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망동'으로 진정한 사법개혁 호기 맞아

‘판사 출신’ 독점 벗어나 대법관 구성 다양화해야

역시 대법원의 ‘망동’은 시대착오적이었고, 우리 시민들은 내란수괴 윤석열 파면에 이어 다시 한번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사실 그간 이 나라 국회의원들은 유독 법원에 저자세를 보여왔다. 재판에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이 끝나기 때문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기 <상고법원법안>은 아직 국민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 과반수의 서명을 받아 통과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번 조희대 대법원 결정은 너무나 명백한 정치적 판결로서 엄청난 국민적인 분노를 스스로 촉발했다. 그간 법원에 유독 약했던 민주당도 법원에 칼을 빼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 이번 대법원의 ‘망동’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이 나라의 진정한 사법개혁을 실행하라는 하늘의 명령이 되었다. 하늘이 내린 기회를 받지 않으면 거꾸로 화를 입게 되며, 때가 왔는데도 행동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입는다. 사법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나라 민주주의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번 대법원의 ‘망동’으로 입증되었다. 차기 민주정부에서 사법개혁은 반드시 힘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재판정에 착석해 있다. 2025.5.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재판정에 착석해 있다. 2025.5.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2022년 현재 대법원에 1년 동안 접수된 사건 건수는 5만 6000건이 넘는다. 1년 동안 대법관 1인당 5000건 가까운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5일 근무를 기준으로 한다면, 대법관 1인당 하루에 19건을 처리하는 셈이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말이 안 되는 ‘부실’ 상황이다. 고도의 복잡화와 전문화가 진행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법원의 정상화는 당연히 대법관의 대폭 증원과 전문법원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어떻게 12명의 대법관이 민사·형사라는 전통적인 분야를 넘어 행정, 재정, 사회, 노동, 특허 등 제 분야에 대한 전문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조금만 고민해도 상식적인 답이 나오는 사안이다.

독일에서 민사와 형사에 관한 상고심에 해당하는 연방(일반)대법원은 2014년 현재 128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 재정, 사회, 노동 등 다른 분야를 합하면 32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독일 연방 최고법원 구성은 전문화와 국민의 재판청구권 구현의 관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이렇게 독일 최고법원이 복수로 설치됨으로써 개개 최고법원들은 특정한 영역에 관련한 상고사건을 전문성을 가지고 재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신속한 재판을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행정사건을 제외한 일반사건의 최고법원인 파기원(대법원)은 12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우리는 소수로 구성된 특권 대법관들의 ‘망동’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이 망동으로 ‘사법부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우리들의 ‘상식’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들 소수의 특권 대법관의 발호를 막기 위해서도 대법관 증원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대법원이란 결코 그들 소수의 특권 집단이 자의적으로 권한을 남용하는 그러한 존재일 수 없다. 다만 대법관 증원이란 단지 이번 일처럼 소수의 대법관들이 권한을 남용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대법관 증원은 대법원의 비정상적인 사건처리 건수에서 드러나는 비정상적 시스템을 바로잡는 사법 체계의 정상화의 길이다. 최고법원으로서의 대법원의 재판을 받아보겠다는 국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법관의 숫자를 현재와 같이 유지하기 위하여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수 없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이를 통하여 국민에 대한 대법원의 사법서비스를 거부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법관 증원은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충분하다. 법원조직법 제4조 제2항은 “대법관의 수는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14명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바로 이 조항을 삭제하거나 20명, 30명 등 증원목표 숫자로 대체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한편, 현재 사법부의 정치 권력에 대한 종속을 초래하고 있는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은 국회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최고법원의 권위란 소수의 특권 대법관이 권위로써 국민 위에 군림하여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국민의 신뢰로부터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국민의 신뢰란 대법원이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하여 사회구성원들이 그 판결을 수긍할 수 있으며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구현하고 국민들의 권리구제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스스로 보여줄 때 형성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턱없이 부족한 대법관 수를 대폭 증원하고 전문부를 설치하여 전문적이고도 공정하며 신속한 상고심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한마디로, 국민이 대법원의 재판을 받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될 때까지 수요가 존재하는 한, 대법원의 재판서비스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우리의 대법원도 독일, 프랑스 등 서구 대륙법국가의 대법원처럼 100명 이상의 규모의 대법관을 두고 대법원 내에 전문부를 설치함으로써 공정하고 신속한 상고심의 수행에 의한 국민의 권리구제 실현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국민을 위한 대법원이 될 수 있고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의 원리를 구현할 수 있는 대법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대법관은 거의 대부분 판사 출신이 독점해왔다. 그간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 요구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차기 정부에서 대법관 구성에 관하여 구속력 있는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여 이를 관행화하거나 “한시적 규정으로라도” 직역 배분을 법적으로 규율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이를 위해 대법관을 증원함에 있어 소부(小部)의 숫자를 늘리면서 각 소부에 법관 출신이 아닌 비(非)법관 출신으로서 시민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시민사회 대표형 대법관을 적어도 한 명씩 배치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경우에 이 시민사회 대표형 대법관이 기존의 엘리트 판사의 시각이 아니라 법원 밖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시민사회 구성원의 시각에서 판결을 내릴 수 있다.

민주성과 관련하여 사법부는 민주적 정당성에 있어 가장 취약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주의에 사법부가 예외일 수 없다. 사법부 역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사법부이지 않으면 안 된다. 사법부는 국민 위에 군림하여 지배하는 조직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 복무해야 하고 국민을 위한 사법 서비스를 충실히 제공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법원 구성의 민주성 확보, 대법관의 증원, 국민의 사법참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원에 대한 국민의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 차기 정부는 반드시 진정한 사법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 민주주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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