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 이익집단화…심지어 무당집 방불

이슬람 배척하며 유대교 수용…사대주의 행태

평화를 위해 헌신한 프란치스코 교황 본받아야

예수 가르침 실천하는 신앙은 헌법 정신과 일치

1. 기독교적 가치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을 앞둔 2025년 1월 11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미국 최고 권위의 훈장인 ‘최우수 대통령 자유의 메달(the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with Distinction)’을 수여했다. 1963년 제정된 자유의 메달은 미국의 번영과 가치, 안보, 세계 평화, 문화, 스포츠, 과학, 기타 중요한 사회, 공공 또는 민간 활동에서 특별한 기여를 한 민간인에게 미국 대통령이 주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이 중에서도 ‘최우수’ 자유의 메달은 더 높은 등급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최우수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당시 백악관은 프란치스코 교황 선정 이유에 대해 “그는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사명을 결코 멈춘 적이 없고, 이전의 다른 어떤 교황들과도 다르다”며 “우리에게 평화를 위해 싸우고 지구를 보호하라고 명령하는 도전적인 선생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엇보다도 그는 민중의 교황”이라며 “세계를 가로지르며 밝게 빛나는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의 빛”이라고 덧붙였다. 기독교인에게 이보다 더 한 찬사가 있을까? 진정한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고 예수를 통한 구원과 영생을 갈구하는 종교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종교다. 특히 16세기 종교개혁으로 등장한 개신교(Protestant)의 핵심 사상은 이른바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복음주의는 바로 예수의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을 뜻한다.

자유의 메달 선정 이유에도 나와 있듯이 예수의 가르침은 사랑, 용서, 평화, 평등, 관용, 도덕, 헌신과 희생,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감 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상을 섬기지 않고, 온유하며, 권력과 돈을 배척하고, 탐욕을 멀리한다. 아울러 사회의 잘못된 인습을 올바른 방향으로 개혁할 것을 요구한다. 한마디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거다. 따라서 당시에 예수는 도덕철학자이자 개혁가 내지 혁명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이야말로 오늘날 세속의 헌법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교황청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 그것이다.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가톨릭교회에서 파격적인 개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동시에 헌법상의 평등권 실현에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얼마나 개혁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인가?

 

지난 2월8일 오후 동대구역 광장에서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국가비상기도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며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8일 오후 동대구역 광장에서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국가비상기도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며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 한국 개신교의 현실

우리 사회의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현실은 어떤가? 물론 대한민국 개신교도 전부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수의 개신교 목회자와 신도들의 행태를 보면 그러한 예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지극히 멀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 교회의 대형화, 기득권화, 세습화, 부의 축적과 탐욕,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면모, 지나친 배타성과 선민의식, 계급의식, 편협성과 불관용, 다양성의 배제, 독선, 헌법상 정교분리원칙의 거부, 기회주의와 이기주의 등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타락한 개신교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늘 재벌과 권력층 등 기득권 강자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심지어 충견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굳이 배려가 필요 없을 강자를 축복하고 약자는 안중에도 없다. 한마디로 예수가 그렇게도 경고했던 돈과 권력에 한없이 집착하는 행태를 보인다. 아마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돈이 포기하기 가장 어려운 요소일 것이다. 또한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의 도덕적 타락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적지 않은 교회가 배타적 사교클럽이자 사악한 이익집단이 된 듯하다.

자주 인용되는 미국 상원의 채플 목사였던 리처드 핼버슨 목사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어떤 이는 이렇게 덧붙인다. “교회는 한국으로 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 더 나아가 최근 어떤 이는 “무속과 결합한 많은 한국 교회는 결국 무당이 지배하는 대형 점집”이라고 일갈했다.

3. 개신교와 반공 이념의 결탁

한국 개신교의 특성 중 하나는 반공 이념과의 결탁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반공 이념은 단순한 사유재산제도와 시민의 자유를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이념이 아니다. 과거 청산을 부정하는 세력과 그에 편승해 온 세력들의 뿌리인 일제강점을 정당화하고 치부를 숨기며 부당한 기득권과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수단으로서 악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예컨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8.15 광복 이후 일제히 반공을 부르짖으면서 독재 정권의 앞잡이가 되었고, 이들 대다수가 오늘날 타락한 개신교의 뿌리가 되었다. 또한 반공 이념은 사회변혁과 과거 청산을 주장하는 개혁·정의 세력에 대한 탄압수단으로 빨갱이 처단이라는 미명 하에 악용되어 왔다.

이처럼 불행하게도 기독교계, 특히 개신교계 상당수가 이러한 왜곡된 반공 이념과 결탁하여 극우화·정치화·기득권화 되었다. 평화를 지향하고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종교의 특성상 이처럼 잘못된 반공 이념은 기독교의 본질과 조화될 수 없다. 예수의 정신대로라면 북한을 비판하면서도 북한과의 평화정착을 위한 다각적 노력도 경주해야 할 텐데, 남북분단 이후 주야장천 반공과 남북대립을 기치로 일로매진하고 있다. 평화를 거부하고 북한을 고립시키고 악마화하여 남북간의 긴장을 최고조로 높힌다. 늘 한반도를 전시에 준하는 위기의 냉전구도로 고착화하고 평화적 통일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자신들의 위상과 기득권을 확고히 하려는 인상마저 준다. 이는 평화적 통일을 국가와 국민의 책무로 선언하고 있는 우리 헌법에도 반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에 이스라엘 국기까지 들고 나와 흔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에 이스라엘 국기까지 들고 나와 흔들고 있다.

4. 개신교의 모순된 사대주의적 행태

우리 사회의 개신교는 매우 모순된 차별도 불사한다. 많은 개신교 집회에 등장하는 이스라엘기를 보자. 이는 이스라엘과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유대감은 이스라엘의 주류 종교인 유대교가 기독교와 같은 뿌리에서 유래한다는 교리상의 동질성에서 기인한다. 또한 이스라엘이 미국의 우방일 뿐 아니라 미국과 한국의 개신교도들이 그렇게도 저주하는 이슬람권과 대척점에 서 있다는 사실에 연유한 듯하다.

하지만 이슬람교는 기독교 및 유대교와 더불어 같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다. 더구나 유대교는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예수를 통한 구원도 부정한다. 기독교의 교리와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심하게 말하면 기독교 자체를 부정한다. 반면 이슬람교는 적어도 예수를 위대한 예언자로 경배한다. 비록 이슬람교에서는 예수가 선지자 무함마드 이전에 온 선지자이기는 하다. 또한 기독교는 유대교 보다 이슬람교와 교리상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도는 이스라엘 및 유대교 이상으로 이슬람 국가 및 이슬람교에 유대감을 느껴야 되는 것 아닌가? 이 점도 교리상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스라엘을 배척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른 국가 및 다른 종교에 차별 없이 우호적이고 평화적인 태도를 보여야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평화를 강조하는 예수 및 종교의 가르침이 아닌가?

5. 개신교의 극우·부패 세력과의 결탁 및 정교분리의 원칙 위배

더욱이 언제부터인가 반민주·반법치·독재·극우 세력과 결탁하여 부정과 부패의 고착화에 일조하고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적지 않은 기독교도들이 과거 일제에 부역했음은 물론, 해방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등 독재정권의 지지 세력이자 버팀목 역할을 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독재정권은 개신교를 통해 정통성을 보완하고, 개신교회는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했다. 한마디로 부패와 불의의 먹이사슬로 상호 보완재의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먹이사슬에 개신교에 의해 설립된 많은 부패한 사학재단들도 자신들의 재산과 기득권 수호를 위해 참여하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이처럼 일제와 독재 청산을 비롯해 불의한 과거의 청산에 반대하면서 필연적으로 사대주의적·식민주의적 행태를 보여 왔다. 이는 대한민국의 역사성과 정통성과 주체성을 부정하는 작태다. 또한 이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자”는 헌법 전문을 비롯한 헌법 정신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상당수의 타락한 개신교도들이 작금의 헌정 파괴의 주범이자 내란 수괴인 윤석열 정권의 탄생과 그 버팀목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윤석열 정권과 그 지지 세력의 행태는 예수가 그토록 금했던 무속과 미신 등 우상숭배의 전형인데, 이를 알면서도 지금까지 지지하는 것을 보면 작금의 한국 개신교도의 상당수는 예수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교리 보다는 현실 정치와 권력 및 탐욕에 경도되어 스스로 미신과 우상 그 자체가 되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도대체 이들 타락한 기독교도들에게는 법과 원칙, 도덕과 정의, 사랑과 평화, 헌신과 봉사, 사회적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감능력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들은 예수와 예수의 가르침을 단 한 번이라도 깨닫고 실천할 의지가 있는 것인가? 예수와 예수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 기독교도의 삶의 목적인가?

한편 우리 모두가 보고 있듯이 최근 윤석열 탄핵 정국에서 상당수의 개신교회와 신도들이 탄핵 반대와 헌재 공격, 특정 정치인 지지 또는 비난, 정당 설립 및 선거 참여 또는 개입 등 지극히 정치적인 사안에 깊숙이 관여하는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물론 이러한 정치적 행태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예컨대 특정 정당이나 특적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고 신도들에게 이를 홍보 내지 강권한다. 심지어 예배시간에 노골적으로 정치적 행보를 보인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는 정교분리라는 대원칙을 규정한 헌법 제20조 제2항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과거부터 정경유착이 우리 사회의 병폐로 비난받아 왔는데, 이제는 정교유착이 또 하나의 병폐가 되었다. 즉 정치권도 개신교회를 이용해 자신들의 지위와 이권을 확장해 왔고, 개신교회도 정치 권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탐욕을 채워나갔다. 그런데 최근에는 더 나아가 개신교가 정치권력 그 자체가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돈 버는 기업체가 되었다. 한마디로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는 정치권력과 반공이념과 돈과의 삼위일체 그 자체가 되었다. 타락의 온상이자, 자신들이 그렇게도 저주하는 사탄이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분향소가 마련된 대구 중구 주교좌 계산대성당에서 수녀와 신자들이 위령기도를 하고 있다. 2025.4.22.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의 분향소가 마련된 대구 중구 주교좌 계산대성당에서 수녀와 신자들이 위령기도를 하고 있다. 2025.4.22. 연합뉴스

6. 참 예수로 돌아가야

예수가 재림한다면 작금의 대한민국 기독교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과거 독일 히틀러 시절 나치와 파시즘에 저항했던 기독교인들, 서독 시절 동서독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기독교인들, 세계 곳곳에서 목숨을 걸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단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보자. 예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라. 이는 헌법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예수를 통한 구원과 영생은 예수의 가르침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 선종했다. 약자를 위해, 평화를 위해 기도했던 교황은 평등과 정의를 몸소 실천했던 성직자로 기억된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그 사제의 모습은 프란치스코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 분은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고, 진정한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이 혼탁하고, 부정과 탐욕과 무력이 난무한 시대에 오래 생존하셔서 세상의 등불 역할을 좀 더 해주시길 바랐다. 그 분이 그토록 갈구했던 주님께로 가셔서 영원한 사랑과 평화를 누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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