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재생산 교육 아닌 민주시민 기르는 교육 해야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전 국회의원 징검다리교사정치학교 교장
전 국회의원 징검다리교사정치학교 교장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차 내란 윤석열의 12·3 계엄에 이어, 지귀연-심우정 합작 내란수괴 탈옥이라는 2차 내란, 조희대 대법원의 3차 내란. 다행히 지금까지 지속된 연속 내란은 시민저항에 부딪쳐 모두 실패했다. 민주시민으로 사는 일의 수고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인 민주공화국 주권자 덕분이다.

윤석열, 지귀연, 심우정, 조희대. 이들 내란 주연들은 하나같이 같은 대학 동문들이다. 내란 동조 의혹을 받고 있는 조연들은 어떨까.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이상민 행안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 대법 전원합의체에서 이재명 공선법 사건 파기환송에 찬성한 9명의 대법관. 이들 역시 거의 같은 대학 출신들이며, 모두 소위 SKY 출신이다.

과도한 권력과 부를 차지하는 ‘공부 잘 하는 아이들’

봉숭아 학당보다 더 기괴하고 한심한 작태를 보인 국민의힘 대선후보 쟁탈전 주자였던 김문수, 한덕수도 마찬가지다. 다들 같은 대학 동문들이다. 소위 SKY 출신들이 모두 이들처럼 권력과 부가 보장된 자리에 가지는 않지만, 거꾸로 권력과 부를 차지하는 자리에 있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 소위 SKY 출신들이다.

이들은 보나마나 초등학교 때부터 내내 공부 잘하는 똑똑한 아이라고 칭찬받고, 인정받는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이들이 그 대학에 합격했을 때는 자랑과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더 많은 공적 자원이 집중되는 것을 동의하거나 눈감아 왔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시험을 통과해 얻은 알량한 자격증을 얻어 큰 권한 행사하는 자리에 진입했고, 사회는 이를 용인해 왔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하나같이 탄핵당하고, 탄핵 직전 사퇴하고, 내란 동조 의혹으로 수사대상이 되고, 국민 분노와 지탄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을 선망 대상으로 삼고, 롤 모델 삼고, 내 아이를 그 트랙에 올라타게 하고 싶었던 기대와 욕망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무언가 고장이 나도 단단히 났다. 경고음이 울릴 때가 수리를 해야 할 때다.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석열, 한덕수, 김문수, 지귀연, 심우정, 조희대.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석열, 한덕수, 김문수, 지귀연, 심우정, 조희대.

오만과 자만심이 세상과 그 스스로를 망치게 하는 교육

우리는 지금 교육목적이 소위 SKY 입학, 그것도 법대와 의대 입학이 되는 사회의 필연적 결과를 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교육이 입시준비와 등치되고, 진로는 입시와 동의어가 된다. 교육은 어린 사람들이 성장의 기쁨을 누리며 자라 삶의 주인이자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일이어야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는 그 반대로 질주해 왔다.

시험 잘 보는 능력, 그것도 객관식 선다형 시험 잘 보는 능력은 참된 지적 능력이라 하기도 어렵지만, 인간이 가지는 무수한 능력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능력이 다른 모든 능력을 압도하며 사람에 대한 공적 평가 잣대가 되면 자존감 대신 자만심에 포획된 이들이 세상을 망치며, 결국 자신도 망친다. 이들에게 다양성 인정, 상호존중, 비판과 견제, 집단지성 같은 민주주의 원리는 이해불가 영역이 된다. 경쟁교육 수혜자이자 승리자들이 벌인 내란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적중심 경쟁교육은 인간이 얼마나 다층적이고 복합적 존재인지 다들 알면서도 성적 외의 모든 요소들을 거세하도록 강요한다. 그리하여 성적 상위 아이들은 승자의 오만과 경쟁탈락 두려움에 휩싸이고, 성적 중하위 아이들은 자존감 약화와 의욕상실, 무기력에 시달린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 많은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잠재력을 개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 발휘할 기회를 원천차단 한다.

성적중심 경쟁교육체제 수혜자이며 승리자들인 내란세력들이야말로 이 체제를 바꾸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체제의 꼭대기에 올라오기까지 이들은 우월의식과 차별과 혐오를 내면화한다. 그러니 9수, 8수까지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 그들에겐 인간승리로 미화되지 않겠는가. 그들에게는 헌법과 민주주의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파괴하는 일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민주주의 구한 헌법처럼 교육기본법이 교육 살리게 해야

법전 속 활자에 불과했던 헌법이 내란세력을 응징하고 있다. 활자에 불과했던 헌법조항들이 비로소 현실 속에 작동해 민주주의를 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위력과 소중함을 확인하고 있다. 헌법 제65조 국회의 대통령·국무위원 등 탄핵소추 의결권, 헌법 제77조 비상계엄 구성과 해제요건, 헌법 제113조 헌법재판소 탄핵결정권, 헌법 제116조 선거운동 균등기회 보장권 등이 그렇다.

이제 헌법처럼 교육기본법 제2조가 우리 안에 살아 숨쉬게 해야 한다.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교육기본법 제2조)

누군가는 이번 내란세력은 박정희·전두환 교육 산물이 아니냐며 반문할지 모른다. 안타깝지만 군사독재가 끝난 후 첫 문민정부였던 김영삼 정부는 5·31 교육개혁으로 더 노골적으로 경쟁과 효율원리를 앞세운 교육정책을 추진했고, 부끄럽지만 김대중 정부는 교육을 인적자원 양성으로 보며 교육부를 아예 교육인적자원부로 바꿨다. 이 기조는 오늘날까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성적중심 경쟁교육은 아이 낳기 거부하는 사회, 4세 고시, 7세 고시, 초등 의대반처럼 더욱 괴물이 되어 우리 아이들과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젊은 SKY 출신들마저 엘리트 카르텔에 올라타 성적 중심 경쟁교육을 옹호하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 사태 때 ‘전교1등 출신 의사’ 운운하는 웹자보를 보지 않았나. 그러니 인격도야나 자주적 생활능력, 민주시민 자질을 기르는 교육이 설 자리는 내내 없었고, 지금도 없다. 여전히 SKY 합격자 수가 교육성공 잣대가 되는 사회다.

적자생존을 위한 교육 아닌 사람을 기르는 교육

또 하나, 교육도 사회의 일부이고, 극단적 양극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적자생존 경쟁사회에서 경쟁교육 비판은 하나마나한 공자님 말씀이라며 고개 돌리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반만 맞는 말이다. 그럴 듯한 사회구조적 관점을 앞세우지만 만물경제결정론이나 무한 순환론에 빠져 교육개혁을 회피하는 명분이 될 뿐이다.

제도나 정책이 사람을 규정하지만, 역으로 그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건 구체적인 사람이다. 이번 내란과정에서 내란세력들이 온갖 편법과 법·제도 허점을 악용해 내란진압에 저항하고 국면전환을 도모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을 생생히 보고 있지 않나. 생존과 생계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경제정책도, 노동정책도 구체적인 사람이 만든다. 연금제도도 복지안전망도 마찬가지다.

성적중심 경쟁교육은 0.1% 기득권들에게 권력과 부를 독점할 공인 프리패스를 부여해준다. 이제는 대를 이은 계층 재생산에 부역하고 있기도 하다. 정책과 법·제도를 직접 만드는 사람도 중요하고, 그들이 어떤 정책과 법·제도를 만들게 할 것인가를 주문하고 요구하는 주권자 생각과 태도도 중요하다. 이 점에서 사람의 성장을 돕는 교육이 정책과 법·제도의 토대이자 동력이 된다.

이제 성적중심 경쟁교육 대신 정말 사람을 기르는 교육, 그것도 민주시민을 기르는 교육을 하자. 그래서 오만과 엘리트의식에 찌들지 않은 민주시민인 대통령, 민주시민인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 민주시민인 장관과 총리, 민주시민인 군인이 당연한 사회가 되게 하자. 그것이 또 다른 내란을 차단하는 길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