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문학을 이런 방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란 세상을 향하여 이런 방식으로 발언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클레어 키건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비상계엄이라는 이 불온한 시대에 우리의 내면이 어떻게 다져져야 하는 지를 보여 준다. 조용하지만 강건한 작품이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2020년대인 지금, 오히려 더 울림이 강한 내용이다.
‘까마귀 한 마리’로 문학을 완벽하게 재조립한 작품
일단 이 영화가 원작 소설의 감성적인 문장들을 어떻게 영상으로 옮겼는가를 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에컨대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이런 묘사의 글들을 팀 밀란츠 감독이 어떻게 바꿔 냈을까 궁금할 것이다.
“사람들은 침울했지만 그럭저럭 날씨를 견뎠다. 상점 주인, 기술자, 우편업무를 보거나 실업급여를 타려고 줄을 선 사람들, 우시장, 커피숍, 슈퍼마켓, 빙고 홀, 술집, 튀김가게에 있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 추위에 대해 또 비에 대해 저마다 한 마디씩을 하며 서로 이게 무슨 의미냐고 – 이 날씨가 어떤 조짐은 아니냐고 – 아니 또 이렇게 매운 날이 닥칠 줄 누가 알았겠냐고 물었다.”
“그해 12월은 까마귀의 달이었다. 그런 까마귀 떼는 처음이었다. 시 외곽에서 새카맣게 무리를 짓다가 시내로 들어 와서는 길 위에서 걸어 다니고 고개를 갸웃하고 어디든 마음에 드는 전망 좋은 자리에 뻔뻔하게 홰를 틀고 있다가….”
영화는 이 두 개의 문단을 홰를 틀고 앉아 있는 까마귀 한 마리의 모습으로 축약해 보여 준다. 그런데도 을씨년스런 도시 마을의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문학을 바꿔낸다.
주인공 윌리엄 펄롱(킬리언 머피)에게는 딸이 다섯이 있다. 캐슬린과 조앤, 실라, 그레이스, 그리고 로레타이다. 이 딸아이들과 아내 아일린(아이린 월시)에 대한 얘기는 소설 3장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영화는 이것을 ▲거리의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 장면 ▲아이들이 모여 앉아서 산타에게 카드를 쓰는 장면 ▲실라인지 그레이스인지 아이 중 하나가 주방에서 아코디언을 켜고 있을 때 다른 아이들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 등 몇 개의 씬으로 분할해 보여 준다. 영화는 문학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분해하고 재조립하면서 재해석 영역에서 자신이 뛰어나게 명민함을 드러낸다. 영화가 문학을 재창조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때에 쓰는 것이다.
잘 나가는 자상한 중년 아일랜드 남성의 사소한 일상
주인공 빌(윌리엄의 애칭)은 석탄, 토탄, 무연탄, 분탄, 장작을 공급하는 일종의 연료 배달 업자이다. 워낙 성실한 터여서 장사가 잘 되고 아예 ‘그레이브스 앤 컴퍼니’라는 회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직원들을 잘 대해 주고 월급과 보너스를 늘 두둑하게 주며 사장이지만 배달 일을 직접 다니는, 착한 심성의 남자이다. 배달 일을 하던 어느 날인가는 믹 시노트란 남자의 아들을 만나는데 이 아이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대신 땔감 나무를 주우러 다닌다. 빌은 일부러 차를 세우고 머뭇대다가 주머니에 들어있는 동전을 아이에게 털어 준다. 빌은 1946년생이고 그가 불쌍한 아이에게 돈을 주는 때는 1985년이다. 장소는 아일랜드의 어느 지방 도시이며 가까이에 항구가 있는 곳이다. 빌의 나이는 이제 막 마흔이 가까운 때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디테일을 잘 보여 주지 않는다. 다분히 모호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빌이 40이 다 된 딸 다섯의 가장이며 아내와도 금슬이 좋은 남자라는 건 언뜻 짐작을 하게 할 뿐이다. 아내 아일린은 시내 어느 숍을 지나가다가 빌에게 네이비 색의 구두를 보여 준다. 남편에게 저걸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달라는 투이다. 둘은 사이가 좋다. 그러나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소설을 읽지 않으면 쉽게 파악하기가 힘들다. 특히 그가 미혼모의 아들이라는 것도 영화 중간중간 플래시 백으로 나오는 내용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빌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 그리고 삼촌이라 불렀던 네드, 어머니가 죽은 후에 자신을 양아들처럼, 비교적 유복하게 길러 준 미시즈 윌슨(미첼 페어리) 등을 통해 그가 매우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였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가 부재한 어린 시절의 빌은 마음 속의 상처가 큰 아이였고 종종 아이들이 그에게 침을 뱉었으며, 엄마가 그것을 빨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슬퍼한 아이였다.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계획하면서 빌은 아내 아일린에게 찰스 디킨스의 소설 『데이비드 커퍼필드』를 사달라고 말한다. 반면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에서 빌은 미시즈 윌슨과 삼촌 네드, 어머니에게서 각각 디킨스의 책 『데이비드 커퍼필드』와 보온 물주머니, 낱말 퍼즐 맞추기를 각각 받는다. 이 『데이디드 커퍼필드』는 사소한 듯 중요하게 과거와 현재에서 교차된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에서는 현재의 빌이 원하는 것이 디킨스의 또 다른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이고 어린 시절의 빌이 받은 책은 『데이비드 커퍼필드』였지만 팀 밀란츠의 영화에서는 이를 『데이비드 커퍼필드』로 통일시킨다. 책은 미시즈 윌슨의 자상함이 담겨 있는 선물이었고 빌은 다섯 아이의 가장으로서 미시즈 윌슨같은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한다. ‘사회적 품위의 게승’이라는 측면에서 찰스 디킨스 소설은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한다.
결코 사소하거나 평범할 수 없는 막달레나 수녀원의 일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빌의 사소해 보이는 일상, 평범한 가정의 풍경,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로 점철돼 있는 척, 사실은 매우 중요한 것들, 그리하여 살면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려는 작품이다. 빌이 석탄이나 갈탄을 배달하는 거래처 중 한 곳이 바로 막달레나 수녀원, 일명 막달레나 세탁소라 불리던 가톨릭 수녀회이고 거기서 그는 어쩌면 평소엔 사소한 일로 여겨왔던 일 때문에 큰 고민에 빠진다. 알고 보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참혹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수녀원으로 배달 일을 하는 중에 강제로 끌려 들어 가는 어린 여자 아이를 목격하는가 하면 또 언젠가는 다른 어린 여자 아이가 울면서 그에게 다가 와 제발 여기서 빼내서 강가까지만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독실한 가톨릭이고(빌의 아이가 다섯인 것도 종교의 영향이 크다) 마을은 이 수녀회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터여서 빌이 이곳 수녀원장(에밀리 왓슨)과 척을 져서는 좋을 일이 없다.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은 수녀회가 미혼모와 창녀들을 교화한다는 미명 하에 세탁소가 없던 시절 집단 세탁이라는 무보수, 무휴일의 강제 노역을 시키고 미혼모가 낳은 아이는 비싼 값에 입양을 시키는 등 인권유린을 저지른 것을 말한다. 가톨릭계에서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과 함께 흑역사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이다. 그 피해자 수가 1만 명에 이르렀고 1996년이 돼서야 아일랜드 정부 당국의 조사 끝에 세탁소 운영은 중단됐지만 이 가톨릭 수녀회는 세탁소를 아일랜드 전국, 미국과 영국, 호주와 캐나다 등에까지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하며 74년간 막대한 부당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소설과 영화는, 특히 영화는 이 막달레나 세탁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그보다는 수녀원이 주는 뭔가 어둡고 억압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깔고 주인공 빌이 뭔가의 고민에 빠져 있는 것에 대해 보다 내밀한 얘기를 하려 한다. 빌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불우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힘이 돼 준 미시즈 윌슨과 엄마, 삼촌(이라 불렸던) 네드의 친절함,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던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자신은 정녕 마흔이 다 된 지금, 그처럼 ‘사소하지만 필요한 것들’을 잘 해 나가고 있는지를 고민한다. 빌은 종종 눈물을 흘리는데 그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이 불쌍해서였는지, 수녀원에서 부딪힌 어린 여자아이가 불쌍해서인지, 아니면 그 둘이 오버랩 되는 것이어서 그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도 따뜻한 누군가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기가 될 수 없었듯이 저 여자 아이에게도 친절한 누군가가 필요한데 자기가 그 ‘사소한 일’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반추해 낸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바로 그 부분의 애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웅장하게 가르쳐주는 영화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뭔가 아주 대단한 것(논리나 정치철학)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중요한 무엇을 놓치지 않는 것이 그 구원의 첫 발걸음이 된다. 빌이 해 낸 사소하지만 소중했던 구원의 행동은 어쩌면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공론화 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궁극적으로 여자 아이들과 세상을 구해낸 것일 수도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빌처럼 그렇게, 구체적이고도 작은 실천을 해 나가야 함에도 우리들 대부분은 그것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세계에서, 이 쿠데타의 어지러운 세상사에서 우리가 각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용하면서도 웅장하게 가르쳐 주는 작품이다. 혁명은 이런 영화처럼 해야 하는 법이다. 혁명은 영화처럼! 이 영화는 12월 11일에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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