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시스템반도체 매각·RE100 대응 촉구
안팎에서 인적 쇄신·지배구조 개선 요구 빗발
이재용 회장 침묵…취임 2주년 메시지 없어
한국 전체 수출 20% 차지·투자자도 400만
위기 탈출 해법 못 찾으면 경제 전체가 위험
삼성전자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전체 수출의 20% 가까이 책임지고 있고 국가 안보와 직결된 첨단 반도체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개인투자자 400만 명 이상이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 중이다. 삼성전자가 무너지면 한국 경제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급락하고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위상이 흔들리자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 위기의 근본 원인은 소유지배 구조”
급기야 시민단체까지 삼성전자 향해 조속한 위기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8일 낮 12시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실적 부진의 원인 중 하나인 시스템 반도체 부문 매각과 지속 가능 경영을 위한 ‘RE100’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실련은 “삼성전자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술력이 아니라 삼성전자의 소유지배구조이고, 이런 소유지배구조는 총수 일가의 사익과 삼성전자 내부 조직의 기득권에 의해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시스템 반도체 설계 부문을 매각하고, 삼성전자 각 사업 부문을 독립적인 회사로 분사한 뒤 세계 최고의 전문경영인을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삼성전자의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RE100’ 이행 계획도 촉구했다. RE100은 국제 비영리단체 클라이밋그룹이 주도하는 자율적 동참 캠페인으로 기업이 사용하는 모든 전력을 2050년까지 전량 재생에너지로 생산해 쓰도록 하겠다는 게 요지다. 자율 캠페인이라고 하지만 구글을 비롯한 거의 모든 세계적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어 사실상 강제성이 있다. 삼성전자도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국내 RE100 대응책 마련도 발등의 불
경실련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대만의 TSMC는 작년 9월 2040년까지 RE100을 이행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재생에너지 장기 수급 20년 계약도 맺었다. 반면 삼성전자는 2022년 기준 RE100 전체 달성률이 31%로 경쟁사에 비해 저조한 편이다. 특히 신재생 에너지 생산량이 적은 국내에서는 3% 수준에 그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원전을 중시하며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축소한 탓도 있으나 삼성전자 의지도 부족하다고 경실련은 보고 있다.
국내에서 삼성전자는 RE100을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력 수급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구글과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삼성전자에 RE100 이행을 요구한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경실련은 삼성전자가 “2042년까지 용인에 반도체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300조 원을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지만 구체적인 RE100 달성 방안과 계획 없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또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가 법인세를 비롯한 세제와 금융지원 등 여러 정책적 특혜를 받고 있고, 이재용 회장은 총수로서 온갖 사법적 특혜까지 받았다”며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이러한 특혜를 받았음에도 돈만 벌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이 회장과 임원들이 하고 있다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 10명 중 1명 이상 삼성전자 주식 보유
시민단체까지 나서 삼성전자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유가 있다.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수출액은 약 830조 원이었는데 이 중 20%에 육박하는 약 150조 원을 삼성전자가 맡았다. 삼성전자 매출에 따라 한국 수출액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절대적이다. 코스피에서 시가총액 부동의 1위이고, 개인투자자만 400만 명이 훌쩍 넘는다. 우리 국민 10명 중 1명 이상이 삼성전자 주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직간접적 고용 효과와 연구개발(R&D) 투자, 국가 차원의 반도체 기술 주도권 등 다른 요소까지 고려하면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크다.
삼성전자의 위기는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시기를 놓치고 신사업인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에서 TSMC 추격에 실패한 것에서 기인한다. 스마트폰과 가전, 디스플레이 등 다른 분야에서도 뚜렷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하만 인수로 자동차용 전자제품의 덩치를 키우고 있으나 삼성전자 전체 실적을 견인할 정도는 아니다.
결국 반도체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런데 세계에서 최강을 자랑했던 메모리 시장에서 첨단 제품인 HBM은 후발 주자로 전락했고, 기존 범용제품인 D램은 중국 기업에 잠식당하고 있다. 그 결과 반도체 영업이익에서 2위 업체인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외국 투자자들이 떠나면서 주가도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이다.
이재용, 말로만 “현실은 엄중, 시장은 냉혹”
하지만 이는 눈에 보이는 이유일 뿐이다. 진짜 문제는 이런 상황을 만든 경영진에 있다. 비대화, 관료화한 조직과 사업부 간 불통으로 의사결정이 왜곡되거나 지연된 탓이 크다. 이 때문에 수년 전부터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조직 쇄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이재용 회장은 어려울 때 조직을 흔들면 더 위험하다는 이유로 현상 유지에 급급했다.
시민단체까지 변화를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이 회장은 느긋하기만 하다. 그는 취임 2주년을 맞는 27일에도 별다른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11월 말이나 12월 초 대규모 경영진 물갈이와 조직 개편이 있을 것이라는 언론들의 추측성 보도만 나왔다. 1993년 ‘신경영’을 외치며 삼성전자의 개혁을 이끌었던 고 이건희 선대 회장 4주기를 맞아 개최한 각종 행사에서도 침묵을 유지했다.
이 회장은 2022년 회장에 취임하며 이런 말을 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이 있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 돌이켜 보면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말만 이렇게 했을 뿐 실행이 뒤따르지 않았다. 경영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메시지를 내놓았으면 결단과 행동으로 실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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