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탄핵 초점 흐리는 개헌론에 흔들릴 때 아니다
누가 왜 지금 개헌론을 띄우는가
윤석열 ‘자뻑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고 탄핵정국에 돌입하자마자 정치권에 ‘유령’이 등장했다. 바로 개헌론이다. 2024년 12월 9일 윤석열 탄핵안 국회를 통과하자 <조선일보>는 ‘수명 다한 제왕적 대통령, 개헌론 확산’이라는 제목의 1면 머릿기사에서 “12.3 계엄선포 사태를 통해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면서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새로운민주당의 조기 개헌론을 소개했다.
<경향신문>은 2025년 신년기획으로 '대통령 권한 줄여야 제2 윤석열 막는다'라는 제목으로 개헌론에 동조했다. <경향신문>은 국내 정치학자 20인으로부터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고민해야 할 의제를 집계한 결과 90%인 18명은 개헌 등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보도했다. <오마이뉴스>는 90년대생 연구·정책전문가들의 모임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 바닥 보여준 윤석열 내란, 권한 확 줄여야’라는 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는 1월 16일 '여 개헌안은 분권형 대통령제…2028년 대선·총선 동시 실시'라는 제목으로 여당 개헌 움직임을 소개 보도했다. 이상 언론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동원된 논리는 ‘제왕적 대통령제’이다. 그런데 한결같이 헌법상 부여된 대통령 권한에 대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본질적 분석은 하나도 없고, 단편적이며 특히 정략적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다.
87년 헌법은 ‘제왕적’ 아닌 명실상부 ‘민주적’ 대통령제
12.3 내란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는 언론과 학자의 주장이 사실일까? 오히려 정반대다. 12.3 내란을 시도하기까지 정국을 보면 국회권력 즉 민주당이 보여준 합헌적 대통령 견제가 주효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등 집요한 입법전략을 사용했고, 헌정사상 초유로 방통위원장, 행자부장관, 수사 검사 등 대통령 권력 수행자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해 행정 업무를 중단시켰다. 이 모두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국회권력 행사였다. 급기야 야당은 일방적으로 새해 예산을 통과시켜 버렸다.
이에 국민의힘은 ‘입법독재’라 목소리를 높이고 윤석열 정부는 25차례 넘는 거부권으로 응수했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대통령의 수족인 국무위원은 국회에 불려나와 국정감사, 국정조사, 상임위 현안 질의 등에서 국회권력의 질타에 고개 숙여야 했다. 특히 윤석열은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나,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채해병 특검법 등 자신을 겨냥한 특검법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때 연세대 김종철 교수(헌법학)는 ‘민주공화적 대통령제 다시보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흔히들 우리 헌정의 권력구조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단정한다. (…) 그런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말고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그게 무슨 제왕적 대통령제인가?"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2024.7.12)
12.3 내란은 대통령권력이 국회권력을 못 버텨 터진 것
정상적 대통령이라면 야당에 대한 정치보복을 멈추고(민주당은 대통령에 대한 공세 중에도 계속 정치 복원을 요구했다) 정치를 복원했어야 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야당 대표를 ‘범죄인’이라 맹신하는 검사적 기질, 황당한 극우 유튜버의 선거 음모론에 빠져 있었다. 급기야 상황에도 맞지 않고, 절차도 지키지 않는 비상계엄 선포, 국회·중앙선관위 난입이라는 반헌법적 내란행위로 자멸했다. 이는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성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까지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소추를 발의했으며 지난 6월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 판사를 겁박하고 다수의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행안부 장관 탄핵, 방통위원장 탄핵, 감사원장 탄핵, 국방장관 탄핵 시도 등으로 행정부마저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국가 예산 처리도 국가 본질 기능과 마약 범죄 단속, 민생 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하여 국가 본질 기능을 훼손하고 … 이러한 예산 폭거는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가 재정을 농락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윤석열의 정부권력은 국회권력의 합헌·합법적 전략에 말려든 것이다. 이번 윤석열 탄핵에 이은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그리고 뒤를 이은 다른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실제적 생사여탈권을 쥔 것은 민주당 즉 국회권력이다. 결국 12.3 계엄은 막강한 국회권력에 대항하다 실패한 대통령권력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다.
미국 프랑스와 비교하면 너무나 약소한 대한민국 대통령권력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거의 모든 정치인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리 주장하는 정치학자조차 대통령제를 하는 미국과 프랑스, 러시아 헌법과 비교해 헌법의 어떤 조항이 제왕적이냐 물어보면 답을 못한다. 1987년 시민혁명을 통해 마련된 현행 헌법의 특징은 대통령 단임제와 직선제다. 이는 박정희 18년 장기집권을 막기 위해 아예 연임을 금지함에 따라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통령 단임제 권력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또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로 바꿨다. 이밖에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폐지, 이번처럼 대통령 최고 비상대권인 계엄권도 국회 요구로 ‘반드시 해제’ 하도록 했다. 상대적으로 국회 국정조사권이 부활되고 국회 일수제한 조항도 삭제됐다. 법률로 대통령 권한이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검찰총장 및 경찰청장의 임기제 역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조치였다. 무엇보다 1995년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로 대통령은 지방권력 상당 부분을 상실했다.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내각제와 비교하면 월등히 셀 것이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제라 비판하면서 내각제 국가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기준의 오류다.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프랑스나 미국, 러시아와 비교하는 것이 올바르다. 우선 우리 대통령은 프랑스 대통령이 가진 최강 권력인 국회해산권이 없다. 지난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여소야대를 우려해 의회를 해산했다. 총리 국회임명 동의제도 역시 여소야대 때 생기는 동거 정부가 극도의 국정난맥 때문에 폐지했다. 특히 프랑스는 회기 당 법안 1건은 24시간 내 총리 불신임안이 없으면 해당 정부 제출 법안이 가결된 것으로 보는 사실상 하원을 뛰어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헌법 49조 3항)
미국 대통령 권한도 막강하다. 대통령이 임명한 부통령이 상원의장을 겸임하고 임기 6년의 상원의원은 하원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국회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행정명령을 통해 소신껏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 심지어 테러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의회 승인 없이 전쟁도 독자적으로 벌일 수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국회권력이 큰 여소야대가 되면 대통령 권력이 할 수 있는 합헌적 여지가 별로 없다. 그래서 87년 이후 1988년 총선 여소야대 체제에서 노태우는 3당 합당을 강행했고, 2000년 여소야대에서 “못해 먹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한탄과 탄핵발의를 경험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를 통해 탄핵 당했다.
제도 문제가 아니라 제왕처럼 생각하는 대통령이 문제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한다며 국회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특히 국회는 2016년(~2017년) 개헌특위, 2018년 헌정특위 등을 운영했다. 이때 제왕적 대통령제를 축소하는 제안은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제한, 국회 예산안 법률주의 도입, 감사원 독립 등 늘 제기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는 실효성이 별로 없고, 감사원 독립도 회계검사권과 직무감찰권을 분리해 별도 기구를 만들어야 하는 낭비적 요소도 있다.
오히려 민주당이 주장한 4년 대통령 연임제는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고, 국회의원 소환권 도입은 명백히 국회권력을 축소하는 안이었다. 이때 제왕적 대통령제 주요 요인이 사정기관의 권력화라며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공정위 등 5개 기관장의 국회 임명동의제도를 도입하는 대통령 인사권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정부 차원에서도 논의가 있었다. 2018년 3월 문재인 정부는 학자와 시민단체까지 참여하는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에서 내린 결론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정기관을 통해 비정상적, 제왕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던 권력자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당시 국민헌법자문특위 부위원장으로 참여했던 연세대 김종철 교수는 우리 헌법을 ‘의회와 협치를 전제로 한 분권형 대통령제’라 말했다.(<경향신문> 2023.6.9) 문재인 대통령도 퇴임 직전인 2022년 4월 25~26일 JTBC와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재인 “우리나라는 아주 민주적 대통령제”
문재인 : 대통령의 권한이 헌법이나 법률에 딱 정해져 있다. 중요한 권한이긴 한데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손석희 : 대통령 중심제에서 행할 수 있는 권한을 제왕적이라 하는 것이고…
문재인 : 아닙니다. 아닙니다.(손사래를 치며) 우리나라는 전혀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죠. 아주 민주적 대통령제이죠.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권위주의 유산에서 헌법이나 법률 권한을 넘어서 초법적인 권력을 행사한 것, 그것이 제왕적 대통령제라 프레임화 해서 공격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비롯된 정치권의 환상, 다른 나라의 헌법과 비교연구를 하지 않은 정치·헌법학자, 게으른 언론이 만들어낸 ‘잘못된 고정관념’이었던 것이다. 이 오류는 심각한 패악을 낳았다. 윤석열이 12.3 내란에서 국회는 물론 언론, 심지어 사법부와 중앙선관위를 무력화 하는 초헌법적 포고령을 발동한 것이나, 구속되면서까지 공수처의 수사, 검찰의 영장 청구, 법관의 영장 발부, 헌재의 심리 등 사법.헌정질서를 모두를 부인하는 태도 역시 자신이 제왕이라는 잘못된 환상에 빠져 있는 증거다. 이런 착각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오류를 맹신한 결과이다. 따라서 이번 12.3 내란은 어설픈 정치학자의 책임도 크다.
개헌론 부추기는 내각제론자, 국민의힘, ‘수박세력’, 보수언론
헌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내각제론자의 주장 때문이다. 내각제론자는 바로 국회권력이다. 국회는 항상 개헌특위, 헌정특위,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등을 구성해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주장한다. 이 특위는 내각제론자로 채워진다. 최장집, 박병림 등은 대표적 내각제론자이다. 하지만 내각제를 도입하기 위해 ‘제왕적 대통령제’라 주장하는 것은 억지이다. 물론 내각제도 인류가 발명한 장점이 매우 많은 권력구조이다. 그러나 내각제 역시 적잖은 단점이 있는 제도다.
사실 어떤 정치제도가 민주적이냐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 단지 그 나라의 정치문화를 따져 국민이 선택할 문제일 뿐이다. 요즘에는 내각제론자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헌법상 부여된 대통령의 권력 크기가 아니라, 윤석열과 같은 함량미달 대통령이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문제삼는 것이라고 회피한다. 그러나 이는 대통령제 문제의 본질과 어긋난다. 내각제를 하더라도 총리 권력의 자의적 행사 역시 피할 수 없다. 오히려 정당대표가 행정수반이 되는 내각제가 훨씬 권력의 자의적(정치적) 행사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특히 박근혜 윤석열 등 보수정권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이 나오지 않다가 꼭 개혁 진보정권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도 다분히 정략적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개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다. 요즘 개헌론을 제기하는 세력은 한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기보다, 분점하자는 정략적 의도가 깔려있다. 물론 그 주동세력은 국민의힘이다. 여기에 민주당에서 퇴출된 ‘수박세력’이 창당한 새로운민주당, 정의당도 내각제 개헌론에 편승하고 있다. 일부에서 ‘윤석열도 아니고, 이재명도 아니다’라는 동반퇴장 주장도 이들이 만들고 있다. 시민의회 등 2015년~2017년 촛불혁명을 주도했던 세력은 ‘죽쒀서 남줬다’는 생각에서 개헌과정을 통해 자신의 시민적 지분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개헌론에 동조하고 있는 <경향신문>을 비롯한 일부 진보언론은 사실 사주가 있는 보수언론처럼 전략적이지 못하다.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탄핵에 집중해야
물론 개헌은 필요하다. 노동권이 존중되고 거주권을 보장하고 환경권을 확대하는 등 기본권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또 제3의 정치세력이 정착할 수 있는 결선투표제나 국회의원 소환제를 도입하고, 검사 영장청구권을 폐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개헌작업은 쉬운 것이 아니다. 개헌안 발의에서 국민투표까지 지난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동안 많은 개헌논의가 있었지만 38년간 개헌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이 급박한 탄핵정국에서 개헌 주장은 초점을 흐리는 오류다. 우선 윤석열 파면 후, 차기 정부에서 논의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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