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과 산업발전의 핵심이 되는 지적재산권
그것을 보호해야 할 대법원이 병목이 되고 있어
외국기업이 특허소송지로 중국을 꼽는 덴 이유가…
대선 국면에서 대법관 증원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조희대 사법난동’을 겪으면서 대법관 증원에 큰 의욕을 보였던 민주당도 보수 언론들의 공세에 밀려 후퇴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대법관 증원은 이 나라 사법시스템의 정상화를 위하여 반드시 이뤄져야 할 핵심 과제 중의 하나다. 대법관 증원은 단지 사법과 정치의 차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산업정책의 핵심이자 기술혁신과 산업발전의 동력이라 할 수 있는 특허 관련 소송의 원활하고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강대국 미국을 만든 강력한 특허 보호 시스템
에디슨(1847~1931)이 발명가로 대성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그의 탄생 반세기 전에 발명의 장려를 위한 토대를 만들었다. 1787년, 막 독립한 미국이 제정한 연방헌법 제1조 제8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과학과 실용 기술의 진보를 추진하기 위해 작가와 발명가 각자의 저작과 발명에 대해 일정 기간의 배타적 독점권을 보장한다.”
미국은 최초로 특허권을 헌법에 규정한 국가로서 특허권을 헌법을 통해 국가 주권을 보위하는 것처럼 장엄하게 보호했다. 동시에 1790년 제정된 특허법은 혁신적인 발명을 장려하는 실질적인 동력으로 작용했으며, 1802년에는 국가특허국을 설치했다. 미국 특허상표청 정문에는 링컨 대통령의 명언이 각인되어 있다. “특허 제도는 천재라는 불 위에 이익이라는 연료를 첨가시킨 것이다.”
특허상표청의 임무는 다음과 같았다. “발명인은 일정한 기간 동안 그 발명에 대해 독점권 향유를 보장하며, 이로부터 미국의 과학기술 진보를 촉진시킨다. 또한 특허 및 상표 관련 법률 시행을 통해 특허 및 상표와 판권 업무를 관리하고,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업무를 관리함으로써 국가 경제력을 증강시킨다.”
미국은 이렇게 부단한 발명과 특허권의 강력한 보호를 바탕으로 19세기 후반 급속도로 부상했으며, 마침내 영국을 추월해 세계 제일의 공업 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특허권 보호가 이렇게 취약해서는 국가경제 발전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우리나라의 특허권 관련 현실은 딴판이다. 특허 등 지식재산권침해소송에서는 권리범위 해석과 침해여부 판단에 법률적, 기술적으로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쟁점들이 많아 일반 민사법원에서의 신속한 심리가 어렵다. 법원에 소장을 접수한 후 재판부에서 첫 변론기일을 지정하는 데 무려 1년 내외가 소요되는 사례들도 나타날 정도로 법원의 재판과 심리 지연이 심각한 상황이다. 1심 판결을 받는 데만도 거의 2년 정도가 소요될 수밖에 없고, 2심과 3심까지 소송을 종결하는 데 무려 4, 5년이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로서는 장기간의 소송에 따른 비용 부담과 함께,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시간 지연으로 인한 손해까지 모두 감당해야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특허권 침해소송에서의 평균 손해배상액은 6천만 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 미국의 손해배상 평균액 65억 700만 원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심지어 지식재산권에 관한 후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특허침해 평균 손해배상액은 약 2억 원에 이르러 우리나라의 4배나 된다. 중국에서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법원의 대법관은 500여 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중 39명의 판사가 지식재산권법정에서 상고사건 등의 심리를 전담하고 있다(우리나라 전체 대법관은 이 39명보다 훨씬 적은 14명이고, 통상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면 12명이며 특허 전문 판사는 전무한 상태다). 2020년 한 해 동안 중국 최고인민법원에 접수된 지식재산권 관련 사건은 총 5,390건에 이르렀다. 2020년 우리나라 대법원 상고심 지식재산권 사건은 고작 12건이었다. 국내 법원의 특허 소송에 대한 신뢰도가 지극히 낮고 그러니 국내 소송건수도 대단히 적은 상황이다. 해외 기업은 물론 국내 기업들도 최근 국내 법원에 특허 등 지식재산권침해소송을 제기하기보다는 미국 법원 등 해외에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
결국 이렇듯 지식재산권의 보호 수준이 낮고 보상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특허 등 지식재산권은 우리 나라의 창의와 기술혁신을 토대로 한 경제발전 및 산업발전의 강력한 동력 및 유인으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국내 기술개발과 지식재산의 창출에 대한 의지를 꺾는 요인으로 되고, 이는 국내 산업에 대한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와 혁신, 발전을 저해하는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앞서가는 중국의 지적재산권 보호 제도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지식재산권 정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중국은 최근까지 핵심적인 국가정책으로서 지식재산권에 관한 정책과 행정, 사법체계의 개혁과 발전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다. 그리하여 특허 등 지식재산권 소송의 양과 규모는 물론, 이러한 양적 성장에 기초한 판례 등의 대규모 축적과 질적인 발전도 상당한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도 중국은 더 이상 후진국 내지 단순 모방국에 머무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허 등 지식재산권 정책과 행정, 사법체계에서는 오히려 우리나라를 앞서가고 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AI 산업과 로봇, 전기자동차 산업 등의 비약적 발전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중국에서 2020~2022년에 법원에 접수된 특허소송 사건 중 외국기업 사건은 10%를 넘고 연평균 증가율이 45%를 넘을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5배까지 인정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으며, 특히 최고인민법원 지식재산전문재판부의 평균 심리기간은 단지 73일에 불과할 정도로 신속한 심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적에 따른 승소율도 거의 차이가 없어지면서 외국 기업들이 지식재산권분쟁 해결지로 중국을 적극 선택하고 있다.
특허 정책은 한 국가 경제의 운명을 좌우
미국과 중국 사례에서 보았듯이 특허 정책이란 한 국가 경제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특허권 보호 제도가 취약해 기술 개발과 창의 경제의 공간이 막혀 있는 상황이다. 특허 정책도 문제이지만,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의 실질적, 최종적 권리보호를 담당하는 ‘법원 문제’가 심각하다. 만약 대법원에 특허 전문부가 설치되어 특허 소송 등 지식재산권 소송사건에 대해 정확한 심리를 진행해나간다면, 대법원의 영향력을 강력히 받을 수밖에 없는 1심 및 2심도 필연적으로 특허 소송에 대한 전문적인 심리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즉, 우리나라 특허 소송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대법관 증원 및 대법원 특허전문부 설치가 가장 중요한 핵심 조건 중 하나이고 필수적이다. 이렇게 정상적인 사법체계에 의한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창의와 혁신, 기술개발에 토대를 둔 산업발전과 국가경제의 비약적 발전이 실현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유럽의 통합특허법원 설립과 중국 등 다른 국가들의 지식재산권에 대한 사법체계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질 절박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법관 숫자는 결코 성역일 수 없다. 국민들의 재판 받을 권리 보장을 규정한 헌법 정신과 다양화되고 전문화되어가는 시대의 흐름에 부응해야 한다. 대법관은 증원되어야 하고, 전문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한 사법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글은 오세중 변리사의 <오세중의 지식재산 이야기> 블로그에서 특허 관련 통계와 내용을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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