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에 대한 면죄부로 존재이유 부인하는 결과

헌법과 법률에 대한 국민의 상식과 어긋나는 상식

2004년 관습헌법 결정 때와 같은 존폐 논란 일 것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 선고를 오는 4일 내리기로 했다. 이 결정은 내란 우두머리 대통령 윤석열의 직위 박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지만 또한 헌법재판소 자신의 존폐를 가를 수 있는 결정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헌재가 가능성은 낮지만 인용이 아닌 기각이나 각하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헌법을 유린하고 짓밟은 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그 같은 결정은 헌재의 존재 필요성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낳고 기관의 존폐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촉발할 것이다. 그와 같은 '자해적' 결정을 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헌재의 설립 배경이나 과거 헌재의 결정이 보여준 한계들, 특히 이번에 헌재의 심의 과정에서 국민들이 보낸 분노와 실망은 결정의 내용에 따라 헌재의 상당한 개편에서부터 폐지론까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듯하다.  

헌법재판소가 설립 취지에 맞게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보여준 경우는 분명 적잖았다. 헌법적 쟁점에 대해 내린 몇몇 결정들은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호주제 위헌 결정이었다. 헌재는 2005년 2월 3일, 민법 제781조 호주제에 대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제도로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은 가족 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고, 여성의 권리 신장에 기여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도 꼽을 수 있다. 2019년 4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임신 초기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위헌 확인 결정(2018년)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대해 신념의 자유를 존중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04년 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위헌 결정 소식을 지켜보는 시민들. 2004.10.21 연합뉴스
2004년 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위헌 결정 소식을 지켜보는 시민들. 2004.10.21 연합뉴스

반면 민주적 요구와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판결들도 많았다. 특히 '관습헌법' 관련 판결은 헌재의 권한 남용과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거센 비판을 샀다. 2004년 10월 21일, 헌재는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한 위헌확인 헌법소원 심판에서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이 존재한다고 판결했다. 수도를 서울로 정한 것이 명문의 헌법 조항은 아니지만,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오랜 관습을 통해 형성된 헌법적 효력을 가진 관습헌법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은 ‘기상천외’한 논리라는 비판을 샀다. 성문화된 헌법 조항의 명확성을 약화시키고 법적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을 샀으며,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의한 입법권과 민주적 정당성을 부인하는 결정이라는 규탄을 받았다. 과거의 관습을 헌법적 효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관습헌법 판결을 비롯해 적잖은 판결들이 헌법재판소의 존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면서 헌법재판소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일각에서는 헌법재판소를 폐지하고 대법원에 헌법재판 기능을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헌재에 대한 이같은 존폐 논란은 역설적이다. 헌재가 과거의 독재정권 때의 어두웠던 기억을 딛고 설립된 기관이라는 점에서 민주화 시대에 접어들어 헌재 폐지론이 나왔다는 것은 헌재의 설립 취지와 실제 보여준 역할 간에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헌재의 설립 배경 자체의 이중적인 성격이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헌재는 과거 독재정권 시대 때의 전신 격인 헌법위원회를 민주화 이후 새롭게 개편한 것이었다. 헌법위원회는 과거 두 차례 설치되었다가 폐지되었다.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에 따라 설치되었다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폐지되었던 헌법위원회가 다시 살아난 것은 1972년 유신헌법에 의해서였다. 그 권한도 위헌법률심판 외에도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등 권한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유신헌법에 의해 독재자 박정희에 의해서 설치된 헌법위원회가 유신헌법에 대해 ‘위헌’을 따지는 것은 애초부터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헌법위원회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결정을 내려 ‘충직한 정권 수호 기관’으로 전락했다. 유신헌법 관련 법률들, 특히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긴급조치 9호 합헌 결정 (1975년)을 내렸고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의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헌법위원회가 지금의 헌법재판소로 재탄생한 것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흐름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헌재의 설립 배경에는 이중적인 측면이 있었다.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의 지적처럼 “실제로는 민주세력이 의회(입법부)의 다수가 될 가능성이 있을 때 ‘입법부 통제장치로 장착한 지배세력의 정치적 무기’의 기능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항쟁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민주화 투쟁의 결실로 포장된, 국민적 항쟁 앞에서 수세에 몰렸던 당시 전두환 세력이 ‘6.29 선언’이라는 기만적 타협 아래 밀어 넣은 지배도구”인 면도 있는 것이다.

윤석열 탄핵 심의 과정에서 헌재는 이같은 양면성을 뚜렷이 보여줬다. 헌법재판소의 근본적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많은 비판, 헌재의 구성과 운영 과정의 문제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입법부의 결정을 비선출기관인 헌재가 심사, 판결하는 것이 갖는 본질적 문제가 어느 사건에서보다 뚜렷이 불거졌다. 국민 모두가 실시간으로 확인한 불법 행위임이 명명백백한 위헌 불법 계엄이라는 점이 조사과정에서 수많은 증거들로 뒷받침된 명백한 탄핵 결정 사안임에도 100일 넘게 시간을 끄는 것에 대해 국민들의 거센 비판과 항의가 쏟아졌다. 헌재가 오히려 입법자 국민의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는 규탄이 일었다.

독재정권이든 민주화 시대든 헌재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다수 국민의 의사와 동떨어진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았던 데서 비롯된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결정과 운영이 과거에는 주로 외부의 정치권력에 의한 압력 때문이었다면 지금은 시민들의 상식과 기대에 배치되고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하게' 돼 있는 헌재 재판관들의 헌법과 법률에 대한 상식, 그리고 헌재라는 기관의 상식이 과연 시민들의 상식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오는 4일 헌재의 윤석열에 대한 탄핵 선고는 헌재와 헌재재판관들의 그 상식을 중대하게 묻는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서는 자신의 존립 필요성을 묻는, 헌재 자신에 대한 탄핵 선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들의 합리적 상식과 어긋날 경우 헌재는 자신의 손으로 자기를 부정하고 무너뜨리는 '자기탄핵'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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