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풀자'는 학교를 법정으로 만들 뿐

가장 근본적 접근은 예방

학교폭력 해법이 있다고? 너무나 반갑고 놀라워 그 해결책을 사고자 하였다. 금은보화도 수강료도 필요 없는 그 해결법은 “학교를 없애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대와 직장, 가정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다. 군대와 직장, 가정을 없애면 된다고 한다. 내 주변에서 자칭 신기(神氣)가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일찍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터득하고 열심히 선교하였다.

모든 것에 해결책을 가지고 있던 그의 주장은 학교폭력 문제 해결 대책은 ‘법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법이 있으니 법대로 하면 될 것 아니냐?’는 그의 타당한 주장은 학교가 교육기관이 아니라 법정이 되고 경찰서 앞마당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에 경찰관 출신이 들어오고 학교폭력 문제를 심의하는 중심에 SPO(School Police Officer)가 굳게 자리 잡았다. 파커 파머는 “폭력은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라고 말했지만 더 좋은 선택을 모르거나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변명일 뿐이다.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 앞에서 재단 관계자들이 학교폭력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내용을 담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4.7.24 연합뉴스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 앞에서 재단 관계자들이 학교폭력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내용을 담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4.7.24 연합뉴스

사실 학교 주변에서 일어나는 폭력들은 넘치고 넘친다. 교감 선생님의 뺨을 때린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어린이와 리코더로 2학년 여자 어린이를 화장실에 가두고 전치 9주의 상해를 입게 한 3학년 여자 어린이는 사회 지도층의 자녀였다. 그 어머니는 이 행위를 ‘사랑의 매’라고 조작적으로 정의하였다. 그 결과 아버지는 공직에서 물러났다.

폭력의 조기교육은 한계를 넘는다. 유독(toxic)한 부모의 조기교육은 자녀를 괴물로 만든다. 어쩌면 지난 계엄과 탄핵의 과정에서 우리는 폭력의 다양한 맨얼굴들을 만났다. 군화 발로 국회 유리창을 부수고 법원 집기를 파손하던 이들에게서 우리는 폭력의 민낯을 보았다. 하지만 장갑차를 멈추고 가슴에 겨눈 군인들의 총부리를 잡고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외치던 목소리에서 비폭력은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진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학교에 몸을 담고 있는 필자는 무엇이 저들에게 폭력과 비폭력의 끝에서 서로를 만나게 하였는지 질문한다.

결국은 학교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기에 그들은 내란을 일으키고도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어 하는 윤동주를 코스프레 하는가? 같은 학교에서 몇 번씩이나 내란을 일으킨 그 동산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가? 질문한다. 기성세대가 그토록 어리고 자기 중심적이고 자신만 알 것 같다고 걱정하던 10대 20대 젊은 여성들이 눈비를 맞으며 밤을 새던 이른바 키세스 응원단의 그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남태령으로 달려가 난방 버스를 부르는 그 유쾌 발랄함은 어디에서 왔을까? 정훈희의 노랫말 ‘꽃밭에서’를 생각나게 한다. 왜 그 젊은이들은 폭력의 방관자가 되는 것을 기꺼이 마다하고, 모두가 ‘불의를 보고 용감히 피해 가는 것’을 선택할 때,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뛰쳐 나왔을까? 그 힘은 무엇인가? 학교에서 가르쳤는가? 배웠는가? 그들이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비상계엄과 탄핵을 넘어 새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 우리 사회가 경험한 폭력의 다양한 모습들에 몸서리가 처진다. 그리고 이를 다시 돌아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은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들을 구한 것’이라고 하였다.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작은 폭력의 나비 날개짓이 1차 세계대전의 큰 불로 번져 2,200여만 명이 생명을 잃은 것처럼 우리 사회도 미증유의 폭력을 마주하고 있었다. 필연코 충동하는 열차처럼,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폭력이 예정하는 결말처럼, 우려하고 절망을 짐작하며 두려워하였다. 무엇이 이토록 큰 폭력으로 이어질 모든 우연들을 나선형 깔대기로 담아 평화의 블랙홀로 끌어들였던가? 원점에서 예방하게 하였는가? 그것은 제주와 광주, 세월호와 이태원에서의 희생이었다. 이 피와 땀과 눈물이 오늘에 되살아나 우리들의 죽음과 폭력을 온몸으로 막아 세웠다.

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것은 3%에 불과한 소금이다. 그래도 아직 하늘이 이 나라를 버리지 못해 3%의 의인들 때문에 멸망에 이르지 못하였다. 3%(혹은 3.5%)가 초기동조자 13%가 되고 머뭇거리던 34%가 합류하여 다시 47%가 되어 언젠가는 70~80%가 되는 날을 기다린다. 이를 위해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폭력에 대해 배워야 한다. “폭력을 다룬다는 것, 폭력에 대해 다룬다는 것은 교육의 본질이다”라고 말한 로제 다둔(2006)의 말처럼 아이들은 학교에서 폭력에 대해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무 쉽게 사법적 해결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학교는 교육기관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교육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많은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공간에서 갈등은 당연히 일어난다. 이 갈등을 대화를 통해 공감하고 용서하며 회복하고 성장하도록 돕는 곳이 학교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갈등을 신고하고 조사하고 처벌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학교폭력예방법은 매우 위험하다. 사법적 해결이 아닌 교육적 해결이 답이다.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 접근은 예방이다. 학교폭력이라는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는 서식지를 없애고 초기에 교육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필자는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오랜 기간 현장에서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과 만나왔다. 그리고 학교폭력 피해자 상담 기관과 가해자 교육기관을 운영해 왔다. 학교폭력으로 인해 고통받는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을 위한 지도 하나를 만들었다. <학교폭력의 모든 것 100문 100답>이 그것이다. 교육계뿐만 아니라 인간의 폭력성과 그 해결점을 찾아 평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권한다. 모든 학교의 도서관과 교사들의 책상에서 그들의 몸과 영혼을 위로하고 손을 잡아 격려하기를 기대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