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천사의 말을 하고, 산을 옮긴다 한들
남더러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무슨 소용인가
윤 정권에 저항하지 않은 종교인은 쓸데없어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말은 넘쳐나고, 인문학 이름의 강의도 많지만, 인문학 고전을 진지하게 읽는 강의는 찾기 어렵다. 인문학 고전은 혼자 읽기 어렵고, 인문학 고전을 깊이 연구한 스승을 찾기도 어렵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역사는 슬픈 땅 제주도에 기쁜 소식이 들린다. 관광의 섬 제주가 품격 있는 인문 도시가 되도록 돕는 인문학 강좌 시리즈가 탄생한 것이다.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원장 진희종)이 주최하는 ‘제주에서 인문학 고전 읽기’ 시리즈다. 제주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외지인들이 배우고 생각하기 위해 제주를 찾도록 돕는 강좌다.
종교인의 말에는 왜 칸트의 매력과 감동이 없을까
‘제주에서 인문학 고전 읽기’ 시리즈의 1번 타자로 등판한 국보급 철학자 김상봉 교수는 칸트 탄생 300주년 기념으로 제주에서 『순수이성 비판』 읽기를 제안했다. 현대사상을 그 뿌리에서 깊이 이해하려는 사람은, 철학 역사에서 새 시대의 문을 열고 모든 현대 사상의 초석을 닦은 칸트를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다.
김상봉 교수는 강의록 초안에서 포부를 밝혔다. “지금까지 한국의 근대화는 물질적 근대화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여기에 정치적 근대화를 우리가 보탰지만, 이제는 지금까지의 성과 위에 정신적 근대화를 추구해야 할 때다. 근대 정신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대적 정신의 기초인 『순수이성 비판』을 읽고 칸트를 이해해야 한다.”
김상봉 교수의 다섯 번에 걸친 강좌 제목만 슬쩍 보아도, 내 마음은 벌써 뜨거워진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무엇인가?’
‘플라톤의 이데아와 칸트의 아프리오리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어떻게 세계가 내 마음속에 있을 수 있는가?’
‘인류가 출현하기 전에는 시간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내 앞에 보이는 것이 정말로 있는 것일까?’
오늘 칼럼의 주제와 칸트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철학자 칸트의 말에서는 매력이 풍겨오는 데 반해, 오늘날 종교인의 말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인처럼 말을 많이, 자주 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그런데, 종교인의 말에는 왜 매력과 감동이 드물고, 의롭고 선한 영향력이 적을까.
종교인은 부자와 언론인, 검사보다 더 하느님 나라 가기 어렵다
종교인이 부처나 예수 이야기를 안 했거나 덜 해서가 아니다. 종교인의 인품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뒤져서도 아니다. 모든 종교인이 다 게으르거나 부패한 것도 아니다. 윤리적으로 모범적인 종교인이 얼마나 많은가. 남몰래 선행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열심히 수양하고 공부하는 종교인이 얼마나 많은가.
신약성서 마가복음 10,17-25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예수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물었다.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하지 마라’ 등 계명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되물은 예수는 “어려서부터 그 계명을 다 지켜 왔다”는 그에게 “당신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가서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오”라고 요구했다. 재산이 많은 그는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 그러자 예수는 선언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내 생각에, 종교인 역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종교인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종교인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언론인과 검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왜 그럴까. 윤석열 독재정권에 시달리는 백성의 고통에 대부분 종교인이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의 패악질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보기 때문이다. 절, 교회, 성당에 꽁꽁 숨어 윤석열 정권에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직업은 종교인이 아니라 구경꾼입니다”라고 정직하게 고백하는 종교인 어디 없나. 훌륭하게 살아온 대부분 종교인들에게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분명히 있다.
윤석열 정권에 저항하지 않는 종교인이, 예수니 부처니, 해탈이니 천국이니, 백날 외쳐봐야 무슨 소용 있겠는가. 사랑, 자비, 깨달음에 온갖 아름다운 말이 종교인 입에서 더 나온다 한들, 윤석열 독재정권에 저항하지 않는 종교인의 말을 대한민국 그 누가 진심으로 경청하겠는가. 자기들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서, 남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설교하는 종교인의 말을 누가 흔쾌히 받아들이겠는가.
윤 정권에 저항하지 않는 쓸데 없는 종교인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고린토전서 13,1-3).
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신약성서 구절을 우리 역사 현실에 비추어 이렇게 바꾸고 싶다.
“종교인이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윤석열 정권의 패악질에 저항하지 않으면, 종교인은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종교인이 부처님과 하느님의 행동과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윤석열 정권의 패악질에 저항하지 않으면, 종교인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종교인이 모든 지식과 깨달음과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윤석열 정권의 패악질에 저항하지 않으면 종교인은 아무 쓸데없습니다.“
윤석열 정권에 끈질기게 저항해온 일부 종교인에게는 내 말이 못내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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