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선 직후 의회 난동자 모두 사면
서부지원 폭동은 양비론 언론 일제히 비판
보수 세력은 정치적 탄압 프레임으로 감싸
폭력 본질 직시하고 민주주의 역행 막아야
우리는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에 익숙하다. 그렇게 배웠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히어로 영화에서 주인공과 친구들은 좌충우돌 고비와 역경을 넘어, 마침내 역대급 악당을 무너뜨린다. 세상은 다시 평화를 되찾고, 정의는 승리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그렇지 않다.
우리는 기대한다. 12.3 내란을 주도했으며, 외환의 혐의까지 받고 있는 윤석열이 결국에는 형법과 군법에 따라 감형 없는 무기징역 혹은 사형 선고를. 그와 함께한 공범들, 선동가들, 정치적·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언론인들, 그리고 폭력을 부추기거나 방조했던 네티즌들까지 깨끗하게 처벌받을 것이라고.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러한 우리의 기대는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내란의 충격과 트라우마가 채 가시기도 전인 1월 19일, 또다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윤석열의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했다. 1.19 사법테러는 대한민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폭동이고,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1월 19일 새벽 2시50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폭도들은 경찰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고 창문을 깨고, 법원 내부로 진입했다. 법원 내부 집기를 파손하고, CCTV와 관제실 모니터를 깨고, 서버 파손까지 시도했다. 심지어 폭도 일부는 우산이나 쇠파이프를 들고 “차은경 판사를 찾겠다”며 7~9층까지 올라가 판사실을 수색하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들은 부상을 당하고, 법원 직원들은 공포 속에서 옥상으로 대피해야 했다. 사태가 정리되기까지 혼돈과 공포의 3시간이었다.
이 사건을 두고 대한민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례적으로 한 목소리를 냈다.
"사법부를 대상으로 한 사상 초유의 백색 테러"
"법치의 최후 보루인 법원을 유린한 충격적 사건"
"민주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초유의 폭동"
"도심 테러,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여야 정쟁은 실제로 선과 악이 분명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거의 모든 사안을 언론이라는 창을 통해서 ‘뉴스’라는 가공품을 접한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사안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살고 있다. 언론은 선과 악이 분명한 사안조차 찬성과 반대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기 일쑤인데, 이번 서부지방법원 테러사건은 대부분의 언론의 관점이 같았다. 보기 드물게 ‘악’이 어디인지 명백한 상황이 됐다. 해피엔딩과 권선징악의 결말을 기대해도 좋을 것처럼 보였다.
대한민국 보수 정치인들의 위험한 궤변
과연 그럴까? 이렇게 선과 악이 분명한 사안을 두고도 보수 정치인들은 폭동을 강하게 규탄하기는커녕 오히려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의 분노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고, 극우 언론은 "사법부도 책임이 있다"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대표적 보수 인사들의 문제 발언을 들어보자.
윤상현 의원 : “우리 젊은 17명의 젊은이들이 담장을 넘다가 유치장에 있다고 해서 관계자하고 얘기를 했다. 아마 곧 훈방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애국시민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 “권력의 눈치만 보는 비겁한 사법부가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장본인.”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 "폭력의 책임을 시위대에 일방적으로 물을 수 없는 상황." "경찰의 과잉 대응이 문제."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 "헌정문란을 멈춰 세우기 위한 비상조치일 수 있다."
황교안 전 국민의힘 대표 : "대통령 지키려다 체포된 분들 면회하고 있다."
트럼프의 부활에서 빛을 보는 대한민국 보수 정치
선과 악이 분명한 사안에서 조차 대체 이들은 왜 이러는 걸까?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작금의 상황에서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폭력을 옹호하고 법치파괴 행위를 감싸고 도는 것은 트럼프의 당선과 깊은 관계가 있다. 보수 지지자들이 돌려보는 찌라시에는 미국 정부가 윤석열을 구출하고 한국의 선거부정을 밝혀 반국가 세력인 이재명과 민주당을 응징할 거란 이야기가 떠돈다. 하지만 보수 정치권의 기대는 이런 수준이 아니다.
불과 4년 전인 2021년 1월 6일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습격했다. 당시 트럼프는 2020년 대선결과에 불복하며, 선거가 도난당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사건 당일 트럼프는 백악관 근처에서 ‘미국을 구하라’는 집회를 열고 이렇게 말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지옥같이 싸우라."
시위대는 쇠 파이프와 트럼프 깃대를 휘두르며 경찰 저지선을 뚫고 의회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의원들은 긴급 대피했고, 일부 폭도들은 상원 의장석을 점거하고 의원 사무실을 약탈하기도 했다. 의사당 구내에서 폭발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사태로 5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 관련자 1570명 이상이 기소됐고, 최고 22년형 선고를 받았다.
트럼프가 자신의 지지자들을 선동하며 말했던 '나라를 되찾기 위해 지옥같이 싸우라'는 구호를 이제 한국에서 윤석열이 외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12일 국회 탄핵소추안 의결을 앞두고 윤석열은 지지자를 선동하면서 끝까지 싸워달라고 호소했다.
한국은 서부지방법원 테러 혐의자들을 체포하고, 가담자들을 구속하고 수사하고 있다. 미국이 그런 것처럼 전원 구속수사를 하며, 한국은 미국이 폭도들을 처벌한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미국 국회의사당을 폭력으로 점거했던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됐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트럼프는 취임 직후 유죄 판결을 받은 지지자들을 전원 사면했다. 혹시 우리의 미래가 되진 않을까?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의 보수 정치인들과 극우 지지자들은 이걸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불과 4년 만에 트럼프는 부활했고 심지어는 다시 대통령이 되어 돌아왔다. 한국에서 극언을 일삼고 폭력을 선동, 옹호하는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미국의 선례를 굳건히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년은 길지 않은 시간이다.
트럼프 부활 공식
미국 의회 난동 사건이 일어난 2021년에는 트럼프는 물론 미국 공화당 정치인들도 폭력을 강력히 비난했다. "미국 시민들이 자국 정부를 공격했다"며 "테러리즘을 동원해 반대하는 국내 문제에 개입하려 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 메시지의 온도와 톤은 달라졌다. 불과 1년 뒤인 2022년에는 공화당 정치인들이 오히려 민주당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물타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급기야 폭동 참가자들을 ‘애국자’로 추켜세우며 사건의 심각성을 축소했다. 심지어 폭동이 일어난 날을 ‘사랑의 날(Day of Love)’이라고 표현하면서, 사건의 성격을 180도 바꾸려 했다. 이 시기에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은 바이든이 당선됐던 선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의회 난동 사건의 의미를 끊임없이 정쟁화 하고 끊임 없이 물타기 하는 시도는 결국 성공했다. 그 공식은 다음과 같다.
1. 폭력을 '애국'으로 둔갑시킨다.
2.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의 수사가 '정치적 탄압'이라고 프레이밍 한다.
3. 끊임없이 여론전을 펼치고 가짜뉴스를 퍼뜨린다.
4. 정당성을 되찾은 것처럼 적반하장으로 행동한다
영화 <Don't Look Up>에서는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돌진해 오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이 위기를 외면하며 오히려 대중을 선동한다. "올려다보지 마!"라는 슬로건 아래, 혜성이 오고 있다는 명백한 현실을 거부하며, 모든 것을 정치적 게임으로 바꿔버린다. 혜성이 다가온다는 실제 사실을 부정하며, 이를 "좌파들의 공포 조장"이라고 몰아간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정부는 결국 혜성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이를 경제적 기회로 활용하려 한다. "혜성을 활용해 희귀 광물을 채굴하겠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논리까지 등장한다.
지금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전략은 간단하다. 국민들이 폭력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정치적 탄압 프레임으로 덮으며, 시간이 지나면 폭도들을 영웅으로 만들고, 결국 그들을 사면하면서 권력을 되찾는 것.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은 트럼프의 부활을 보며 희망을 품고 있다. 트럼프가 폭도를 사면할 수 있다면, 윤석열과 보수 정치인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 던져야한다. 우리는 미국의 길을 따라가야 하나? 어떻게 민주주의의 역행을 막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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