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핵심은 '자생적 질서' 신뢰
국가 권력의 '치명적 자만' 경계해야
프랑스 정원과 영국 정원 차이의 의미
사회공학 유혹 버리고 시민 자유 존중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국가 권력이 사회를 설계하려는 욕망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다양한 비유와 개념을 통해 경고해 왔다. 애덤 스미스(A. Smith)는 사회를 체스판에 비유했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 Hayek)는 이를 '치명적 자만(The Fatal Conceit)'이라 불렀다. 이사야 벌린(I. Berlin)은 자유의 두 가지 개념을 구분하며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강제하는 모순을 지적했고, 칼 포퍼(K. Popper)는 '열린 사회' 개념으로 전체주의적 사회공학을 비판했다. 현대 보수주의 저술가 조나 골드버그(J. Goldberg)는 '영국식 정원 vs 프랑스식 정원'이라는 생생한 은유로 자유주의적 질서의 정신을 설명한다. 이들의 사상을 통해 국가 권력의 본질과 자유주의 질서, 시장경제의 관계를 살펴보면, 국가는 정원사이지 설계자가 아니며, 사회 질서는 구성원의 '자생적 노력'으로 형성된다는 통찰에 이르게 된다.
자생적 질서와 치명적 자만 : 하이에크와 스미스
하이에크는 중앙정부가 사회를 완전히 계획할 수 있다는 믿음을 '치명적 자만'이라고 명명하며, 한 개인이나 정부가 사회 전체의 복잡한 정보를 다 알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경제학의 특이한 과제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설계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조금 아는지를 보여준다"(Hayek, 1988)고 말한다. 즉,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질서만을 참된 질서로 여기는 건 순진한 생각이고, 분권화된 결정과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 더 효율적인 사회적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복잡한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분산된 지식을 활용하여 행동할 때 전체적인 질서와 적응을 할 수 있으며, 한 곳에서 모든 것을 설계하려는 시도는 오만일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다. 이는 시장경제의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 개념과 통한다.
이러한 통찰은 애덤 스미스의 고전적 비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미스는 '체스판의 은유'를 통해 계획가의 오만을 비판했다.
"체계의 사람(man of system)은... 마치 손이 체스판의 말을 옮기듯 사회의 구성원을 배치할 수 있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체스판의 말들이 손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과 달리, 사회라는 거대한 체스판의 각각 개인은 저마다 자체의 운동 원리를 지닌다." (Smith, 1759/1790)
스미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만의 욕구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사회를 자기 뜻대로 밀어붙이면 조화 대신 혼란이 초래된다.
스미스는 1755년 "한 국가를 최저의 야만 상태에서 최고의 풍요로 이끄는 데 필요한 것은 평화, 적당한 과세, 그리고 참을 만한 수준의 사법 행정에 불과하다. 나머지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에 맡겨라. 이 자연스러운 경로를 방해하거나 사회의 발전을 특정 지점에서 멈추려 하는 모든 정부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며,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억압적이고 전제적이 될 수밖에 없다." (Smith, 1755, 재인용)라고 했다. 자연적 질서를 거스르는 과도한 계획은 억압으로 이어진다. 자유주의적 질서란, 국가가 만물을 설계하는 대신 법치와 재산권 보장, 안전 확보 등 '정원 울타리'만 세워주면, 시장과 시민사회가 스스로 조화를 이뤄나가는 체제라 할 수 있다. 하이에크와 스미스 모두 국가 권력은 이러한 자생적 질서를 보호하고 촉진하는 역할에 머물러야지, 이를 대체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자유의 두 개념 :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 벌린의 통찰
국가 권력이 잘못 사용될 때 자유의 이름으로도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사야 벌린은 고전적인 에세이 '자유의 두 개념(Two Concepts of Liberty, 1958/1969)'에서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와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를 구분하며 정치권력의 역할을 성찰했다. 소극적 자유는 '간섭으로부터의 자유', 즉 타인의 방해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영역을 의미한다. 적극적 자유는 '무언가를 할 자유', 즉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짓는 능력이나 자기 지배를 가리킨다. 벌린 자신은 두 가지 자유 모두 인간에게 중요하다고 인정했지만, 적극적 자유 개념의 '남용'을 경계했다. 적극적 자유, 즉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욕구'가 잘못 해석되면 '타인이 너의 참된 자유를 대신 실현해 준다'는 논리로 변질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적극적 자유 개념은 개인이 진정 자기 자신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국가가 개입할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이용되곤 했다(벌린의 분석은 당시 냉전 시대 배경). 그러나 타인이 나를 위해 내 삶의 목표를 결정한다면, 그것은 자유의 실현이 아니라 인간을 수단화하는 일이다. 벌린은 국가나 집단이 '너의 진정한 자신을 위해' 강제로 어떤 목표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자유의 이름으로 행하는 억압이라고 보았다.
벌린의 통찰은 국가 권력의 한계를 강조한다. 국가는 하나의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나 가치체계를 국민에게 강요해선 안 되며, 개인이 간섭받지 않고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는 것이 국가의 역할임을 역설한다. 국가가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선한 삶’을 주입하려 들 때, 오히려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 국가권력에 대한 겸손과 절제를 촉구한다.
열린 사회와 유토피아의 역설 : 포퍼의 경고
칼 포퍼는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1945)에서 전체주의 이념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열린 사회'를 옹호했다. 열린 사회란 한마디로 비판과 변화에 열려있는 사회,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사회이다. 포퍼는 플라톤에서 헤겔, 마르크스에 이르는 역사주의적 유토피아 사상의 공통점은 어떤 완벽한 사회상(像)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강압적 수단도 정당화하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포퍼는 이러한 시도를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이라 부르며, 그것이 자유를 파괴하고 폭력을 낳는다고 보았다. 인간의 지식과 선의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회를 한꺼번에 낙원으로 만들려는 계획은 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뜻이다. 그는 극단적으로 이상적 목표를 추구하는 운동들이 오히려 지상에 지옥을 만들어온 역사에 주목하면서, “이 땅에 낙원을 약속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지옥만을 만들어냈다” (Popper, 1945)고 단언했다. 20세기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평등한 이상향을 약속하며 등장했지만, 결과적으로 대량 학살과 억압의 지옥으로 귀결된 사실을 포퍼는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포퍼는 '열린 사회'에서의 국가 역할을 '점진적 개혁'으로 설명했다. 그는 "대규모 국가 계획보다는 부분적 사회공학(piecemeal social engineering)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꺼번에 사회를 완전히 개조하려 하지 말고 문제점을 하나씩 개선하는 점진적 접근을 의미한다. 예컨대 잘못된 법이나 제도는 하나씩 고쳐나가되, 사회 전체를 백지상태에서 재설계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에서는 비판과 실험 정신이 중요한데, 포퍼는 사회도 과학처럼 시행착오를 통해 개선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열린 사회의 국가는 스스로를 무오류의 설계자로 여기지 않고, 시민들의 비판을 수용하며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틀 내에서 문제를 고쳐나가는 조정자에 가깝다.
포퍼는 “우리는 자유를 위해 계획해야 한다. 자유만이 안전을 더 확실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라고도 역설했다. 국가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완전한 안전이나 완벽한 사회가 아니라, 국민의 자유 그 자체임을 시사한다. 결국 열린 사회에서 국가 권력은 비판과 변화의 통로를 열어두며, 자유를 지키는 한도 내에서 신중하게 개입해야 한다. 이러한 겸손한 국가관은 하이에크의 치명적 자만 비판이나 벌린의 자유론과 일맥상통하며, 이상사회 구현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을 경계하는 자유주의 전통의 일부분이다.
정원의 은유 : 영국식 정원 vs 프랑스식 정원
조나 골드버그(Jonah Goldberg)는 앞선 사상가들의 통찰을 시각적 비유로 풀어내어,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정원 가꾸기에 빗댔다. 그의 저서 '서방의 자살(Suicide of the West, 2018)'에서 처음 등장한 이 '영국식 정원 대 프랑스식 정원' 개념은 자유주의적 질서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은유로 주목받았다. 프랑스식 정원(대표적으로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대칭적이고 화려하게 계획된 모습으로, 정원사가 자신의 비전에 따라 자연을 통제한 결과물이다. 나무와 덤불들은 정원사의 설계도에 맞춰 잘려 나가고 배열되며, 인위적 질서와 미(美)를 구현하지만 그만큼 자연의 자발성을 억눌러 놓는다. 이에 비해 영국식 정원(예컨대 영국의 전통 정원 양식)은 자연스러움과 혼돈 속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골드버그는 영국식 정원에서는 '정원사가 자연이 스스로의 경로를 따르도록 내버려 두는' 철학이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각 나무와 풀은 저마다의 생장을 이루고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게끔 두며, 정원사는 필요할 때만 잡초를 뽑고 울타리를 고치며 맹수를 쫓아내는 보조자 역할에 그친다. 다시 말해, 영국식 정원사는 질서를 완강히 '주입'하기보다 전체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지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골드버그는 이를 영국-미국식 자유주의 체제와 대륙식 절대주의 체제의 차이라고 본다. 그는 미국의 건국 세대가 지향한 정부상은 '정원사'에 가까웠지 '기술자'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미국 헌법에 담긴 정부는 야경국가(night-watchman state)보다 약간 더 많은 역할을 하지만, 여전히 철저히 제한된 정부이며 그 임무는 정원(사회를 위한 공간)의 규칙과 경계를 설정하는 정도다. 골드버그는 "정부가 사회나 경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개입하더라도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제임스 매디슨(J. Madison)이 연방주의자 논고(The Federalist Paper) 10편에서 "정부의 제1목표는 자유"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다시 정원 비유로 돌아오면, 정부는 정원의 울타리를 세우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잡초와 해충을 막아주는 역할을 할 뿐, 어떤 꽃은 어디에 피고 어떤 나무는 어떻게 자라야 할지 일일이 정해주지 않는다. 사회라는 정원에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자기 생태에 따라 성장하도록 두되, 법과 질서라는 울타리를 쳐서 폭력이나 사기 같은 '잡초'를 제거하고, 외적 침략이나 범죄라는 '포식자'로부터 지켜주는 것이 자유주의 국가의 임무다.
결국 프랑스식 정원은 인간의 이성이 자연보다 우위에 서서 사회라는 자연을 강제로 재단하려는 국가를 상징하고, 영국식 정원은 자생적 사회 질서를 존중하면서 최소한으로 관리하는 국가를 상징한다. 이 대비를 통해 골드버그는 자유주의적 질서의 가치—즉 겸손한 국가권력과 살아있는 사회의 자기발전—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국가 권력의 본질과 자유주의 질서
위의 사상가들과 비유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바는 분명하다. 국가 권력의 본질적 임무는 전체 사회의 '설계자'가 아니라 '수호자'라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질서에서는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지식과 노력으로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질서를 신뢰한다. 국가란 그러한 '자생적 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기본 규칙을 마련하고 최악의 교란 요소만 통제하는 역할을 맡을 뿐이다. 하이에크의 말처럼, 우리가 가져야 할 겸손은 '우리가 설계한다고 상상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실제로 아는 바가 얼마나 적은가'를 자각하는 데서 온다. 치명적 자만을 경계하며 개인의 창의와 시장의 조화를 믿을 때, 국가는 비로소 오만한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의 유혹을 떨치고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스미스의 체스판 비유에서 보았듯, 사람들을 바둑돌처럼 여기며 밀고 당기는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각자 자기 삶의 '운동 원리'를 따라갈 자유를 줄 때 사회는 행복하고 조화롭게 발전한다. 벌린이 구분한 자유의 개념은 국가가 어떠한 명분으로도 개인을 함부로 대상화해서는 안 됨을 일깨워주며, 포퍼의 열린 사회론은 완벽함보다 개선과 비판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가 자유민주주의의 생명임을 보여준다. 골드버그의 정원 은유는 이러한 원칙을 일상의 이미지로 요약한다. 정원사 국가는 활짝 핀 자유의 정원을 가꾸지만, 디자이너 국가는 결국 인공 온실 속에 시든 꽃들만 남길 것이다.
요컨대, 국가 권력의 본질은 전체 사회를 창조하는 힘이 아니라, 자유로운 질서가 꽃피울 토양을 제공하는 제한된 힘이라는 점이 자유주의 사상의 핵심이다. 각 개인과 공동체의 자율성과 자생적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사회적 ‘보이지 않는 손’의 질서를 존중할 때, 국가는 비로소 폭압적 주인이 아닌 성실한 정원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 이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자유주의 전통의 귀중한 교훈이다. 오늘날에도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 간의 건강한 관계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
<참고 자료>
Berlin, I. (1969). Two Concepts of Liberty. In Four Essays on Liberty (pp. 118–172).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Original work delivered 1958)
Goldberg, J. (2018). Suicide of the West: How the Rebirth of Tribalism, Populism, Nationalism, and Identity Politics is Destroying American Democracy. New York: Crown Forum.
Hayek, F. A. (1988). The Fatal Conceit: The Errors of Socialism.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opper, K. (1945).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Smith, A. (1790/1982).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D. D. Raphael & A. L. Macfie, Eds.). Indianapolis: Liberty Fund. (Original work published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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