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모리’ : 단절을 넘어 소통에 이른 어떤 사랑
영화 ‘메모리’에서 주인공 실비아(제시카 채스테인)가 사울 샤피로(피터 사스카드)를 만나 우연찮게 연애 아닌 연애를 하게 되는 것은 기이한 인연 때문이다. 사울은 초기 치매를 앓고 있는 남자다. 그는 고등학교(뉴욕 우드버리) 동창회 모임에 갔다가 실비아의 뒤를 좇아 그녀의 집 앞에서 밤새 비를 맞고 노숙을 한다. 실비아는 그가 자신이 12살 때 성적으로 학대한 17살의 같은 학교 학생이었다고 기억한다. 둘의 수십 년 만의 만남은 그렇게 폭력에 대한 기억으로 연결된다.
초기 치매환자를 돌보게 된 신경쇠약증 여자
영화를 보고 있으면 사울보다 더 아파 보이는 것은 실비아이다. 그녀는 신경쇠약증이다. 알코올의존증 사람들의 그룹 세라피(치유 모임)에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술을 끊은 지는 13년째이다. 한 방울도 안 마시는 중이다. 그녀의 과거는 다소 불분명한데, 뉴욕 중산층 집안에서 컸지만 어릴 때 친부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성적 착취를 당한 기억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중이다. 딸인 애나가 태어난 것도 술과 약물에 취해 있던 젊은 시절 일이었던 모양이고, 그래서인지 실비아는 애나를 과도할 정도로 엄격하게 통제를 하며 살아간다.
실비아는 파인스톤 센터라는 곳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며 풍족하지 않게 살아간다. 파인스톤은 정신적 장애가 있는 성인들을 돌보는 곳이다. 치매 남자 사울을 아끼는 조카 새라는 어느 날 실비아에게 찾아와 일종의 부업 개념으로 사울을 돌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선금을 내고 돌아간다. 실비아와 사울의 관계는 그렇게 새로 시작된다. 치매 남자와 신경쇠약증 환자인 여자의 러브 스토리는 어떻게 끝을 맺게 될까.
‘비정상’에 천착하면서 그들 세계 이해하려 애써 온 감독
멕시코 출신 감독 미셸 프랑코는 지금까지 ‘애프터 루시아’(2013) ‘크로닉’(2016) ‘썬다운’(2022) 등을 만들며 부적응자나 루저, 신체와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반적인 사람들(우리가 흔히 정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연결돼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데 주력해 왔다. 미셸 프랑코는 다분히 ‘장애인을 사랑하는 이상 성적 취향’을 지니고 있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데, 특히 ‘크로닉’에서는 주인공인 호스피스 간호사 데이비드(팀 로스)를 통해 엄청난 질병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여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든지, 사지가 마비된 노인이 즐기다 갈 수 있도록 태블릿으로 포르노를 보게 해 준다든지 하는 행위를 실현시킴으로써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감성의 간극이란 게 사실은 얼마나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인가를 보여주려 노력해 왔다.
‘썬다운’ 역시 시한부로 죽어가는 남자의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일탈 행위를 보여 준다. 영국인 닐(팀 로스)은 여동생 앨리스(샤를 갱스부르)와 그녀의 아이들을 데리고 멕시코 해변으로 여행을 왔다가 어머니가 막대한 유산을 남기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지만 정작 혼자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멕시코에 남아 현지 여인을 자기 숙소에 들이며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양, 혹은 포기한 것인 양 살아간다.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상태이다. 앨리스는 당연히 오빠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차단 당하고 단절된 채 소통에 이르는 두 사람
이번 영화 ‘메모리’에서도 사람들은 사울의 생각이나 실비아의 신경질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현대인들은 그런 사람들, 곧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과는 가능한 어울리지 말라는 교육 아닌 교육을 받는다. 그들은 별도로 수용돼야 할 대상들이지, 일반적인 생활을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사울의 동생 아이작(조쉬 찰스)은 형과 육체적으로까지 가까워진 것 같은 여자 실비아에게 다그치듯 쏘아 붙인다. “대체 무슨 속셈이요?(형의 돈을 노리는 거요?)” 동생 아이작은 실비아의 곁에 머물려는 형 사울의 신용카드를 모두 차단시킨다. 정상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정상의 사람들을 그렇게 차단시킨다.
영화 ‘메모리’는 어쩌면 단절과 소통에 대한 얘기이다. 실비아는 알코올의존증에 피해망상증 환자이다. 아버지가 자기를 숱하게 강간한데다 같은 학교 상급생 남자들 역시 자신에게 성적 학대를 가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엄마(제시카 하퍼)는 그걸 그녀의 습관성 거짓말로 치부해 왔다. 실비아와 엄마는 단절됐다. 실비아는 결국 세상과도 사실상 단절된 사람처럼 살아왔다. 남자 사울 역시 치매 병세 때문에 사회와 단절된 사람이다. 따라서 영화 ‘메모리’는 단절된 사람 둘이 만나 그 단절을 넘어서서 결국 소통에 이른다는 이야기이다. 단절의 단절은 또 다른 단절이 아니라 소통일 수 있고 하나의 소통은 또 다른 소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귀납과 연역이 좋은 드라마이다.
새로운 소통 방식을 갈구하는 초저예산 영화
감독 미셸 프랑코는 지금까지의 영화에서, 아내가 죽은 후 대인관계를 대체로 차단하고 살아가다 딸이 강간당하고 살해유기 됐다고 생각하자 폭발하는 아버지의 얘기(‘애프터 루시아’)부터, 자신을 변태 성향의 남자로 지목하며 제명하는 호스피스협회 사람들에게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는 간호사 남자 얘기(‘크로닉’)와 자신의 죽음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으려는 한 부자 남자의 얘기(‘썬다운’)를 통해 극단적으로 모든 관계에서 단절된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해 왔다. 그런데 그것이 역설적으로 소통이라는 의미의 실체에 다가서려 노력하는 것임을 보여줘 왔다.
흔히들 “얘기해 봤자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그건 얘기의 방식과 내용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지닌 룰이나 시스템은 어차피 가진 자(정상이라 불리는 사람, 즉 정상의 기준에 부합됐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수직적이고 일방적이다. 그걸 바꿔야 한다, 가 바로 미셸 프랑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체인 셈이다.
‘메모리’는 미국에서 단 10만 달러(1억 5000만 원)에 만들어진, 초저예산 영화이다. 여기에 제시카 채스테인 같은 스타급 배우가 출연했다. 그건 비싼 영화라면 절대 고민하지도 않고 고민하지도 못하는 세상의 지혜란 것이 존재한다는 걸 할리우드 지성들도 잘 알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돈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삶의 고갱이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영화 ‘메모리’는 영화 자체로 지금의 사회가 얼마나 새로운 소통 방식을 원하고 있는지, 그 절실함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영원히’보다 소중한 단 하루의 기억
극 후반쯤 치매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는 남자와 섹스를 나눈다. 그녀는 섹스를 스스로 금기시해 왔다. 남자는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이다. 둘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잠깐이나마 두 사람은, 특히 남자가 섹스란 것을 기억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자는 처음 가보는 것 같은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부터 늘 주문하시는 거 갖다 드릴까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늘 먹던 것. 늘 같이 했던 섹스. 그리고 늘 나누던 사랑. 우리의 기억 저 밑에는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 서로에 대한 메모리를 지운다는 것은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걸 찾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울의 사랑이 어디까지, 또 언제까지 온전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단 하루라도, 소중한 기억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영화 ‘메모리’의 결론은 많은 사람이 예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이 영화는 지난 1월 22일에 개봉했다. 극히 적은 수의 예술영화관에서만 상영 중이다. 영화 ‘메모리’를 본다는 것은 정치적 혼란을 딛고 일상을 회복해 낸다는 대중들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 영화가 잘 안 되고 있다는 건 우리의 사회정치적 일상이 여전히 불안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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