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2주기 '보라리본행진'…"진상을 규명하라"
1년 만에 다시 걷는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위한 길
1년간 아무런 반성 없는 윤석열 대통령과 책임자들
유가족 "윤 정권, 어떤 심판 받을지 똑똑히 보여줄 것"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움직일 수 없어요! 숨이…, 숨이 막혀요, 살려주세요!"
26일 10·29 이태원 참사 기억과 안전의 길(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는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남훈 씨의 어머니 박영수 씨가 외친 '그날'의 고통스러운 신음이었다. 그 소리에 여러 유가족이 오열했다. 그들의 삶은 여전히 2년 전 그 골목에 있는 듯했다. 박 씨도 마찬가지였다. "2022년 10월 29일 이 자리, 이 좁은 골목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리는 듯하다"며 "내 새끼, 우리 아이들의 고통 어린 몸부림이 온마음으로 온몸으로 느껴진다"고 울먹였다.
그는 "그래서 남아있는 우리가 그날의 진실을 찾고, 묻고 또 묻고, 걷고, 외쳤다"면서 "암흑 속에 갇힌 그날의 진실을 찾아 몸부림쳤지만, 이 정부의 행정기관, 사법부는 변화가 없었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이제 엄마, 아빠, 그리고 진실을 찾아 아픔을 공감하시는 시민분들은 다시 한번 그날의 진실을 찾아 걷는다"며 "지난 2년의 미안함을 가슴에 안고 울부짖으며 걸으려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살아가는, 살아내야 하는 시민 여러분께, 청년들께, 이 시대의 양심과 정의에 호소한다"면서 "진실을 향해 함께 해달라.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어달라"고 당부했다.
1년 만에 다시 걷는 진상 규명과 안전 사회를 위한 길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앞둔 주말인 이날 유가족들은 참사가 일어났던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부터 '2주기 시민추모대회'가 열리는 서울광장까지 '보라 리본 행진'에 나섰다. 행진에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목소리에 연대하는 일반 시민들도 보라 리본을 매고 함께 했다. 종교인들도 연대의 목소리를 냈다. 기독교, 원불교, 천주교, 불교 등 4대 종단 종교인들은 행진에 앞서 희생자 숫자를 상징하는 오후 1시 59분부터 추모의식을 갖고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과의 연대를 다짐했다. 일부 시민은 추모 의식 중 손을 모으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종교인들의 추모의식과 유가족 발언이 끝난 뒤, 오후 2시 40분부터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됐다. 행진은 참사 현장인 이태원역에서 출발해 용산 대통령실 앞, 서울역, 10·29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지나 시민추모대회가 열리는 서울광장까지 이어졌다. 일부 시민은 현장에서 유가족의 행진을 보고 즉석에서 동참하기도 했다. 한 시민은 기자에게 행진에 대해 물어본 뒤, "지금은 시간이 없다"며 "시민추모대회가 열리는 시청에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모차를 끌고 아이와 함께 온 가족도 있었으며, 외국인 참가자들도 다수였다.
시민들은 행진을 하며 "참사책임 면죄부 준 무죄판결 규탄한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적극 협조하라" "이태원 참사 신속하게 진실을 규명하라" "참사 책임자 엄정 처벌하라" "시민들이 요구한다 안전사회 건설하라" "반복되는 참사 우리 손으로 막아내자" "안전을 원한다면 참사를 기억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1년간 아무런 반성 없는 대통령과 책임자들
행진 대열은 10·29 이태원 참사 최종 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한 차례 멈췄다. 시민들은 대통령실을 향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민추모대회가 열리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유가족들이 시민추모대회에 공식으로 초청했지만,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성북구의 한 교회에 '셀프 예배'를 갔다가 국민적 공분을 산 바 있다.
고 김의진 씨 어머니 임현주 씨는 대통령실 앞에서 무대 차량에 올라 "지금 제 손에는 성실과 열정을 다해 살아왔으나 국가의 부재와 행정의 업무상 과실로 인해 아깝게 희생한 159명의 사랑하는 별들 이름이 있다. 천하보다 귀한 159개의 아름다운 역사가 한순간에 사라졌다"며 "대통령 집무실 앞에 서 있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숨기지 못할 불같은 분노가 치솟는 이유는, 윤 대통령이 이 참사와 결코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 씨는 "참사의 본질이 무엇인지, 행정의 과실이 무엇인지, 책임자들이 놓친 게 무엇인지 그들은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며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무리하게 이전하면서 경찰과 구청 업무 과부하로 인해 시민의 안전은 경시됐을 뿐 아니라 집회시위와 대통령 심기 경호에만 집중하므로 천하보다 귀한 시민의 생명은 더이상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729일 동안 우리는 잔인하고 극악하고 무도한 정부와 위정자들의 행태와 민낯을 철저히 경험했다"면서 "이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위정자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정권이 국민으로부터 어떤 심판을 받게될 지 똑똑히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록 사랑하는 아들의 장례를 치를 수 없어서 10·29 참사 이후로 우리들의 삶이 장례식장이 됐으나, 뜨겁게 잡아주시는 시민분들과 진실을 말하는 언론인들이 그 스피커 역할을 해주셨기에 숨을 쉴 수 있었다"며 "우리는 사랑하는 이태원 159명의 별들과 결코 작별하지 않는다. 그들의 아름다운 삶의 명예를 위해 끝까지 연대해달라"고 외쳤다.
행진 대열은 용산 대통령실 앞을 떠나 서울역 12번 출구 앞에서 한 차례 휴식한 뒤, 10·29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사무실이 있는 명동 일대를 행진했다. 행진 중에 만난 고 장한나 씨 동생 장현 씨는 "같이 행진하면서 이태원 참사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누나가 너무 그립다"고 말했다. 시민 정서영 씨는 "내 또래가 이태원 참사로 많이 희생돼서 추모하고 싶었다"며 "행진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사회가 조금이라도 바뀌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행진 대열이 특조위 앞에 다다르자, 송기춘 특조위 위원장이 직접 마중나와 유가족들에게 인사했다. 이 자리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와 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인 이해식 의원, 민주당 이태원참사 특위 위원장인 남인순 의원, 민주당 장경태 의원 등도 함께 했다. 이들은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과 진상규명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행진 대열은 잠시 특조위 앞에서 휴식한 뒤, 다시 광장을 향해 이동했다.
이태원 2주기 '진실을 향한 걸음, 함께 하겠다는 약속'
이태원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6시 34분부터 오후 8시까지 서울광장에서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시민추모대회 '진실을 향한 걸음, 함께 하겠다는 약속'를 연다. 오후 6시 34분은 이태원 참사 압사 사고가 경찰서에 처음 접수된 시간이다.
추모대회에서는 유가족을 대표해 이정민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생존 피해자 이주현 씨의 발언, 참사 2주기를 맞아 가족들과 서울을 찾은 호주인 희생자 그레이스 래치드(Grace Rached)의 어머니 조안 래치드(Joan Rached)의 편지 낭독도 예정돼 있다. 또 김종기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과 송기춘 위원장,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야 7개 정당 원내·상임대표가 추모사를 할 예정이다. 이밖에 참사 희생자를 기리고 애도의 뜻을 담은 공연들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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