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영장 거부 뒤에 담긴 '국가원수 이데올로기'
대통령은 국민의 '제1 공복'일 뿐이다
박정희 유신헌법에 명문화된 '국가 원수'
나치 당수 히틀러가 사용한 '국가 원수'
"의결서를 받는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국가원수 및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의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11일 브리핑에서 "지금 대통령실과 경호처가 지켜주고 있는 것은 국가 원수가 아니라 내란 수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도 "외교부는 계속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면서 "우리나라 국가원수는 대통령"이라고 했다.
'국가원수'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쓰이고 있다. 특히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과 관련한 최근 보도에서 '국가 원수'란 용어는 자주 쓰였다. 우리 헌법 제66조 제1항에는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라고 명문화되어 있다. 또한 공식적인 법률용어로도 등록되어 있다.
박정희 유신헌법에 명문화된 '국가 원수'
'국가 원수'(國家 元首). 과연 온당한 용어일까?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헌법에 '국가 원수'란 용어가 명문화된 것은 바로 박정희 유신헌법이었다. 그 뒤 수정 없이 지금의 헌법에 이르고 있다. 이 용어는 4‧19 혁명으로 세워진 제2공화국 헌법에 처음 나타났다. 당시에는 정치적 실권을 국무총리에게 집중시키고, 실권은 없고 형식적 위상만 지닌 대통령을 의례적인 의미에서 '국가 원수'로 규정한 것이었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 이후 1963년 헌법에서 이 용어는 사라졌고, 1972년 12월 27일의 유신헌법에서 부활했다. 박정희는 스스로 "국가 원수로서의 대통령"임을 자임하면서 이를 온 나라에 선포하려고 했다.
나치 당수 히틀러가 사용한 '국가 원수'
'국가 원수'란 용어는 라틴어에서 나왔다. 라틴어에서 '국가 원수'란 '수석 원로'와 '국가 제1 공민'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하지만 로마 제국 이후 쓰이지 않다가 바로 독일 나치 당의 히틀러 때 다시 등장했다. 나치 당은 당수인 히틀러에게 '원수(oberhaupt)'라는 호칭을 썼다.
그리고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취임하고 몇 년 뒤 대통령이 병으로 죽고 히틀러가 대통령직을 겸임했을 때 '국가 원수(Staatsoberhaupt)'라는 호칭을 공식으로 사용했다. 마치 진시황이 자신을 '황제(皇帝)'로 지칭한 것과 같다. 히틀러에 붙여진 이 '국가 원수'는 당시 대통령과 총리의 통칭이었으며, 무소불위의 군정 대권(軍政大權)을 한 손에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패망과 함께 이 '국가 원수'의 제도와 명칭은 폐기되었다.
국가 원수' 같은 권위적 성격 없는 '정부 수반'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국가 원수'에 해당하는 영어는 바로 'head of state'(정부 수반)이다. 이 head of state에 대해 <미리엄-웹스터> 사전은 "the leader of a country"라고 풀이한다. 즉, "한 국가의 지도자"다. '국가 원수'와는 전혀 다른 뉘앙스를 담고 있다.
<캠브리지 사전>도 head of state에 대해 "the official leader of a country, often someone who has few or no real political powers"라고 규정했다. 번역하면 "국가의 공식 지도자, 가끔은 실질적인 정치적 권한이 없거나 거의 없는 사람"이다. 여기서 "실질적인 정치적 권한이 없거나 거의 없는 경우"는 가령 영국 국왕이라든가 독일 대통령과 같이 형식상국가의 최고 위상을 지니지만 실제 권한은 없거나 거의 없는 경우를 가리킨다.
따라서 'head of state'라는 영어 용어는 단순한 "행정 및 국정의 장(長)"이나 "대외적으로 국가의 대표"란 의미이다. 여기엔 히틀러 시대에 사용하던 '국가 원수'라는 의미를 찾아볼 수 없으며 권위주의적인 성격도 전혀 없다.
대통령은 국민의 '제1 공복'일 뿐이다
'국가 원수'는 문자 그대로 권위주의로 충만된 용어이다. 민주주의와 결코 병립할 수 없다. 계엄령 선포가 자신의 고유한 통치 권한이라고 강변하며 절대 군주의 망상을 획책하는 윤석열의 모습에서 '국가 원수' 용어에 담긴 반민주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이미지가 그대로 겹친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최근 한남동 관저 인근의 윤석열 탄핵 반대 시위 현장에 나타나 "윤석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윤 대통령이 결국 대한민국 체제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상현은 며칠 전엔 "윤 대통령은 국민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원수 지위와 신분을 아직도 보장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윤석열이 대한민국 자체"라고 감히 떠드는 배경에는 바로 '국가원수'라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내란수괴 윤석열이 법원의 적법한 체포영장에도 막무가내로 저항하는 작태에는 권위주의적 구시대의 유물인 '국가 원수'의 이데올로기가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독일의 '국가 원수' 제도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 원수'라는 용어는 그대로 히틀러 독재를 연상시킨다. 영구 집권을 꿈꿨던 박정희의 유신헌법에 '국가 원수'라는 용어가 명문화되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국가 원수'라는 말은 현대 민주주의적 사회와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 "제1의 공복"일 뿐이다. 결코 무소불위 지배자로서의 '국가 원수'일 수 없다.
내란수괴 윤석열과 함께 '국가원수' 용어도 폐기해야
불법적인 계엄 시도부터 체포영장에 대한 막무가내식 저항 과정에서 내란수괴 윤석열이 보여준 행태는 우리 사회와 국가 전체에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내란수괴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모든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부정을 자행할 수 있었던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삼아 향후 대통령의 권한은 반드시 크게 제한되어야 한다.
동시에 '국가원수'라는 권위적이며 시대착오적인 초법적 용어도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계엄 선포가 통치행위"라느니 "윤석열이 대한민국 자체"라는 궤변과 망발의 근저에는 '국가원수' 이데올로기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국가원수' 이데올로기는 지금 내란수괴 윤석열 사태에서 명백하게 확인되듯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특권자로의 초법적 '국가원수'로 군림하게 만든 정치사회적 토양으로 작동되어왔다. 내란수괴 윤석열과 함께 '국가원수' 용어도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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