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복회장, 아들 친구 윤 대통령에 '배신감' 토로

그러나 친일 독립기념관장 임명이 난데없는 일인가

2년간의 일관된 친일 행보의 조연 역할들 자문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이종찬 광복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2024.3.1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이종찬 광복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2024.3.1 연합뉴스

일제 식민지배 정당화 발언을 한 인물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 것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특히 광복회의 움직임이 주목되는데, 이를 이끄는 이종찬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해 내놓는 발언들이 매우 신랄하다. 그는 광복회의 광복절 행사 불참을 결정하고 광복절 기념식을 독립운동단체연합과 함께 백범기념관에서 자체적으로 거행키로 했다. 그는 "정부가 근본적으로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공식적인 광복절 행사에 안 나가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는데, 무엇보다 윤 대통령을 향해 ‘상당한 배신감을 갖고 있다’는 발언이 주목된다.

이 ‘배신감’이 윤 대통령에 대한 이 회장의 심정을 집약하는 말로 들리는 것은 윤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인 것에서 연유한다. 이 회장은 윤 대통령의 초등학교, 대학교(서울대 법대) 동창의 부친이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당시 후보였던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 시국선언’까지 하며 멘토를 자처했던 것이 이 회장이었다.

‘배신감’에는 윤 대통령이 자신의 조부인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을 기리는 우당 기념관에서 정치 선언을 했던 사실, 또 지난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이전 추진 상황에서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불만을 토했던 것과도 겹친다.

이 회장의 ‘배신’은 무엇에 대한 것인가. 아들의 친구로서 자신을 아버님으로 부르는 대통령에 대해 느끼는 배신감인가, 독립운동가인 자신의 집안에 대한 것인가, 자신이 지난해 5월 회장에 당선된 광복회에 대한 것인가. 그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이든 간에 2021년 6월 검찰총장을 그만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첫 공개행보에 나섰던 것이 우당(友堂) 이회영 기념관 개관식이었던 것에서 실마리가 보인다. 우당 기념관 개관식에서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어른들께 어릴 적부터 우당의 삶을 듣고 강렬한 인상을 많이 받아왔다"며 "우당 선생의 가족 가운데 항일 무장 투쟁을 펼친 6형제 중 살아서 귀국하신 분은 다섯 째인 이시영 선생 한 분"이라며 독립운동 정신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마도 윤 대통령이 보인 역사에 대한 매우 희소한 지식은 절친한 친구 집안과의 인연 덕분인 듯하다. 

어떻든 이번의 친일 성향 인물의 독립기념관장 임명은 이종찬 회장에게 난데없는 일이었던 듯하다. 이번 임명 이전에 이미 윤석열 정부의 친일 행적은 지난 2년간 집요하게 전개돼 왔던 일이었으나 이 회장에게는 윤 대통령의 그같은 대일 굴욕, 친일 옹호 행적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았거나 그리 문제 삼을 일이 아니었던 듯하다. 이번 독립기념관장 임명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 것은 물론 이미 지난 2년간 일관되게 보여왔던 모습의 연속이면서 점점 심해지는 과정의 한 결과인데, 그렇다면 무엇이 윤 대통령으로 하여금 더욱 더 친일, 대일 맹종이 노골화하게 했는가가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1절 기념식에서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3.1절 기념사를 했다. “세계사 변화에 제대로 준비 못 해 국권을 상실”한 것이라고 해 충격을 주더니, 5일 뒤에는 ‘강제동원 제3자 변제 배상 해법’을 발표했다. 5개월 뒤, 광복절이 끼어 있는 8월에는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을 철거하려는 움직임이 국방부로부터 나왔다. 자위대 함정의 부산항 상륙이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해 일본 정부 이상으로 옹호한 것 등 친일 대일 굴욕 행보 움직임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번 독립기념관장 임명도 그 직전인 지난달 이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에 뉴라이트 계열의 교수를 임명했고, 외교부가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찬성한 것이 알려졌다. 독립운동가 후손 2명을 배제하고 김형석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을 독립기념관장 후보로 내세운 것은 그 같은 일련의 일관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종찬 회장은 이같은 사태 들 중에서 이번에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 외에 지난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대해 강한 문제제기를 했다.

둘 간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가 시도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국방장관 사퇴까지 요구했던 이종찬 광복회장은 자신이 "홍 장군 기념사업회를 처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아들이자 윤 대통령의 죽마고우인 이 모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이번 사태가 "부당한 사상 검열"이라면서 "홍범도 장군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이 회장은 "왜 갑자기 육사가 이런 일을 추진하는지, 뭐가 그리 급한지 불가사의하다"면서 그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예전 행보를 봤을 때 윤 대통령의 지시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말한 '윤 대통령의 예전 행보'는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가. 이때는 이미 친일 행보가 본격화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을 때였고 친일 노선이 이미 극명해져진 뒤였지만 이 회장에게는 자신이 주도한 홍범도 기념사업회와 관련된 일 외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듯하다. 

이번의 독립기념관장 임명 강행은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광복회와 관련된 일이 아니었다면 이 회장이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 궁금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이 2021년 6월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내에 있는 우당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이회영 선생의 후손인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왼쪽)의 안내로 봉오동·청산리전투때 사용된 옛 체코군단의 소총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이 2021년 6월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내에 있는 우당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이회영 선생의 후손인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왼쪽)의 안내로 봉오동·청산리전투때 사용된 옛 체코군단의 소총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찬 회장이 자신을 '아버님'으로 따르는 윤 대통령에 대해 매섭게 한마디 한 것은 평가해 줄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얘기를 언제부터 했어야 했을까.

'각별한 사적 인연' 때문에 차마 불편한 소리를 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사정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다만 그가 말한 대로 '윤석열의 예전 행보를 봤을 때 이해가 안 간다'는 자신의 말처럼 이해가 안 가는 행보가 결코 '돌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또 이 회장의 아들이며 윤 대통령의 절친인 이 모 교수가 12일 윤 대통령을 향해 "건국절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바로잡아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 것처럼 건국절 논란은 윤 대통령과는 관계 없는 아랫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며, 그래서 윤 대통령이 이를 바로잡아 주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바로잡을 대목이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윤석열의 친일 행보가 점점 노골화되면서 '불가역적'인 수준으로 향하고 있는 가운데 이종찬 회장의 '배신감' 발언은 윤석열과의 관계에 있어서 공사(公私) 분별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공사 구분에서 진정한 문제는 공사를 구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실은 공과 사는 둘로 쉽게 나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사적인 인연이 곧 공적인 관계를 결정하는 법이다. 사적 인연이 제대로 된 공적인 관계로 될 수 있느냐의 여부는 공과 사를 나누느냐 여부에 있지 않다. 혈연이든 지연이든 다른 어떤 사적 인연이든 간에 그 관계를 동질적인 관계로 만드는 것은 많은 경우 그 연고 자체라기보다는 결국 이해관계에서의 일치다.  

지금의 '윤석열'과 '윤석열의 생각', 그의 기괴하고 불가사의한 행보는 결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게 아니다. 지난 2년간 '지금의 윤석열'이 돼 온 과정에서 어떤 이들은 적극 도왔고, 어떤 이들은 앞장섰으며, 어떤 이는 이를 지켜보기만 했으며, 어떤 이들은 그를 장식하고 포장했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의 책임과 '기여'가 가장 큰 몫인지는 따지기 어렵지만, 말 없는 것으로써 변론이 되고 후원이 돼 온 이들의 방패막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이종찬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 출범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간 데가 어디인가. 우당 기념관이었다. 그다음에 정치 시작하는 선언을 어디서 했는가? 매헌 윤봉길 기념관에서 했다. 그러니까 그분의 근본은 독립운동이 모든 것의 베이스(기초)다"라는 믿음을 윤 대통령에 대해 지금도 확고하게 갖고 있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그의 아들이며 윤 대통령의 절친인 이 모 교수는 지난해 강제동원 3자 변제 방안에 대해 "결국 윤석열 정부가 취한 해법이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이 취할 수 밖에 없는 길"이다고 해 '윤석열 정부가 어쩔 수 없었으며, 대한민국이 어쩔 수 없었다'고 페이스북에 '고언'을 남겼지만 최소한 그와 함께 윤석열의 신념 어린 친일 행보는 과연 대한민국이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더욱 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일이다.     

광복절인 15일 백범기념관에서 광복회는 자체적으로 기념식을 열고 외교부장관에게 “일제 강점이 불법적이었고 그래서 무효였음이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임을 확인해달라”는 공식 질의서를 보낼 예정이라고 하는데, 너무도 당연한 것을 묻는 그런 질문보다도 이 회장 자신에게 먼저 필요한 자문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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