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등한시 하고, 내신에 몰입 전략

지방고, 학종으로 인서울 성공했지만

암기 위주 학습이 가져온 한계 절감

학창 시절 더 균형 잡힌 학습했다면…

대학 입시 뒤에 남겨진 것들

지방 평준화 일반고 출신으로 수시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수능 성적은 국·영·수 4, 3, 7등급, 탐구 두 과목은 1, 3등급이다. 이 성적으로는 정시로 지금의 학교에 들어올 수 없다.

입학 당시만 해도 기적같은 합격이라 생각했다. 지방 일반고에서 내신 2등급 초중반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 합격을 예측한 선생님이 누구도 없었을 정도였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문제는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 시작됐다. 군 문제로 빠른 졸업이 필요해져서 먹고사는 문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과외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한 달 만에 6명 정도의 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당장 생계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과외를 하면서 묘한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영어를 가르치면서 이 감정이 더욱 뚜렷해졌다. 학생들이 "왜 이렇게 해석해야 하나요?" "이 단어는 왜 그런 뜻이에요?"라고 물어올 때마다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 역시 무작정 암기로만 공부해 왔는데, 돈을 받고 가르치는 처지에서 학생들에게 '나도 그랬으니까, 너도 그냥 외워'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2026학년도 수능시험 대비 수업들의 포스커가 빼곡한 서울 대치동 학원가 모습. 2025.2.3. 연합뉴스
2026학년도 수능시험 대비 수업들의 포스커가 빼곡한 서울 대치동 학원가 모습. 2025.2.3. 연합뉴스

수능을 회피했던 나의 선택

돌이켜보면 나는 고등학교 입학부터 학생부 종합전형에만 몰입했다. 성격상 불안감이 높아서 한 번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수능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여러 번의 시험과 학교생활 과정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학생부 종합전형이 내게 맞는 전략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 치명적인 안일함이었다.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갈 거니까 수능이나 모의고사 공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내신과 수능을 함께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나는 생활기록부 관리를 핑계로 학교 시험 기간이 아닐 때는 모의고사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예상할 수 있다. 내신 시험이 끝나면 그때 공부했던 내용들을 거의 다 잊어버렸다. 단기 기억에만 의존하고 복습과 반복을 통해 장기 기억으로 넘기지 못한 탓이다. 나는 그저 많은 시간을 들여 암기에 집중하며 적당한 성적을 받는 학생이었을 뿐이다.

이 문제는 대학에 입학한 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대학에 입학만 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는데, 대학에서는 훨씬 더 깊이 있는 학습이 필요했다. 사회에 나가기 위한 준비도 해야 했다. 전공 서적들은 영어 원서이거나 번역본이라도 교양서적처럼 술술 읽히지 않았다.

과외 수업을 하며 깨달은 나의 한계

과외를 시작하면서 이런 문제들이 더욱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학습 과학이나 뇌과학, 교육심리학 분야의 지식을 하나씩 공부하게 되면서 내가 얼마나 피상적으로 학습해 왔는지 알게 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깨달음은 외국어 실력이 모국어 실력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점이다. 내가 영어 독해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국어 실력의 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힘이 부족한데, 영어 단어나 문법을 아무리 외워도 독해를 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수능 1등급을 위해 풀어야 하는 고난도 문제들은 더욱 그랬다.

이전까지 나는 수능에 대해 꽤 회의적이었다. 너무 지엽적이고, 지방에 있는 학생에게는 불리하며, 재수생들이 많아서 현역에게는 압도적으로 불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수능 공부는 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수능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즉, 대학에서 학업을 하는 데 필요한 역량이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를 판단하는 시험이다. 아무리 지엽적이라고 해도, 1등급 받기가 어렵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내가 수능 공부를 등한시했던 이유를 돌이켜보면, 기초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암기만으로도 성적을 높일 수 있는 내신 공부가 훨씬 더 동기부여가 되었다.

사교육 현장에서 본 현실

생계를 위해 사교육 시장에 발을 담그면서 마음이 복잡해지는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학생이 국·영·수 위주에만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이들은 예체능 과목들도 조기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만난 대치동에 사는 한 학생은 초등학교 6학년인데 벌써 트럼펫, 골프, 농구 등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악기 하나 제대로 다뤄본 적 없고, 잘하는 운동 하나 없이 늘 애매한 위치에 있던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가진 자들은 더 많은 경험에 노출되고, 더 많은 배경지식을 쌓게 된다. 학습 과학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학습은 배경지식이 얼마나 풍부한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작업기억이 처리해 낼 수 있는 정보의 양보다 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으면 문제가 생기며, 인지 과부하가 생기게 된다. 단기기억의 기억용량은 4~5개 수준이라고 한다.

뒤늦은 성찰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에 입시 전략에만 매몰되어 정작 배움의 본질을 놓친 것 같다. 점수를 위한 암기에만 집중했지, 정말로 이해하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는 소홀했다.

과외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런 문제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나 역시 그런 교육을 받아왔고, 지금도 그 한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씩 채워나가고 있고, 과외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만약 학창 시절에 좀 더 균형 잡힌 학습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내 경험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아마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학생들이나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입시라는 큰 산을 넘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쳤다는 생각 말이다.

지금은 그저 이런 경험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외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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