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 집단 무의식 속 ‘사회적 책임’ 각인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은 도덕적 의무
제국주의 옹호와 탈식민화 명분 제공 이중성
불평등 심화, 정치적 양극화 등은 한계 노출
영국에서 35년을 살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이 나라 사람들의 독특한 '감성적 사회주의' 성향이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저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동정심에 기반한 정치문화.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소설가 찰스 디킨스(1812-1870)가 영국사회에 심어놓은 깊은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복지국가의 감성적 토대를 만들다
디킨스의 가장 큰 유산은 영국인의 집단 무의식 속에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을 각인시킨 일이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더 달라고요?"라는 대사는 단순한 문학적 표현을 넘어 영국 사회복지제도의 상징이 되었다. 20세기 영국이 세계 최초로 국민건강서비스(NHS)를 도입하고 포괄적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디킨스가 심어놓은 이 감성적 토대가 있다.
하지만 이 토대는 양날의 검이었다. 복지를 권리가 아닌 시혜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었고, 사회 문제를 구조적 모순이 아닌 개인적 불행으로 인식하게 했다. 영국의 복지제도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온정주의적 성격이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계급사회의 완충장치로 기능하다
디킨스 문학이 영국사회에 미친 가장 교묘한 영향은 계급갈등을 완화하는 안전판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들은 영국의 경직된 계급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지 않으면서도, 하층민에게는 희망을, 상층민들에게는 양심의 만족을 동시에 제공했다.
《위대한 유산》의 핍이나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주인공처럼, 개인의 노력과 운으로 계층상승이 가능하다는 '영국식 아메리칸 드림'을 심어놓았다. 이는 영국이 다른 유럽국가들처럼 격렬한 계급혁명을 겪지 않고도 산업화를 완성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요인이다. 동시에 오늘날까지도 영국 사회의 계급의식이 완고하게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식 자선문화의 DNA를 만들다
현재 영국의 자선단체(Charity) 문화는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축에 속한다. 이는 디킨스가 만들어낸 문화적 유산의 직접적 결과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처럼,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는 인식이 영국사회에 깊이 뿌리내렸다.
이 자선문화는 영국사회의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지속되게 만드는 기능을 했다. 부자들은 자선을 통해 도덕적 면죄부를 얻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선에 의존하게 되면서 구조적 변화에 대한 요구가 약화되었다. 현재 영국의 푸드뱅크 문화나 대규모 자선 이벤트들이 사회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겨지는 현상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대중문화를 통한 이데올로기 전파의 선구자
디킨스는 문학을 통해 대중의 의식을 조작하는 현대적 기법의 선구자였다. 연재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를 작품에 몰입시키고, 감성적 조작을 통해 특정한 세계관을 주입했다. 이는 후에 영국이 세계적인 미디어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문화적 토대가 되었다.
BBC의 공영방송 철학, 영국 드라마의 휴머니즘적 전통, 심지어 현대 영국 정치인들의 수사 기법까지도 디킨스가 만들어낸 '감성적 호소' 방식의 영향을 받고 있다.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이나 현재 노동당의 정치적 수사에서도 디킨스식 감성 정치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제국의 양심을 만들어낸 역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디킨스가 영국 제국주의에 미친 양면적 영향이다. 그는 분명 제국주의를 옹호했지만, 동시에 그의 휴머니즘적 수사는 후에 영국이 식민지를 포기할 때 사용된 논리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문명화 사명'이라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역설적으로 탈식민화의 도덕적 정당성을 제공한 것이다.
20세기 중반 영국이 비교적 평화롭게 대영제국을 해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디킨스가 심어놓은 '도덕적 책임감'이라는 문화적 토대 때문이었다. 물론 이는 실용적 계산이 더 컸지만, 최소한 대외적으로는 도덕적 명분을 제공했다.
브렉시트로 드러난 디킨스적 유산의 한계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그 이후의 정치적 혼란은 디킨스가 만들어낸 영국 사회의 근본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감성적 호소에 기반한 정치문화, 구조적 분석보다는 개인적 경험을 중시하는 사고방식, 그리고 복잡한 현실을 선악구도로 단순화하는 경향 등이 모두 브렉시트 혼란의 배경이 되었다.
'우리 대 그들', '선량한 영국인 대 악한 EU 관료들'이라는 디킨스식 이분법적 사고가 브렉시트 캠페인의 핵심 논리였다. 경제적 이익보다는 감정적 동조를 우선시하는 영국인들의 정서도 디킨스가 만들어낸 문화적 유산의 연장선 상에 있다.
팬데믹 시대에 되살아난 디킨스의 영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영국 사회의 반응은 매우 디킨스적이었다. NHS 직원들에 대한 박수, 자발적 봉사활동의 증가, 그리고 '우리는 함께할 수 있다(We're All in This Together)'는 슬로건까지. 이 모든 것이 위기상황에서 개인의 선의에 의존하려는 디킨스적 사고의 발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기간 동안 영국의 구조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부유층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큰 타격을 받았다. 감성적 연대감은 높아졌지만 실질적 평등은 후퇴한 것이다. 이는 디킨스적 접근법의 본질적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디킨스가 만든 영국, 그 미완의 혁명
결국 디킨스가 영국사회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감성적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정치문화였다. 이는 영국이 20세기에 상당한 사회진보를 이룰 수 있게 한 동력이 되었지만, 동시에 근본적 사회변혁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영국이 직면한 주택 위기, 심화되는 불평등, 그리고 정치적 양극화는 모두 디킨스적 접근법의 한계를 보여준다. 감성에 호소하는 정치, 개인의 선의에 의존하는 사회제도, 그리고 구조적 문제를 도덕적 차원으로 환원하는 사고방식으로는 21세기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지고 있다.
디킨스가 심어놓은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영국사회가 그의 감성적 유산을 뛰어넘어 진정한 사회변혁을 이룰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그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맴돌 것인가? 그 답은 앞으로의 영국정치가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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