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25명의 부모님이 말하는 '애끓는 2년'
"시민들이 도와줘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2차 가해당해도 법적 조치를 할 수 없는 구조"
꼭 읽었으면 하는 사람? "바로 윤석열 대통령"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면 사람요?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다. 이 나라의 지도자로서 참사를 겪은 유가족의 아픔을 공감해야 한다.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고 이주영 씨 아버지 이정민 씨)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목소리를 담은 두 번째 구술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창비)가 22일 발간됐다.
저자는 '10·29 이태원 참사 기록단'.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하자고 모인 작가와 활동가 단체다. 기록단은 25명의 유가족을 동행취재하고 인터뷰를 했다. 유가족 활동 전면에 나섰던 부모의 절절한 외침과 분투, 지역과 해외 유가족들의 애타는 심경과 트라우마, 참사 이후의 삶을 기록했다. 일 년 전 펴낸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는 희생자의 형제·자매 중심이었고, 이번 책은 희생자의 부모님 인터뷰가 중심이다.
참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픈 기억을 환기하는 것이기에 유가족에겐 힘든 일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이날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 별들의 집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공간에서 만난 고 김서현 씨 어머니 신지현 씨는 "작년에 5·18 유가족을 만났다. 그때 유가족분께 '세월이 지나면 괜찮냐'고 물었다. 유가족분이 '계속 똑같다. 그냥 버티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5·18 엄마처럼 10·29 엄마가 됐다"며 "유가족들은 이렇게 아픈데 윤석열 정부는 참사를 축소하려 했다. 누가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됐다. 우리가 억울하다고 직접 말해야 했다"전했다.
신 씨는 "이태원 참사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 조작, 은폐로 '의도하지 않은 학살'이 됐다. 지금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은 자신들이 무죄를 받았다고 웃고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 가진 권한만큼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참사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태원 참사 2주기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유가족들은 구술집을 통해 참사 이후의 삶과 참사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참사는 이 책의 제목처럼 '골목에 머물지 않고' 한국 사회를 돌아다니다 그 모습을 드러내 공동체의 삶을 파괴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재현이가 참사 당시에 살아서 병원에 실려와 가까이서 재현이를 봤다. 당시엔 재현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재현이가 떠나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낯선 세상에 혼자 고립된 느낌이다. 재현이와 똑같이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지난 2년을 살았다.(고 이재현 씨 어머니 송해진 씨)
○…평소에도 내 딸은 옆에서 ‘엄마, 용기를 내서 살아’라고 말했다. 딸이 그렇게 가면서 나를 이런 자리에 앉게 하고 서게 하는 것 같아 가끔 원망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유가족 협의회 활동이 아니면 절대 못 했을 거다. 활동을 하니 해소되는 것이 있다. (…)참사 책임자들은 이태원 참사를 ‘현상’이라고 했다. 참사를 예방하지 못했다면 최소한 참사를 대하는 태도라도 제대로 돼야 한다. 그런데 조작, 은폐, 여러 가지 삭제 지시만 있었다. (고 김서현 씨 어머니 신지현 씨)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물론 호주에서도 많은 사건이 있고 비극도 있다. 이런 일을 겪는 게 우리만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우리 상황을 확인한 사람이 없다. 시드니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서 뭔가 절차적으로 마무리해야 할 게 있다고 연락이 왔었는데, 그게 다였다. 그것 말고는 어떤 연락도, 확인도 없었다.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뉴스에 한 번 나오고 그냥 그게 끝이었다. (그레이스 래치드 씨의 어머니 조앤 래치드 씨)
○…분향소에 사용할 천막 텐트를 차에서 내릴 때 시민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금 빨리 분향소를 설치해야 하니 도와달라!'고. 그러니 시민들이 몰려들어 경찰을 막아 줬다. 그러면서 유가족들도 함께 시민들하고 몰려갔다. 그 순간이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을 거다. 그저 '분향소를 설치해야 해, 하지 않으면 안 돼'라는 마음에 밀어붙인 거다. 경찰들도 시민들이 갑자기 몰리니 당황했다. 그때 우리 유가족 중 한 명이 경찰에게 '우리가 애들을 이런 상태로 잃었는데 자식 같은 너희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제 좀 물러나 주면 안 되겠니?'라고 말했다. (고 이주영 씨의 아버지 이정민 씨)
○…그때를 생각하면 우릴 도와준 시민들이 너무 고맙다. 그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분향소를 세웠다. 우리랑 같이 팔짱 끼고 경찰을 막아준 그 사람들이 없었으면 우리는 시청 광장에 못 들어왔을 거다. 경찰들이랑 막 부딪치는데 다른 유가족들은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나는 죽기 살기로 막았다. 우리 아들도 길거리에서 죽었는데. 내가 여기서 죽어도 괜찮다, 그런 심정으로 악착같이 버텼다. (고 이동민 씨의 아버지 이성기 씨)
유가족이 지난 2년 동안 겪은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다. 특히 2차 가해는 유가족들의 마음에 굵은 생채기를 남겼다. 그렇다고 유가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씨는 "우리가 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나. 우린 갑자기 가족을 잃은 슬픔을 토로했을 뿐"이라며 "2차 가해하는 사람들에게 법적인 조치를 취하려고 했다. 사망자가 159명이고 누군가 특정한 것이 아니면 법적인 조치를 할 수 없었다. 이럴 땐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유가족들은 시민들과 연대하면서 위로를 받았다. 송 씨는 "유가족이 되니 예전과는 다르게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때마다 함께 활동하고 도움 주신 시민들이 중재자 역할을 해 주신 것 같다"며 "구체적인 도움을 주신 것은 말로 다 못 한다. 피부에 와닿는 고마움은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준 것"이라고 했다.
자식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연대의 끈이 되기도 했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고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의 어머니인 김혜영 씨는 "유가족이 덜 고통스럽고 빨리 안정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구술집에 참여했다. 남들이 볼 때 사소한 것도 유가족에겐 큰 슬픔이고 상처다. 나는 아들을 떠나보낸 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견뎌내는 삶을 살고 있다"며 "책이 출간됐으니, 세상이 변할 거라고 믿는다. 참담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기록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마음으로 안아달라"고 응원했다.
이번 구술집을 펴내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해외 유가족을 찾는 일이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 중 26명이 외국인이다. 기록단 정인식 작가는 "국내 유가족도 공식적인 루트가 없었다. 전부 알음알음 연락한 것"이라며 "해외 유가족도 마찬가지다. 외교부나 행안부는 연락처를 가지고 있어도 우리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1주기 때 한국에 방문하신 해외 유가족이 있어서 그분을 시작으로 연락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구술집에 참석한 조앤 래치드 씨는 호주 언론사에 보도된 이태원 참사 1주기에 펴낸 구술집 기사를 보고 출판사 쪽으로 연락을 했다. 해외에 있는 유가족은 훨씬 고립돼 있고 어떻게 상황이 흘러가는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된 것은 유가족 협의회의 큰 성과다. 유가족들은 특조위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정민 씨는 "1년 6개월 동안 길거리에서 몸을 던져 특조위를 만들었다. 한국의 역사를 보면 참사가 끊임없이 있었지만 책임에 대한 부분은 미흡했다"며 "특조위는 권력의 방패막이 아니라 이태원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만들어졌다. 권력이 감추고 은폐하려고 하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면 사람들이 '놀러 가서 죽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책과 특조위를 통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유가족들이 이렇게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이것이 진실을 밝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유족과 기록단은 오는 27일 오후 2시 별들의 집에서 구술기록집 북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2주기 당일인 29일에는 오후 6시 34분에 이태원 역 1번출구에서 행동독서회를 연다. 행동독서회는 참사 현장에서 30분 동안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책과 참사에 관련된 책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민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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