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인 푸틴 체포영장은 집행 지지
헌신짝이 된 "ICC 규정 따라 행동" 다짐
'유대 신정 독재'란 이스라엘 실체 외면
국제인권단체들 "충격적, 터무니없다"
"ICC에 항소" 네타냐후, 초조함 들켜
유럽을 대표한다고 자부해온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망신'을 자초했다. 프랑스가 27일 유엔 산하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 등에 발부한 체포영장과 관련해 '면책특권'을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두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 10·7 기습 테러를 자행한 혐의로 이들과 함께 영장이 발부된 하마스 알카삼 여단 사령관 무함마드 데이프에 대한 '면책특권'은 언급하지 않았다.
"ICC 당사국 아닌 네타냐후 면책특권"
엿새 전, 반년 전 입장서 완전히 표변
ICC 124개 당사국 중 하나인 프랑스는 영장 발부 당일인 21일에는 즉각 크리스토프 르무안느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ICC 규정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불과 6일 만에 보란 듯이 이를 뒤집은 것이다.
지난 5월 20일 카림 칸 ICC 수석 검사장이 체포영장을 청구했을 때도 프랑스는 외교부 성명을 통해 가자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과 극심한 인도주의 위기에 대한 이스라엘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ICC의 독립성과 범죄 불처벌에 맞서 벌이는 싸움을 지지한다"라고 한 바 있다.
AFP와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프랑스 외교부는 27일 성명을 통해 "어떤 국가도 ICC 당사국이 아닌 나라들에 부여된 면책특권과 관련한 국제법의 관점에서 자신의 의무와 상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면책특권은 네타냐후 총리와 문제가 되는 다른 각료들에게 적용되고 ICC가 우리에게 그들을 체포해 넘기라고 요구할 때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간 가디언은 이런 프랑스의 주장이 ICC 설립의 법적 기초인 '로마 규정'(Rome statute) 제98조(면책 포기와 인도 동의 관련 협력)를 원용한 걸로 봤다. 제1항은 ICC는 "요청받은 당사국이 자국 또는 제3국의 사람이나 재산에 대한 외교 면책과 관련해 국제법상의 의무에 상충하게 행동하도록 요청하는, 그런 인도나 지원 요청을 진행할 때는 먼저 면책특권을 포기한다는 제3국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을 두고 ICC는 2019년에 "면책권의 원천"이 아니라 영장 집행 요청 방식을 안내하는 "절차적 규칙"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또한 가디언은 로마 규정 제27조(공식 자격 불문) 2항에는 고위직 면책과 관련해 "그런 사람에 대한 ICC의 관할권 행사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고 소개했다.
동병상련인 푸틴 체포영장은 집행 지지
'유대 신정 독재'란 이스라엘 실체 외면
이렇듯 네타냐후 면책 주장은 프랑스의 6일 전, 6개월 전의 입장을 뒤집은 것이지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범죄 혐의로 역시 ICC가 작년 3월 체포영장을 발부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자국의 입장에도 배치된다. 앞서 지난달 24일 ICC는 푸틴의 9월 국빈방문 때 체포 의무를 위반한 ICC 당사국인 몽골을 당사국 총회에 회부했다. 당시 프랑스 외교부는 "면책특권을 없애기 위한 오랜 헌신에 따라" ICC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시했다.
프랑스 외교 성명의 다음 대목은 더 가관이다. 성명은 "법의 지배와 전문성 있고 독립적인 사법 시스템을 충실히 받드는 두 민주주의 체제인 프랑스와 이스라엘 간의 오랜 우정에 맞춰 네타냐후 총리 및 다른 이스라엘 당국들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일해 나갈 생각이다"라고 했다.
현재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은 민주주의와 법치, 사법부 독립이 무너진 '유대 신정 독재정권'으로 빠르게 퇴행하는 공공연한 사실을 프랑스 마크롱 정부는 아예 눈감은 것이다. 특히 이날 성명에는 네타냐후 등에 대한 면책특권 얘기만 있었지, 작년 10·7 사태 이후 13개월여 동안 진행된 네타냐후의 가자 대학살에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가자에서의 사망자는 4만4000명을 넘었고 가자 전역이 초토화됐으며 주민들은 추위와 굶주림,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프 녹색당 "휴전 성명 거명 위한 거래"
국제인권단체들 "충격적, 터무니없다"
마크롱의 표변 배경을 두고 전날인 26일 미국과 프랑스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 간 휴전 발표와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AFP에 따르면, 프랑스 녹색당의 마린 통델리에 대표는 이날 'X'를 통해 "어제 프랑스와 미국이 발표한 레바논 휴전 공식 성명에서 프랑스가 거명되기 위한 거래였을 게 확실하다"며 "치욕스럽다"라고 썼다. 통델리에는 "프랑스는 또다시 국제정의 위에 군림하려는 네타냐후의 요구를 들어주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각에선 영장 발부 당일 "ICC 규정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프랑스의 입장과 관련해 네타냐후가 마크롱에 전화를 걸어 분노를 표시하고 입장 변경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당연히 인권단체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비판도 이어졌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프랑스의 입장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가 많다"면서 "프랑스는 ICC 피고들을 면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 로마 규정에 따라 체포영장을 집행할 명백한 법적 의무를 수용하겠다고 명확히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휴먼라이츠워치 유럽지부의 안드레우 슈트뢰흐라인 미디어 국장은 'X'를 통해 "프랑스가 너무 충격적이고 터무니없는 짓을 하고 있다. 고위직에 있다는 이유로 누구도 ICC 체포영장으로부터 면책받지 못한다. 네타냐후도, 푸틴도, 다른 누구도."라고 썼다.
영국 라미 "어떤 고려 없이 영장 발부"
"ICC에 항소" 네타냐후, 초조함 들켜
영국의 데이비드 라미 외교부 장관은 최근 의회 외교위에 출석해 "지목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나는 어떤 고려도 없이 영장을 발부하고 법원에 회부할 것이며, 법원은 우리 법에 따라 결정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로마 규정'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124개 당사국은 네타냐후와 갈란트가 자국을 방문할 때 체포영장을 집행할 의무가 있다
한편 이스라엘 정부는 네타냐후와 범행 당시 국방장관인 갈란트에 대한 ICC의 체포영장 발부에 불복해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ICC에 체포영장 집행을 보류할 것을 촉구했다. 공교롭게도 프랑스가 네타냐후의 면책특권을 주장한 직후여서 '짜고 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 국가는 헤이그에 있는 ICC의 권위와 체포영장 발부의 합법성을 거부한다"며 "이스라엘은 오늘 ICC에 체포영장 집행 유예 요구와 함께 항소 의사를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당사국이 아닌 만큼 ICC의 권위와 영장의 합법성은 부인한다고 주장하면서 영장 발부 결정에 불복해 ICC 절차에 따라 항소할 터이니 집행을 보류해달라는 모순된 접근에서 '국제 전범'으로 수배된 네타냐후의 초조함이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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