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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