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주교회의, 출국회견 등 따끔한 조언
국내 언론엔 입맛에 맞는 것만 뽑아서 보도
원문을 찾아보니 "쓸모없는 교회 되지 마시오"
지금 돌아보아도 한국 종교인들에게 큰 교훈
2014년 8월 13일부터 8월 18일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6회 아시아 청년 대회가 열린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당시 교황의 행동과 말씀을 1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아도,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한국인들은 가슴 뭉클하다. 교황의 행동과 말씀은 가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종교와 종교인에게도 큰 교훈이 된다.
8월 14일 목요일 청와대 충무홀에서 대통령과 정부 공직자들, 외교단과의 만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연설했다.
박근혜 앞에 두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되기를…”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 오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게 되어서, 또 무엇보다 한국의 국민들과 그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의 아름다움을 접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이 민족은 오랜 세월 폭력과 박해와 전쟁의 시련을 거쳤습니다.”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입니다.(이사 32,17 참조) 그리고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합니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합니다.“
“(…)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한국도 중요한 사회 문제들이 있고,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 자연 환경의 책임 있는 관리에 대한 관심사들로 씨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런데, 연설 도중에 놀랄 만한 발언이 있었다.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되기를 희망하며…”라는 표현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감히 사용했다. 4.16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 넉 달 지난 시점이었고, 한국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 박근혜였다. 자칫 내정 간섭으로 여겨질 수 있는 민감한, 그러나 너무도 정확한 발언이었다.
주교들에게는 “중산층 ‘사교 모임’ 되어서는 안 된다”
그뿐 아니다. 8월 14일 그 날 저녁,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를 방문해 주교들에게 따끔한 말씀을 선사했다.
“여러분은 순교자들의 후손이고, 그리스도 신앙을 영웅적으로 증언한 그 증거의 상속자들입니다. 또한 평신도들에게서 시작되어 여러 세대에 걸친 그들의 충실성과 끊임없는 노고로 크게 자라난, 매우 비범한 전통의 상속자들입니다. 그들은 성직주의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직주의 위험을 수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성직주의에 빠진 종교인이 가난한 사람들을 가까이 할 리 없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는 사도 시대의 이상은 여러분 나라의 첫 신앙 공동체에서 그 생생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이 미래를 향해 순례하는 한국 교회가 걸어갈 길에 계속 귀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번영의 시기에 오는 위험, 유혹이 있습니다. 위험이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한갓 ‘사교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이들이 교회에서 할 일은 없어지고 맙니다.“
“교회는 중산층의 공동체가 되어, 가난한 이들이 교회 안에서 수치심을 느끼고 그 안에 들어가기를 부끄러워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또는 잘 사는 자들을 위한 중산층의 교회가 되려는 유혹입니다.”
가난한 이들 배척하고 성공과 권력 따르려는 교회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쫓아내지는 않지만, 가난한 이들이 감히 교회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또 제 집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도 없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번영에 대한 유혹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는 번영하는 교회이고, 선교하는 훌륭한 교회이고, 커다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에서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마십시오.”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하나의 웰빙 교회…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번영의 신학’에 이르렀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안 됩니다. 그저 그런 쓸모없는 교회가 되지 마십시오.”
“한국 교회가, 번영하였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목자들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준보다도 기업 사회에서 비롯된 능률적인 운영, 기획, 조직의 모델들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까지도 받아들이려는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언론 배포문에 통째로 빠진 교황 연설문 17개 문장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8월 14일 교황방한위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주교들에게 한 연설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언론에 배포했는데, 여덟 번째 단락의 17개 문장이 통째로 빠진 번역본을 제공한 것이다. (‘주교단에 한 교황 연설, 한 문단 통째로 빠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4.08.18.).
교황방한위원회는 박근혜 정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준비하기 위한 범정부적 위원회로서, 교황 방한 5개월 전부터 정홍원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정부 주요 부처 다수가 참여했다(연합뉴스 2014.3.11.). 이중의 누가 왜, 혹은 누구의 부탁을 받고, 그 부분의 국내 언론 보도를 막으려 했을까? 교황청 홈페이지에는 빠진 부분이 영어판뿐 아니라 번역본까지 그대로 실렸다.
해괴한 일은 또 있었다. 2014년 8월 18일 방한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연합뉴스 박성진 기자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교황의 행동이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교황은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고 답했다. 교황은 답변 중에 중요한 사실 하나를 털어놓았다. 세월호 배지를 단 교황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교황님은 배지를 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교황님은 중립을 지키셔야 합니다” 말했다는 것이다. 교황에게 무례한 요구를 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아편 종교 저리 가고, 해방 종교 어서 오라
일부 종교학자들은 오늘 종교의 모습을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의 대결 구도로 표현하고 있다. 흥미로운 관점과 구도이긴 하나, 오늘의 종교 현실을 정확히 포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늘 종교의 모습은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의 대결보다는 아편 종교와 해방 종교의 대결에 더 가깝다. 문제는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의 대결이 아니라 아편 종교와 해방 종교 대결이다.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종교는 백성을 속이는 아편 종교요, 백성들에게 아편이 되는 종교다.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종교가 되기 위해 종교와 종교인은 부자와 권력자들을 가까이 하기 때문이다. 부자와 권력자들을 가까이 하는 종교와 종교인은 부패하기 쉽고 불의한 권력에 협조하기 쉽다.
아편 종교는 어떻게 하면 백성을 속일까 연구하고, 해방 종교는 어떻게 하면 백성을 깨우칠까 연구한다. 아편 종교인은 어떻게 하면 부자와 권력자와 가까이 할까 연구하고, 해방 종교인은 어떻게 하면 백성과 가난한 사람들과 가까이 할까 연구한다. 지금 한국의 모든 종교가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종교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백성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아편이든, 백성에게 결과적으로 아편을 선사하는 종교든, 그것은 참된 종교와 거리가 멀다. 참된 종교는 백성에게 해방을 선사한다. 해방 종교와 아편 종교는 하늘과 땅 차이요, 천국과 지옥 차이다.
※언론 배포문에 빠졌던 교황 연설문 원문
교황방한위원회가 언론에 배포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문에서 빠진 단락을 바티칸 공식 홈페이지에서 찾아, 바티칸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한국어 번역본 그대로 아래 수록한다. (출처; 바티칸 공식 홈페이지)
“가난한 이들이 복음의 중심에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또한 복음의 시작과 끝에도 가난한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셨다고) 나자렛 회당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마지막 날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우리 모두가 심판 받을 때 적용될 ‘규범’을 알려주십니다.
거기에도 가난한 이들이 있습니다. 번영의 시기에 오는 위험, 유혹이 있습니다. 위험이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한갓 ‘사교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 곧 신비적 측면을 잃고 하느님의 신비를 거행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그러한 공동체는 영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인 가치를 지닌 조직이지만, 예언자적인 누룩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이들이 교회에서 할 일은 없어지고 맙니다.
이것은 역사 안에서 개별 교회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수없이 겪어 온 유혹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중산층의 공동체가 되어, 가난한 이들이 교회 안에서 수치심을 느끼고 그 안에 들어가기를 부끄러워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또한 정신적 웰빙, 사목적 웰빙에 대한 유혹입니다. 곧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또는 잘사는 자들을 위한 중산층의 교회가 되려는 유혹입니다.
이는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맨 처음부터 시작되었던 일입니다. 바오로는 코린토인들을 꾸짖어야만 하였고(1코린 11,17), 야고보 사도는 더욱 강하고 더욱 분명하게 그들 부유한 공동체들,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들을 꾸짖어야만 하였습니다(야고 2,1-7).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쫓아내지는 않지만, 가난한 이들이 감히 교회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또 제 집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도 없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번영에 대한 유혹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일을 잘 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을 꾸짖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믿음 안에서 제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할 형제로서 여러분에게 말씀 드립니다.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는 번영하는 교회이고, 선교하는 훌륭한 교회이고, 커다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가라지를 심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바로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에서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마십시오.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하나의 웰빙 교회…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번영의 신학’에 이르렀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안 됩니다. 그저 그런 쓸모없는 교회가 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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