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숨은 사적지 찾아 6년째 안욱현 씨
코로나로 직장 잃고 배달 라이더 생활 시작
포털 지도는 사적지 마케팅할 최고의 수단
전국서 활동하는 활동가는 아직도 단 3명뿐
돈 안 되는 사적지 등록신청 반려도 많이 해
포털 지도 사적지 등록하는 건 '역사의 생활화'
'키세스 응원단' 동상 만드는 활동 하고 싶어
요즘 누구나 포털 지도로 길 찾기 한 번쯤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거다. 포털 지도를 검색해서 가는 곳은 주로 찾기 힘든 복잡한 도심이나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포털 지도에 흔한 맛집이 아닌 사적지를 등록해 화제가 된 인물이 있다. 배달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동네 사적지를 포털 지도에 직접 등록을 해 맛집을 찾듯이 사적지를 쉽고 빠르게 찾게 하고 싶다는 배달 라이더 안욱현(38) 씨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지난 19일 경기 부천시 상동 만화 박물관 근처에서 안 씨를 만나 포털 지도에 사적지 등록 활동을 시작한 계기와 앞으로 계획을 들어봤다.
코로나 발생으로 직장 잃어 배달 라이더 시작
뉴라이트에 대한 경각심으로 역사 관심 늘어
-원래 직업은 무엇인가요?
"원래 항공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에 다녔습니다. 2014~2019년 하루 11시간을 일했는데 월급이 300만 원이 안 됐습니다. 저임금 고노동에 힘들어서 그만두고 평택에 있는 삼성 반도체에 배관 보조로 옮겼는데 보조 역할인데도 일당이 13만 원이더라고요. 일당은 높지만 보따리 장수처럼 일이 있는 곳을 찾아 다녀야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1년 뒤 다시 동탄 삼성 반도체로 옮겨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일이 끊겼습니다."
-기술직에서 배달 라이더로 직업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반도체 회사에 다닐 때 오토바이로 출퇴근 했습니다.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뒤 오토바이를 타고 할 수 있는 일인 라이더를 하게 됐고 6년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이더라는 직업이 자유로워서 좋습니다. 일하는 틈틈이 다른 일도 할 수 있고 제 성격도 한 곳에 얽메여 일하는 것보다 자유롭게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사내 분위기가 매우 딱딱하고 고압적이었습니다. 욕은 기본이고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었죠."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나요?
"20대 초반에 이동형 작가의 팟캐스트를 듣게 됐는데 뉴라이트에 대한 방송을 했습니다. 방송 중에 '뉴라이트들이 사람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이승만 동상 등 친일파 동상을 세웠고 언론들은 계속 그런 사람들을 찬양할 건데 이걸 막아야 한다'는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님의 말씀을 인용한 부분을 듣고 무작정 민족문제연구소를 직접 찾아갔고 국세현 선생님의 소개로 방학진 실장님의 특강을 듣게 됐습니다. 그 이후에 방학진 실장님과 용산 유적지로 첫 답사를 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활동하게 됐습니다."
포털 지도 주소와 실제와 다른 곳 많아
전국서 활동하는 활동가는 단 3명 뿐
-포털 지도에 역사를 새기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요?
"결정적인 계기는 밀양에 있는 김원봉 선생 고모부인 황상규 선생님 묘에 답사를 갔었는데 위치와 장소가 다르게 표기돼 있어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습니다. 포털 지도에 '누구누구의 묘'라고 정확히 표기가 돼 있었다면 시간을 허비하며 고생할 필요가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도의 첫 번째 기능은 길 찾기고, 두 번째 기능은 홍보 효과입니다. 포털 지도를 보면 상점들은 빽빽하게 써 있지만 정작 중요한 사적지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보통 식당이 개업을 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포털 지도에 등록하는 겁니다. 그만큼 지도의 마케팅 효과가 크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사적지도 맛집처럼 지도에 표기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함께 일하는 활동가가 많은가요?
"블로그에 취미로 하는 분들이 몇 분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이 일을 하시는 분은 두 명이 있습니다. 한 분은 퇴직하신 역사 선생님이신데 전주에서 활동하시고 또 한 분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일하셨던 민문현 선생님이신데 부산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제가 생업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데 시간을 많이 뺏기지만, 제가 하는 일이 당장에 눈 앞에 보이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더 민주화가 되면 적폐 척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간편한 앱으로 누구나 사적지 등록 가능
돈 안 되는 사적지 등록 신청 반려 많아
-어떤 방법으로 사적지를 찾아 등록하는지 궁금합니다.
"답사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곳을 등록하거나 배달을 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곳을 등록하기도 합니다. 등록은 앱을 통해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도 20년 전부터 사적지를 사진으로 정리해서 올려 주신 분도 계시는데 그분이 아날로그 방식이라면 저는 그것을 포털 지도에 등록해 사람들이 사적지를 좀 더 편리하고 빠르게 찾아갈 수 있게 돕는 겁니다."
-사적지 등록 신청을 하면 반려가 많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반려 이유를 물으면 자료가 부족하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돌아옵니다. 포털 입장에서는 돈 안 되는 사적지보다는 돈이 되는 업소를 등록하는 게 더 이득이니까요. 처음에는 승인을 해주고 나중에 반려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다시 승인 신청을 반복적으로 계속했더니 블랙리스트에 올랐더라고요."
포털 지도 사적지 등록은 역사의 생활화
국회의원, 독립유공자 후손 도움 절실해
-'지도에 역사를 새기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은 어떤 단체인가요?
"모바일 지도(카카오 맵, 네이버 지도, 구글 지도)에 역사적 장소(표석, 동판, 동상, 비석, 탑, 묘소)를 등록해 독립, 민주화, 통일 운동가를 선양하고, 지역 시·군민들에게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단체입니다. 역사 생활화의 일환이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면 더 효율적일 것 같아서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단체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단체를 만들어서 역사와 관련한 지자체 공모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했는데 제가 단체를 운영해본 경험도 없고 혼자 모든 일을 하려고 하니 한계가 있더라고요. 역사와 관련된 여러 단체 카카오톡방(단톡방)에서 일일이 한 분씩 초대를 해서 일단 300명 정도의 인원이 모인 단톡방을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만 주로 60~70대가 많아서 핸드폰이나 컴퓨터 다루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단체를 설계해주는 에이전시도 있지만 거기에 맡기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만한 재정 확보도 어려운 상태입니다. 이런 단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관심이 있는 국회의원이나 독립 유공자 후손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현재 등록된 사적지 수는 400여 개
리뷰는 최고의 사적지 알리기 홍보
-현재 등록된 사적지 수는 몇 개쯤 되나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사적지도 등록도 구글 앱을 통해서 하고는 있는데 국가간의 관계가 좋고 나쁨에 따라 승인을 해주기도 하고 안 해주기도 합니다. 국내에 등록된 사적지 수는 약 400개 정도이고 600개 정도가 반려됐습니다. 승인 반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포털 기업과 연결고리 역할을 해줄 사람들이 필요한데 나서 줄 사람이나 단체는 아직 없었습니다."
-사적지 방문 후 리뷰 달기 운동이 왜 중요한가요?
"일단은 사람들이 사적지에 가고 싶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다녀오신 분들의 리뷰나 사진이 제일 큰 홍보가 됩니다. 리뷰가 많이 달리면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많이 알려지게 됩니다. 맛집 같은 경우도 리뷰를 보고 배달을 시키거나 방문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요. 국가보훈부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해서 발표합니다. 그런 것처럼 '지도에 역사를 새기는 사람들'도 꼭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가 아니더라도 '치욕적인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라는 주제로 치욕적인 인물이나 사적지를 선정해서 '이달의 근현대사적지'로 지정하는 캠페인 활동과 리뷰 달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모임 독립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어떤 단체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간토(관동) 대학살 조선인 희생자 규명사업과 김원봉, 전봉준 등 미서훈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훈장 수여 촉구 운동 등을 벌이는 단체입니다. 2022년 박덕진 대표가 비영리 단체로 등록을 했고 회원은 약 300명 정도로 회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단체도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제가 젊은 청년으로서 실행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토론회도 활발하게 열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도 합니다."
사적지 등록 승인 거절 당할 때 가장 힘들어
친일파 본거지도 같이 등록해 시너지 높여야
-일을 하면서 제일 뿌듯했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YMCA 맞은 편 장준하 선생 사상계 건물이 있던 터 보도블록에 사상계 터에 대한 내용을 새긴 동판이 있었는데 보도블록 공사를 하면서 동판을 뜯어내고 원상 복귀를 해 놓지 않았어요. 너무 화가 나서 언론사에 이 사실을 알려 기사가 나갔지요. 공식적으로 사과를 받았고 다시 동판을 제자리로 돌려 놨던 기억이 납니다. 힘든 순간은 사적지 등록 신청을 했는데 계속 승인 거절을 당할 때입니다. 제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치욕적인 역사도 우리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근에 김건희 씨의 국민대학교 박사 논문이 표절로 확정되면서 국민대학교 지도 리뷰에 '여기가 표절 맛집이냐?'라는 별점 테러가 쏟아졌습니다. 이미 세워져 있긴 하지만 가령 백선엽과 같은 친일파 동상도 이런 방법으로 치욕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친일 반역자들의 본거지도 같이 등록하면 시너지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하는 활동 외에 하고 싶은 다른 활동이 있나요?
"이번 윤석열 탄핵에 큰 도움과 감동을 줬던 '키세스 응원단' 동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진짜 평범한 민중들이 추운 날씨와 눈보라 속에서 윤석열 탄핵을 이끌어 낸 대단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남태령 트렉터 동상, 응원봉을 든 젊은이들의 동상 등 이번 탄핵 정국에서 가장 큰 힘이 됐던 민중들을 기억할 수 있는 동상도 만들고 싶습니다."
-새로운 정부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지역마다 '이동 노동자 쉼터'라는 곳이 있습니다. 노동자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인 대리운전 노동자, 배달 노동자, 학습지 교사, 보험 모집인 등이 이동하면서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쉼터가 생기기 전에는 날씨가 춥거나 더워도 그냥 보도 블럭 위나 야외 벤치에 앉아 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쉼터가 주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지방은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서울도 금천구, 구로구, 동작구, 관악구, 서초구 등엔 쉼터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구마다 하나씩은 있어야 날씨에 상관없이 쉴 수 있고 일을 하다가 졸릴 때도 잠깐 쉬어 가면 사고도 미리 예방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자가 많아지는 것에 발맞춰 쉼터도 많이 생겨 좀 더 안전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안 씨는 "인간과 시간은 없어집니다. 그런데 공간은 영원히 남습니다. 제가 포털 지도에 역사를 새기는 이유는 공간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를 소홀히 하면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친일파나 적폐 세력같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면 안 됩니다. 법적으로 처벌을 해서 나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어야 치욕적인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라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숨겨진 뉴라이트나 친일파, 적폐들의 민낯이 많이 밝혀져서 오히려 다행이라며 지난 역사를 교과서 삼아 미래를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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