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에 면죄부 강제동원 배상안
본말 전도의 한일관계 ‘복원’ 구상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은 없다
한일국교 ‘정상화’는 실은 ‘비정상화’
[창간기획: 신냉전, 판을 바꾸자] ⑤저돌적인 대미투항
| 글 싣는 순서 |
|---|
| 1. 샌프란시스코 2.0 체제 |
| 2. 북 미사일 소동, 우크라이나 제2전선? |
| 3. 사쿠라 다시 피나-새로운 한ㆍ일 유착 |
| 4. 샌프란시스코 1.0 체제 |
| 5. 저돌적인 대미 투항 |
| 6.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가해자 구해주기, ‘병존적 채무 인수’방안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의 조속한 ‘복원’(정상화)을 내걸고 서둘러 온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 배상문제 해결방안을 보면, 결국 ‘일본의 문제’를 ‘한국의 문제’로 바꿔 놓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2일 외교부와 정진석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공동 주최한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 배상문제 해법을 위한 공개토론회는 윤석열 정부가 집권 초부터 서둘러 온 ‘한일관계 정상화(복원)’를 위한 준비작업의 마지막 수순이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토론회에서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이 밝힌 안은 정부 최종안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 전날 박진 외교부장관은 이번 토론회를 해법 마련을 위한 “마지막 중요 행사”라고 규정했다.(<한겨레> 1월 13일) 토론회 소식을 전한 일본 언론들도 “일본과의 외교대립을 피하면서 보상을 추진하는 해결책의 검토작업이 최종단계에 들어갔다”고 한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와 인식을 같이 했다.
서민정 국장이 발제한 해법은 그 동안 정부가 한일 양국간 협의와 국내 민관협의, 법률 검토 등을 거쳐 절충하고 정리한 정부 최종안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 골자는 “피고인 일본기업 대신 제3자가 변제”하는 것이다. 채무자가 제3자와 공동으로 채무를 부담하는 민사소송의 ‘중첩적·병존적 채무인수’ 해법을 활용해 미쓰비시중공업, 일본제철 등 일본 가해기업들 대신에 제3의 지원재단이 채무를 인수해 배상금에 해당하는 돈을 원고(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방안이다. 재단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지원재단’(이하 지원재단)이다. 지원재단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등을 사업 목적에 포함하는 쪽으로 정관까지 변경해 채무인수 준비를 이미 마쳐 놓은 상태다. 재단의 재원은 기업들로부터 받을 기부금인데,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때 일본정부가 ‘경제협력자금’이니 ‘독립축하금’ 따위의 명목으로 한국에 지불한 무상 3억, 유상 차관 2억 달러의 돈에서 일부를 받았다는 포항제철 등 ‘수혜기업’들이다.
과거사를 돈 문제로, 돈 내는 건 피해자쪽
이 방안의 특징은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가 만들어낸 한일 ‘과거사 문제’를 채권·채무 관계 즉 ‘돈의 문제’로 치환해 버렸다는 것이다. 돈으로 과거의 불의와 원한과 피비린내 나는 기억들을 잠재우고 새로운 미래를 함께 쌓아 올릴 수 있을까. 더 중요한 건 그 돈을 내는 게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쪽이라는 점이다. 배상의 주체여야 할 가해자들은 이 해결방안에서 쏙 빠져 버렸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가해자인 일본 기업들은 “(강제동원 피해자=‘징용공’) 배상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일본정부의 공식입장을 복창하고 있다. 한국쪽은 이에 대해 반격은커녕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양보하지 않겠다
12일의 토론회 결과를 두고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정부 관방장관은 “논평은 삼가겠다”며 “한국정부와 긴밀히 의사소통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외무성 간부는 “해결을 향해 가고 싶지만, 일본 입장에서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무성의 또 다른 간부는 “한국쪽은 (피고)기업에 자금 출연을 계속 요구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보이는 등 깊이 발을 들여놨다”고 했다.(<아사히신문> 1월 13일)
말을 아끼면서 한국정부 하는 걸 계속 지켜보겠다는 얘기다. ‘양보할 수 없는 것’이란 일본정부의 사죄와 가해 기업들의 배상금 지불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정부가 일본에 요청하는 “성의 있는 호응”이다. 그것은 일본정부가 배상과 직접 관련이 없지만 한국 내 여론을 호전시킬 수 있는 무언가의 조치를 자발적으로 취하는 것, 그리고 가해기업들이 법률적 배상이 아닌 도덕적 내지 동정적 화합 차원의 기부금을 내는 것이다. 일본정부와 기업은 피해자들에게 잘못했다는 사죄와 반성은 물론이고 지금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채무자(일본기업들) 대신 지불할 지원재단에 기부금 내는 것조차 “난색을 표했다”는 것인데, 거부하겠다는 얘기다. 그것이 바로 일본정부의 기본자세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한국기업의 돈으로 한국의 피해자들에게 배상이든 보상이든 지원이든, 무슨 명목으로든 돈을 줘서 일본 가해기업들에 대한 배상 요구를 침묵시키라는 얘기다. 한국의 일이니 한국이 알아서 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일본 자신의 문제를 한국의 문제로 만들어 떠넘겨 버렸는데도, 당당한 건 오히려 일본쪽이다.
본말전도의 관계 복원
12일 발표한 정부의 ‘병존적 채무 인수’ 방안에 대한 설명을 보면, 한국정부는 마치 주눅든 패배자마냥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이런 일본 입장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일 태세다. 이럴 바에야 애초에 윤석열 정부가 이 문제를 왜 일본정부와 ‘협의’했단 말인가. 일본이 바라는 대로 한국 ‘국내문제’로 처리하고 말지.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일본기업의 자산이 차압당한 상태고, 이를 배상에 충당하기 위해 매각해 ‘현금화’하게 되면 한일관계 악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한일이 조기 해결방안을 찾는 외교협의를 계속해 왔다”는 것이다. 이건 본말전도 아닌가. 중요한 것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과 과거사 청산이 아니라 일본정부와의 ‘복원’ ‘화해’이며, 이를 위해 가해기업들 자산의 현금화를 막아 일본정부가 분노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그래서 일본이 사죄든 기부든 “난색”을 표하자, 정작 문제의 핵심인 피해자 배상문제는 적당히 얼버무려서 넘기고 일본정부 기분을 맞추겠다는 것인가. 그것이 관계 ‘복원’인가.
일본 ‘성의 있는 호응’에도 난색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서민정 국장은 토론회에서 나온 원고쪽의 주장 등을 일본쪽에 다시 전달하겠다고는 했으나, “일본이 이미 표명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을 성실하게 유지,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원재단 쪽도 이 방안이 “가능한 (범위 내의) 최선의 선택지”라고 했다. 다만 지원재단 관계자는 “일본이 뭔가의 방법이나 수준에서 참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단다.
서 국장의 얘기는 1993년 ‘고노 담화’나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 등에서 언급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으로 일본정부의 사죄 요구는 이미 충족됐으니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더는 사죄 요구를 하지 말자는 것이고, 해 봤자 일본정부가 들어 주지 않을 것이니 포기하라는 얘기로 들린다. 지원재단 관계자의 얘기는 그래도 일본정부와 가해기업들의 ‘성의 있는 호응’을 요구하자는 것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를 일본과의 합의 형태로 ‘해결’했다고 공표하는데 필수적인 필요 최소한의 요건일 수 있다. 일본쪽이 그 정도의 ‘성의’ 표시도 하지 않는데 문제 해결을 선언했다가는 국내 여론의 엄청난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일본쪽 반응은 여전히 “난색”이고 침묵이며, 더 지켜 보겠다는 것이다. 한일관계 파탄의 모든 책임을 한국 쪽에 떠넘기고, 한국정부에게 그것을 해결하라며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청산하지 않아 생긴 문제를 한국이 해결하라는 것이다.
청구권협정 뒤에도 끝나지 않은 배상문제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내린 ‘일본제철 징용공 사건 재상고심 판결’의 핵심은,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지적했듯이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불법 강점이며, 거기서 파생된 강제동원은 청구권 협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징용공 배상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일본쪽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다. 일제는 10대 20대 나이의 조선 청년들을 기술을 가르쳐 취직시켜 주겠다, 공부시켜 주겠다고 속여 데려간 뒤 탄광 등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해 놓고 지옥같은 강제노역을 시켰다. 제대로 먹을 것도 주지 않았고, 임금마저 나중에 한꺼번에 모아서 주겠다는 거짓말로 통장에 입금시켜 맡기게 해 놓고는 한 푼도 돌려주지 않았다. 한국 대법원 판결문에 그런 범죄사실들이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구체적으로 열거돼 있다.
가해기업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일본쪽은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의 다음과 같은 조항을 들어 해결이 끝난 문제라고 주장한다.
한일 청구권협정(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협정) 제2조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은 없다
일본쪽은 바로 청구권협정 제2조의 이 마지막 구절을 근거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면서, 그것을 뒤엎은 한국 대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이 오히려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즉 한일 청구권협정상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은 강제동원 피해자들 배상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일본 패전 당시의 구 일본제국 관련 일반 재산 및 채권·채무 등의 관계를 승전국과의 협의를 통해 처리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일본쪽이 늘 자신들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하나의 자료로 거론하는 한일협상 당시 한국쪽이 제시한 8개 항목 요구도 기본적으로 한일 양국간의 재정적·민사적 채무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그 8개 항목 중에 제5항에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 청구”라는 문구가 있지만 8개 항목의 다른 부분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내용은 없으므로, 위 제5항 부분도 일본쪽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 청구에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까지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대법원은 지적했다.(<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양심적인 일본 변호사들의 징용공을 위한 변론>, 메디치)
즉 청구권협정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은 강제징용 피해자 등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배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창록 경북대 교수의 지적도 바로 이를 두고 한 얘기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강제동원 피해자들 배상·보상을 위해 평생을 애써온 일본인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도 “애초에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밥상’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식민지배 시절의 개인 피해 손해배상 문제가 상정돼 있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강제징용자의 질문-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한겨레출판)
여전히 살아 있는 개인 청구권
또 일본 외무성도 공식적으로 인정했듯이,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된 것은 피해자 배상과 관련한 정부 차원의 ‘외교보호권’이지 피해 당사자 개인들의 청구권이 아니다. 정부간 합의나 협정에 의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더라도 없어지는 것은 정부가 자국민 피해자 구제를 위해 발동할 수 있는 외교보호권일 뿐, 피해 당사자의 개인 청구권은 어떤 협정이나 법률로도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 최근 국제법의 일반적 흐름이다. 이는 실제로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를 비롯한 일본 각급 법원들 판결에서도 인정됐다. 일본 법원은 피해자 개인들의 청구권은 살아 있되, 다만 양국간 정부협정에 의해 재판을 통해서는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그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일본 법원들 중에는 중국 강제동원 피해자들 판결에서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인정하지만 중일 국교정상화 때의 합의에 의해 재판을 통해 배상을 청구할 순 없다며, 판결문에 가해자와 피해자간 ‘화해’를 통해 비법률적인 위로금 등의 형식으로 사실상 보상을 해 줄 수 있다는 걸 ‘부기’(附記)로 명기했다. 실제로 그것을 근거로 화해금(위로금)이 지급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한 여러 사례들이 다수 있다.(<강제징용자의 질문>) 일본쪽은 유독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그런 가능성마저도 거부하는 완강한 자세를 고집하고 있다.
한일협정의 토대 샌프란시스코 조약, 주역은 미국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앞서 인용한 한일 청구권협정 제2조에도 나오듯이, 한일협정, 한일청구권은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제2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종결한 조약인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일본의 전쟁범죄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특히 일본이 조선과 중국 등 아시아에서 저지른 침략과 식민지배 범죄와 배상은 거의 무시했다.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등 서방 열강들의 식민지들에 대해서는 최소한이나마(가능한 한 일본이 배상을 적게 하게 한다는 이 최소한의 배상 원칙도 미국이 정한 것이다) 배상이 이뤄졌으나 최대 피해국들인 한국(남북한)과 중국(대만과 베이징)에게 배상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은 배상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강화회의와 강화조약에 아예 초청받지도 못했다. 그 때문에 중국은 줄곧 2차 대전 후의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재편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샌프란시스코 체제)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사자들이 초청받지도 못한 조약에 대한 당연한 대응이다. 말하자면 일본과 미국은 한국의 참석과 조약 서명을 의도적으로 막았던 샌프란시스코 조약 후속 협정이라 할 수 있는 한일협정,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한국 대법원의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 주장한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한국의 문제로 바꿔 버렸다. 그리고 한국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회의를 주도하면서 조약 초안을 만들고 1951년 9월에 조약을 체결해 전후 질서재편을 주도했던 것은 미국이었다.
일본이 저렇게 과거사 범죄행위에 적반하장식으로 오히려 큰 소리치는 기이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요소를 반드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한일 국교정상화는 미국에게 필요했다
한일협정(한일국교 정상화) 교섭을 시작한 것부터 그렇다. 한일간의 국교정상화 교섭은 1951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시작됐다. 한국으로서는 국가 존망이 달려 있던 그 어려웠던 시기에 미국은 한일 두 나라 대표들을 사실상 미국이 단독으로 지배했던 도쿄의 연합국총사령부(GHQ)에 불러 놓고 협상을 시작하게 했다. 미국의 보호 육성 아래 한국전쟁 특수로 다시 일어서기 시작하던 일본과 파괴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던 분단국가 한국이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벌였을 리 없다. 일본 식민지배가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는 따위의 ‘구보다 망언’류가 그 뒤의 협상장 안팎에서 횡행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해 10월에 본격적인 한일협정 교섭이 시작됐는데, 이미 그해 7월부터 미국이 배후에서 그것을 주도했다는 자료들이 있다.
그 시기는 바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을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말하자면 한일협정과 일본을 패전국에서 하루 아침에 사실상 전승국이자 미국 최대의 동맹국으로 만든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위한 작업들은 거의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으며, 그것을 주도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봉쇄를 위한 반공전략, 즉 냉전전략을 위해 패전국 일본을 동아시아 최대의 미국 냉전교두보로 키웠고, 그 교두보를 지키는 기지 역할을 맡기기 위해 반토막난 한국을 일본 엔경제권에 편입시키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일 국교정상화(한일협정)가 필요했다.
국교 ‘정상화’, 사실은 ‘비정상화’
지금 미국은 대중 봉쇄전략을 위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을 앞세우면서 일본에 군비증강을 요구하고 일본과의 군사적 통합까지 추진하면서 미일동맹체제 확대강화를 꾀하고 있다. 이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연장이자 그것의 새로운 버전이다. 말하자면 냉전기의 샌프란시스코체제 1.0이 신냉전기의 샌프란시스코체제 2.0 버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소련(러시아)을 주적으로 삼은 냉전전략을 위해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경제 및 군사적 통합체제를 구축했다. 지금 미국은 중국을 주적으로 한 신냉전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일관계는 다시 ‘정상화’돼야 한다. 그 ‘정상화’는 한일관계의 정상화라기보다는 미국을 위한 정상화다. 한일관계는 오히려 국교 정상화로 ‘비정상화’했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가로막는 비정상화였기 때문에, 문제가 풀리는 게 아니라 늘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었다.
윤석열 정부의 대미 투항
윤석열 정부는 미일동맹의 신냉전 전략에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5월의 취임사에서부터 취임 100일 연설, 지난해 11월 프놈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의 언설, 그리고 올해 초 신년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윤대통령이 쉼없이 거듭 강조하는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이 중국을 “최대의 경쟁자”로 지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신냉전 패권전략의 상투적 레토릭과 거의 그대로 겹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런 대미 투항적인 자세를 미국과 일본은 기꺼워할 것이다.
선진국 한국의 부상은 동아시아의 일대 사건
샌프란시스코체제 1.0 시기에 한국은 존재감 없는 미일동맹의 종속적 하위체제였다. 샌프란시스코체제 2.0 시기인 지금 한국은 미일동맹의 종속적 하위체제인 점에서는 아직 기본적으로 큰 변화가 없으나 존재감이 커졌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 종속적 하위체제에서 벗어나 대등한 관계로 일어설 수 있는 전례없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의 상대적 쇠퇴와 함께 ‘선진국’ 한국의 부상은 근대 이후의 동아시아 역사에서 대단히 인상적인 하나의 사건일 수 있다. 한국이 미일동맹 또는 일본의 종속적 하위체제에서 벗어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본과 중국, 미국에겐 늘 중요한 기회로 작용하지만 남북한에게는 소모적이고 자멸적인 남북분단 문제를 어떻게든 해소해야 한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 분단을 한 축으로 한 낡은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미일동맹에 집착함으로써 한국에게 찾아 온 전례없는 기회를 날려 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에게 한일관계 ‘정상화’의 해결책을 들고 오라는 일본의 오만 뒤에는 미국이 있다.
언제나 일본 편을 든 미국, 과거사 문제의 본질
과거사 문제에서 미국은 거의 언제나 일본 편을 들어 왔다. 이 문제의 근원을 살피기 위해서는, 알다시피 1965년 한일협정 때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청구권협정은 기본조약의 4개 부속협정 가운데 하나)으로 다시 되돌아가 봐야 한다. 그 제2조는 이렇게 돼 있다.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영문으로 작성돼 있는 이 조약의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를 한국은 양국간에 체결된 그 이전의 모든 조약 및 협정이 모두 무효라고 해석하지만, 일본은 패전으로 무효가 됐을 뿐 체결 당시에는 국제법상 헙법이었다고 해석한다. 일본식 해석이 옳다면 일본은 한국을 침략하지도 불법점령하고 식민지배한 적도 없다. 모두 국제법적으로 합법이었다. 일본은 따라서 한국에 배상할 이유가 없고, 또 실제로 배상하지 않았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이 조약을 사실상 종용하고 주도한 미국이 한국쪽 해석이 옳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면 일본의 주장은 대부분 근거없는 것이 됐을 것이고, ‘독도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피해자 배상문제도 지금처럼 꼬이지 않았을 것이다. 1965년의 한일 기본조약의 모법이라 할 1951년 체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패전국의 전쟁범죄에 징벌을 가하고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한다는 강화조약 본래의 취지에 충실했다면, 미국은 그랬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미국은 오히려 일본의 손을 들어 주었다.
미국은 한일 양국이 문제의 그 '이미 무효' 구절을 각기 자국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도록 했다. 이는 사실상 일본 편을 들어 준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나 위안부 피해자 사죄, 배상 문제, 그리고 아베 신조 정권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등에 대해 미국은 분명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분쟁 수위가 일정 고도에 이르면 한일관계를 빨리 정상화하라고 양국을 다그칠 뿐 시비를 가린 적이 없다.
자초한 대미투항 삼층구조
파탄과 회복을 오가는 한일관계의 반복적 패턴이 갈수록 더 심화되는 근본 원인은 일본의 과거사 청산을 가로막은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가장 큰 부담을 3국 중 약자인 한국이 늘 지게 되는 구조로 돼 있다. '독도문제'의 경우, 일본이 자국 영토 다케시마라 선언해 놓고 뭉개면 한국은 때만 되면 항의하고, 시위하고, 노래를 지어 부르고, 군대를 동원하고, 대사를 소환하고, 외국에 하소연해야 한다. 미국은 지켜 보고만 있다가 양국간 불화가 일정 수위에 도달하면 관계를 '정상화'하라고 다그친다. 그럴수록 한일 두 나라의 대미 의존관계는 더욱 깊어간다. 그것이 미국의 계산이자 전략이다. 불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놓인 동아시아의 두 종속국가를 갈라 놓고 지배하는 고도의 통치전략이라고 해야 할까.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도 마찬가지다.
한미일 삼각공조(또는 동맹) 그 하중이 일본을 거쳐 결국 한국의 등에 누적적으로 얹히는 삼층구조다. 70년이 넘도록 풀리기는커녕 갈수록 얽혀만 가는 남북관계와 분단문제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대미 의존, 대미 투항의 피할 수 없는 결과다. 상당 부분 자초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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