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법정시한일 넘긴 것이 야당 독주 때문?
사설의 사태 원인 진단과도 상반되는 보도
문제의 결과만 볼 뿐 진짜 원인 보려 하지 않아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일(2일)을 넘기자 주요 언론들은 여야 대치와 정쟁을 지적하며 야당 탓을 하고 나섰다. 3일자 이 소식을 전하는 다수의 언론은 여당보다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거대 야당의 독주와 횡포’라며 일제히 비판하는 논지다. 민주당이 감액한 4조여 원이 정부와 권력기관이 ‘주머닛돈’처럼 여겨온 예비비와 특수활동비 삭감에 집중돼 있는 것이나 이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정부 측의 노력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 문제의 결과에 대해서만 성토할 뿐 원인에 대해서는, '원인의 원인'에 대해서는, 즉 민주당의 단독 편성을 불러온 이유는 빼놓는 절반짜리 보도인 것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역시나 이를 ‘거대 야당의 입법 예산 폭주’라고 했고, 중앙일보는 <R&D·복지 예산까지 삭감한 민주당, 민생 외칠 자격 있나>라는 사설에서 야당을 맹비난하고 있다. ‘야당의 막무가내식 감액’으로 범죄 수사, 공무원 직무감찰이 위축될 것이며, “치안 불안과 공직사회 이완을 초래할 우려가 적잖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서 “거야의 주장은 사정기관 옥죄기와 이재명 대표 방탄 시도를 감추려는 의도일 뿐이다”고 공격했다.
이들 언론의 이같은 논조는 충분히 예상됐던 것이다. 다만 이해하기 힘든 것은 한겨레의 보도다. 이 신문의 3일자 1면 머릿기사는 <정치 실종이 부른 예산 극단 대치>라는 제목 아래 “거대야당이 대통령실 검찰 등의 특수 활동비를 전액 삭감하며 힘자랑에 나섰다”고 쓰고 있다. ‘거대 야당’의 ‘힘자랑’이며, 여권과 야당 간의 대결주의라고 이 상황을 규정하고, 전문가의 말을 인용한 형식이지만 “거대 야당이 행정부의 에산편성권을 침범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겨레의 같은 날짜 사설은 이같은 1면 기사와는 매우 대비된다. 사설 <특활비 공개, 예비비 축소하고 여야 예산안 합의하라>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민주당이 정부 예산안 677조 4000억 원 가운데 감액한 4조 1000억원은 정부와 권력기관이 ‘쌈짓돈’처럼 여겨온 예비비와 특수활동비 삭감에 집중돼 있다. 사설은 지난해 정부가 대통령 국외 순방 명목으로 예비비를 6차례에 걸쳐 모두 523억원 끌어다 쓴 것에 대해 “애초 정상외교 예산인 249억원의 두배가 넘는 돈”이며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내세우며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조하면서, 예비비만 늘리는 행태를 누가 납득할 수 있겠나”고 질타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액 삭감된 대통령실·검찰·경찰·감사원 등 권력기관의 특활비에 대해서는 “어디에 쓰는지도 알 수 없는 전형적인 ‘깜깜이’ 비용으로, 그런데 권력기관들은 예산심의권을 가진 국회가 증빙자료를 요구하는데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사설이 조목조목 짚고 있듯이 많은 의혹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낳은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인 '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을 505억 원에서 497억 원으로 줄인 것이나 용산공원 조성 사업 예산을 당초 416억 원에서 229억 원으로 깎은 것, “이른바 윤석열·김건희 부부 관심 사업으로 일컬어지는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 예산도 508억원에서 74억 원을 삭감한” 것 모두 줄여야 할 것을 줄인 ‘예산 정상화’라고 할 수 있는 감축 편성이었다.
특활비 위주로 삭감했을 뿐 민생 예산안은 정부안을 거의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민주당이 정부나 국민의힘과의 예산안 협의 과정에서 근거를 제시하라고 줄기차게 요청했지만 권력기관들이 “예산심의권을 가진 국회가 증빙자료를 요구하는데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예산안 대치의 원인이라는 것도 한겨레 사설이 지적하는 대로다.
그러나 한겨레의 사설에서 제시하는 이같은 원인 진단은 1면 보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대결과 '극단 대치'이며 게다가 야당의 독주가 이번 사태의 원인인 것처럼 지적하고 있다. '거대 야당' '힘자랑'이라는 말들은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등의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인이지만 한겨레도 이를 스스럼 없이 쓰고 있다.
한겨레의 보도대로라면 '합의'는 국회 예산 심사를 하지 말라는 것인가. 증빙자료를 내지 않더라도 심사하지 말고 합의해 주라는 얘긴가. 그같은 '깜깜이' 예산안 처리를 방조나 담합, 묵인이 아닌 '합의 정치'라고 불러야 하는 것인가.
한겨레가 '야당의 힘자랑'을 얘기하려면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단독'과 '독주'를 애초에 먼저 시작한 것이 어디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한겨레의 보도는 권력기관의 그같은 독주를 견제하려는 것이 합의에 장애가 됐다고 해서 그 견제를 문제 삼는 것과 같다.
한겨레는 3면에서 <쪽지 예산 아쉬운 야, 급한 건 저쪽 버티기>라면서 마치 경기를 구경하듯 승부결과를 점치기하듯 전망하고 있다. 그같은 구경꾼과 관전자의 시선에서는 극단 대치와 힘자랑으로만 보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한겨레의 예산안 보도에서 실종된 것은 정치가 아니라 이 사안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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