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용납 않는 기업문화로 도전 정신 사라져

한국 경제도 책임지는 관료 없이 위기에 빠져

실패 책임 큰 부서가 되레 평가하는 것도 같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그대로 재현되는 형국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경제의 대표기업 삼성전자가 위기를 맞았다. 주문형 반도체 시장에서 1등 기업인 대만의 TSMC를 쫓아가기는커녕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인공지능 서버 시장의 선두 주자로 떠오른 엔비디아의 품질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납품을 못하고 있는 사이,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독주하고 있다. 결국 3분기 수익이 시장의 기대에 못 미쳐 주가도 폭락했다.

실패 용납 않는 기업문화, 도전정신 없애고 책임전가 풍토만

위기를 맞자 삼성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분석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그동안 성역으로 남아 비판을 허용하지 않던 삼성이었기에 삼성 내부의 사정을 알기는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 삼성 내부 직원의 전언을 인용한 보도는 충격적이었다. 최첨단 기술 경쟁을 하고 있는 대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믿기 어려운 고백이었다.

삼성은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직원들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아예 도전하지도 않는 사내 문화가 서서히 자리 잡았다고 한다. 부서 간 경쟁이 치열해서 전체 기업의 입장에서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한 협업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이를 조정해야 하는 부서장은 서초동 재무라인에 결정을 미룬다고 한다. 부서별 자기 부서의 문제점은 최대한 감추면서 대신 다른 부서의 단점을 찾아 지적해서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고 한다. 부서 간 소통이 단절된 전형적인 사일로 조직의 폐해가 있다는 의미이다.

첨단 기술 기업에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 도전하지 않는다면 신기술 개발 경쟁에서 앞서기는 힘들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실패하지 않는 또 다른 기법으로, 업계에 알려진 유망한 기술은 대부분 시도한다고 한다. 결국 전사적으로 집중해서 기술 개발을 하지 못하는 구조이다 보니 제대로 된 성과를 내놓기 어렵고, 다른 기업들 뒤쫓아가는 결과를 양산하면서도 경영자들은 실패했다고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총수에게 보고하는 회의를 준비하기 위한 회의에 각 부서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으며, 엔지니어들이 내린 결정을 서초동 재무라인에게 최종 재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비전문가들을 위해 보고서에는 전문 기술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적이 좋은 부서의 발언권이 세져서 다른 유망 기술에 대한 투자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고, 현재 치명적으로 잘못된 선택으로 알려진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 분야에 대해 5년 전 내려진 철수 결정도 이런 환경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경실련 관계자들이 28일 낮 12시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시스템 반도체 설계 부문 매각과 삼성전자 RE100 대응 방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실련 제공]
경실련 관계자들이 28일 낮 12시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시스템 반도체 설계 부문 매각과 삼성전자 RE100 대응 방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실련 제공]

첨단 기술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로 믿기 어려운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삼성의 미래는 어둡다. 무엇보다도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지 않는 구조가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의사결정을 내린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실패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관료주의에 빠져있다는 증거이다. 현장의 엔지니어들에게는 충분한 권한이 주어지지 않고, 첨단 기술에 대해 정통하지 않은 서초동 재무라인이 결정을 내리게 되면 사후에도 바로 잡기 어렵게 된다. 책임을 져야 할 서초동 재무라인이 다시 평가에 나서고 담당 엔지니어나 부서장을 교체하는 수준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삼성과 같은 지배구조 문제로 망해가는 한국 경제

문제는 놀랍게도 그동안 필자가 지적해 온 한국 정부의 관료주의와 성격을 같이 한다. 정부의 연구개발비 지원은 95% 이상의 성공률을 자랑한다. 성공률은 높지만 의미있는 결과는 내지 못한다. 정부에서 전략 사업을 선정하지만 성과를 낼 만큼 지원하는 시스템은 없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인공지능 분야에 많은 지원을 했지만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는 문제를 인식하는 책임자는 없어 보인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관료주의는 경제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한국 경제를 무너뜨리고 있는 저출생 문제를 20여 년간 해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지는 부서나 공무원은 없다. 잘못을 책임지는 부서가 없다는 것은 지금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서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망국적 가계부채나 부동산 거품 문제와 같은 거시 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제를 망치는 문제가 악화되고 있는 사이 살찐 고양이라 불리는 금융회사나 건설족들의 배만 불리고 있으며, 이들과 짬짜미한 공무원들의 퇴직 후 일자리를 보장하는 구조가 자리잡았다. 언론 역시 거대 광고주들인 기업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영끌족들에게 빚을 더 내라고 부추기고 있다. 국민들은 빚갚기에 허덕거리지만 책임지는 관료는 아무도 없고 여전히 빚 늘리기에 급급해 보인다. 그 결과 한국 경제는 경제 위기와 장기 침체의 위험에 빠져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조세정책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2024.10.11. 연합뉴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조세정책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2024.10.11. 연합뉴스

관료주의는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악화되는 경우 책임 추궁을 당하기 때문에, 과거 관행대로 유지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일관하며 다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산과 인사를 담당한 힘센 부서들이 가장 책임이 크지만, 그들은 다시 문제를 평가하는 기관이 되어 자신들을 제외한 채 책임을 가리기 위해 노력하는 척한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성역이 된 힘센 부처들을 비판하는 언론은 없으며, 이들을 감시해야 할 국회 역시 힘센 부처들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국회의원들은 예산과 지역교부금을 받기 위해 애쓰다보니, 기재부와 행안부를 비판하기 어렵다. 그렇게 한국경제는 위기로 치닫고 있다. 정확하게 삼성과 한국 경제는 같은 지배구조 문제로 몰락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기업 몰락과 함께 했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따라 갈 텐가

일본이 30년 째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놀랍게도 그 사이 80년대 후반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일본 굴지의 대기업들이 대부분 몰락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했던 소니는 디지털 기기가 나오면서 애플에 밀리며 몰락했다. 소니와 버금가던 파나소닉 등 가전회사 역시 쇠퇴했으며,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였던 도시바를 비롯해 한때 세계 반도체 시장을 좌지우지하던 기업들 역시 경쟁력을 잃었다. 도요타 자동차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세계를 풍미하던 일본 자동차 회사들도 크게 위축되었다. 일본 경제가 무너진 배경에는 이들 대기업의 몰락이 있다.

일본도 경제와 대기업이 무너진 근본적인 원인은 책임과 권한을 가리지 않는 폐쇄적인 기업과 관료 조직에 있다. 삼성과 한국 경제가 동시에 위기를 맞고 있는 원인 역시 다르지 않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삼성과 한국 경제의 미래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복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와 언론을 개혁해서 기업과 정부의 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 국민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한국의 청년들도 일본 청년들의 전철을 뒤쫓아 가게 될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