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대응 늦어져 산업전환 실패하면, 노동시장은?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박태주 60+기후행동 운영위원

지체된 기후대응은 산업전환의 실패를 예비한다. 다들 작금의 탄핵정국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외면한 기후대응이 경제에 미칠 충격에 대해선 여전히 관심이 떨어진다. 기후대응에 실패하고 산업전환마저 실패한다면 그 후과는 한국 경제와 사회에 긴 그림자를 남길 것이다. 수출과 내수는 동반 위축되고 투자심리는 가라앉는가 하면, 주요 대기업들은 재생에너지 확보, 수출규제 우회를 위해, 그리고 보조금을 챙기려 해외로 빠져나가고…

노동시장이 온전할 리도 없다. 산업전환의 실패는 곧바로 노동시장에 실업과 불안정노동, 그리고 불평등 증가라는 3중고를 안길 것이다. 더욱이 생태전환이 컴퓨터와 로봇, 그리고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전환과 만났을 때, 그리고 이러한 이중전환이 제로성장으로 수렴하는 저성장체제에서 진행된다면 그 고통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가 기후대응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숨어서 훔친 빵 먹는 행태를 누가 용인할 것인가

세기말에 지구표면의 온도가 1.5℃ 궤도를 이탈하리라는 예상은 새삼스럽지 않다. 가령 지난 10월, 유엔환경계획(UNEP)은 ‘배출량 격차 보고서 2024’를 통해 “각국이 야심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세우고 이를 즉각 이행하지 않으면 이번 세기 안에 지구 기온은 2.6℃에서 최고 3.1℃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5년 파리협약에서 정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조차 손실과 피해기금을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갈등에서 보듯 리더십을 잃고 있다.

그런 중에서도 한국의 기후대응은 무임승차 전략이라고 할 만큼 뒤처져 있다. 높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낮은 재생에너지 비중, 에너지의 낮은 효율성과 급증하는 전력수요, 그리고 산업정책 및 통상정책의 실종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공항을 짓고 댐을 세우는 나라, 그린벨트를 해제하면서도 그린 리모델링 이자 지원을 폐지한 나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권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석유‧가스전을 시추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얼마 전 CAN(Climate Action Network)과 German Watch 등 기후변화 모니터링 단체들이 발표한 한국의 기후위기대응지수(CCPI, 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는 산유국을 제외하면 꼴찌였다.

기후위기 대응을 늦춘다는 것이 마치 숨어서 훔친 빵을 먹듯 즐길 일은 아니다. 기후비용을 아끼면 경제에 대한 부담을 덜 것이라는 건 그야말로 혼자만의 장밋빛 공상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후대응을 늦춘다는 게 외려 경제를 구렁텅이로 모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의 무임승차 전략을 국제사회가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후대응의 지체는 산업전환을 늦추고 늦춰진 산업전환은 다시 기후대응능력을 낮추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이런 점에서 기후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20일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방문해 고로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2024.9.20. 연합뉴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20일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방문해 고로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2024.9.20. 연합뉴스

산업전환 지체시키는 통상규제와 에너지 경쟁력의 저하

기후위기 대응의 지체가 산업전환의 지체로 연결되는 매개항으로는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에너지전환의 지체와 통상환경의 악화, 에너지 경쟁력의 저하, 저탄소 정책의 가속화에 따른 대응능력의 미비, 그리고 산업정책의 부재 등이 그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우리나라가 대표적으로 뒤쳐진 분야는 에너지전환이다. 에너지 사용에서 나오는 배출량과 전기 생산에서 나오는 배출량을 합하면 2018년의 경우 5억 8700만 톤으로 우리나라 전체배출량의 86.9%를 차지한다. 그만큼 에너지전환이 기후위기 대응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결정적이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보급목표는 2030년까지 21.6%.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비율은 2023년을 기점으로 30%를 넘었지만 우리나라는 9%에 그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발전만을 떼어보면 5% 수준. 세계평균인 13.4%는 물론 중국(16%)과 일본(12%), 베트남(13%)에 비해서도 한참 뒤진다(Ember, 2024).

재생에너지 부족은 한국의 산업을 국제적인 통상 및 자본규제의 먹잇감으로 만든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공급망실사법(CSDDD) 등이 대표적이다. 통상규제가 보호무역주의와 결합해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되고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에 더해 ESG로 대표되는 기후공시 의무화의 지체는 앞으로 자본유치의 어려움을 더할 것이다. 민간규제에 속하는 RE100은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요구한다. RE100은 직접배출량과 간접배출량뿐 아니라 협력업체와 물류 등 공급망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가리키는 스코프 3으로 범주를 확장하고 있다. 철강, 반도체, 조선, 비철금속, 석유화학 등 하나같이 에너지 다소비 업종인데다 수출을 주로 하는 한국 기업으로서는 갈수록 태산인 셈이다.

화석연료 에너지 보다 훨씬 싸진 재생에너지

재생에너지의 부족은 에너지 경쟁력까지 끌어내린다. 재생에너지 생산규모가 확대되고 관련 기술(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O&M 비용의 절감)이 발전하면서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는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화석연료의 발전단가는 상승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단가와 화석연료 발전단가가 같아지는 지점을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라고 부른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2024)에 따르면 2023년 현재 신규 육상풍력의 발전단가는 MWh 당 33달러로 석탄화력발전의 33%(100달러)에 불과하며 해상풍력은 75% 수준까지 떨어졌다. 태양광은 44% 수준(44달러)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육상풍력은 2017년을 전후로, 태양광은 2018년경 그리드 패리티를 통과했다고 알려진다(IRENA, 2024). 2022년 현재 우리나라의 발전원별 발전단가는 MWh당 LNG 복합화력이 128달러, 석탄 115달러에 이르는 데 반해 태양광은 74달러, 그리고 육상풍력은 67달러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석탄과 가스와 같은 값비싼 화석연료 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한국기업으로서는 앞으로 통상규제에 더해 에너지 경쟁력의 저하까지 감수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재생에너지 가격조차 규모의 경제효과를 살리지 못해 국제수준을 웃돌고 있다.

기후위기의 가속화와 산업정책의 부재까지

기후대응을 지체한다는 것이 기후대응 의무를 면제받는 것은 아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국제적으로 온실가스 규제가 강화되면 우리나라로서도 기후대응의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유럽 각국은 1997년, 교토의정서 이래 30년 가까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왔지만 우리나라는 앞으로 15년 내에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할 판이다. 여태까지 기후대응에 낮잠을 자다기 천둥소리에 놀라 깬 토끼처럼 냅다 달려야 할 상황에 내몰린 셈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후대응의 가속화, 나아가 산업전환의 전면화는 그 자체가 재앙이 될 수 있다. 자본투자를 기후기술의 개발과 설비교체, 재생에너지의 확보와 제품 및 생산방식의 변화 등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응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은 물 밖에 나온 물고기 신세가 될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재정능력까지 바닥을 드러낸다면 산업전환은 곳곳에서 중동무이로 꺾이고 노동사회정책은 아예 뒷전으로 밀릴 것이다.

기후대응에 초점을 맞춰 산업전환을 설계하는 산업전환정책조차 없다는 사실도 지적해야 한다. 산업전환정책은 온실가스 규제와 정부의 재정지원을 동반하지만 정부의 재정 능력은 제한적이며 온실가스 규제정책은 아예 실종된 상태다. 효율적인 산업정책으로 흥한 나라가 막상 산업정책이 필요한 시기에 산업정책의 부재를 경험한다는 건 아이러니다. 기후위기와 디지털 전환을 포함한 대표적인 산업정책으로서는 유럽연합(EU)의 그린 딜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들 수 있다. 이들 법안이 공통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에너지전환과 산업의 경쟁력 강화, 그리고 일자리의 창출이며 이를 통해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산업전환과 노동전환을 연착륙시키는 일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각자도생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이 ‘공장 업고 튀어’ 한다면 노동시장은?

수소환원제철을 꿈꾸는 포스코가 과연 국내에서 버틸 수 있을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재생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기차의 수요 부진에다 유럽의 공급망 실사법, 그리고 중국기업의 도전까지 감당해야 하는 자동차업체가 언제까지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전략에 의존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차전지업체의 미래도 전기차의 미래만큼이나 불확실하다. 세계적인 공급과잉으로 영업이익률이 급감하고 있는 석유화학업종은 재생에너지의 사용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85%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하지만 기후대응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무역규제와 미국의 IRA에 직면한 국내 기업이 해외투자에 눈을 돌리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선재 업고 튀어’가 아닌 ‘공장 업고 튀어’가 벌어지는 셈이다.

‘환경과 고용의 딜레마’라는 말이 있다. 기후대응을 서두르다 고용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담은 말이다. 환경과 고용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으로발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후대응의 지체가 고용을 해치는 시나리오 역시 현실성을 얻고 있다.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경쟁력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대응의 지체가 가파른 탄소배출의 감축과 대규모의 산업전환을 가져온다면, 그리고 산업전환이 재생에너지의 부족과 무역규제에 직면해 덜컹거리기라도 한다면 노동시장은 어떤 결과에 맞닥뜨릴까. 더욱이 기후대응이 디지털 전환과 저성장체제와 만났을 때 그것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내년부터 2029년 사이에 1% 후반대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어 2030년대에는 1%대 초반으로 떨어지고 2040년대부터는 0%대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2045~2049년 들어서는 0.6%대에 그쳐 구조적인 저성장, 사실상의 제로성장 시대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성장에 의존해 온 경제 및 사회구조가 성장의 종료라는 경험하지 못한 경로로 진입하는 셈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8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시민들이 경찰을 향해 "차 빼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모습. 2024.12.22. 이호 작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8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시민들이 경찰을 향해 "차 빼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모습. 2024.12.22. 이호 작가

‘성장 없는 경제’ 대비한 사회개혁 정치세력의 등장을 소원한다

미래의 노동시장은 어떻게 재편될까도 관심의 대상이다. 노동시장은 사회적 번영을 분배하는 주요 통로라는 점에서 노동권은 사회권의 기본을 이룬다. 미래 노동시장의 모습은 주체들의 전략적 대응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현재의 추세와 데이터에서 미래를 해독한다는 것은 커피 찌꺼기에서 무엇인가를 읽어 내려는 일만큼이나 문제가 있다”라는 건 ‘노동사회 이후의 사회’를 모색해 온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1999)의 말이다. 노동은 일자리의 소멸과 창출, 그리고 대체라는 기후대응의 역동적인 과정을 연결하면서 일자리의 질을 확보하는 전략을 마련할 수 있을까.

하수상한 세월을 거쳐 다시 만날 세계에서 정부는 기후‧에너지정책에 배어있는 윤석열을 지우고 산업전환과 노동전환을 해결할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을지, 그리고 ‘성장 없는 경제’에 대비하면서 기후‧에너지정책을 사회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다음 정부를 꿈꾸는 유력 정당은 시민들이 무조건 그 정당을 지지해서 여의도로, 광화문으로, 남태령으로 달려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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