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된' 자들이 아우성치는 106회 삼일절에 부쳐

제106회 삼일절 아침, 서울 서대문 고은산에서 바라본 하늘. 2025.3.1. 사진=김원진 시민기자
제106회 삼일절 아침, 서울 서대문 고은산에서 바라본 하늘. 2025.3.1. 사진=김원진 시민기자

기다려도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봄은 오지 않고 봄을 팔아먹은 자들과 빼앗은 자들만 무장 번성했습니다. 기다린다고 봄이 올 리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영토를 잃은 나의 봄은 해마다 저만치 몰래 서성이며 바람으로나 떠돌다가 까마귀 아가리로 사라졌습니다.

해마다 산천엔 연초록 싹이 돋고 연분홍 꽃이 망울을 터뜨려 봄을 알립니다. 하지만 그런 건 저들의 봄이지 나의 봄이 아닙니다. 나의 봄은 머물 자리를 잃고 저 멀리 어딘지도 모를 남의 땅을 떠도는데, 나는 겨우 서러운 울음만 기별합니다. 기다린다고 봄이 올 리 없습니다. 그냥 오는 봄은 없습니다.

깃발을 들었습니다. 함성으로 펄럭이는 깃발을 높이 높이 들었습니다. 깃발 위에 세운 봄의 영토를 기꺼이 목숨과 바꿨습니다. 서럽게 봄을 기다리던 내가 기다리다 못해 죽어서 봄이 되었습니다. 봄이 머물러 생명을 틔울 봄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그런 봄이 106년, 켜켜이 쌓였건만 죽음으로 세운 깃발의 영토를 함부로 짓밟고 '계몽된' 자들이 번성하여 아우성칩니다. 여전히 몽매한 식민의 땅에 나의 봄은 또 머물 자리를 잃고 저만치 서성입니다. 진달래 피고 목련꽃 피는 봄이 오면 나의 봄도 함께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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