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앙과는 다르지만 결국 양비론 못 벗어나
동아일보 '조중동 이탈' 해석하지만 한계 뚜렷해
한쪽에 몰려 있는 언론구도에서 '중간' 착시 현상
많은 화제를 모은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나온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의 발언들 중에 눈길을 끌었던 또 하나는 “한국일보가 중도지다”라고 한 말이었다. 이는 한국 언론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된 중도적 신문의 위치를 한국일보 스스로가 자처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한국 언론 상황에서 중도지는 무엇을 말하고 어떤 신문들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말이었다.
한국일보 간부의 말의 '중도' 혹은 '중간'의 의미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라는 이른바 '조중동'을 한 그룹으로 하는 편과 그 반대편의 한겨레 경향 등의 언론사 사이의 중간적 입장을 취하는 언론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념적 보수와 진보의 구분에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특히 윤석열 정권의 현실에서는 권력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한 분류인 면이 크다. 친권력적이냐 비판적이냐를 기준으로 할 때 양 극단사이에서 한국일보가 가장 중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그러나 여기에 '중도' '중간'에 대한 착시가 있다. 절대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구도에서는 극단에서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중도로 오해를 받는 것이다. 조선 중앙이 한쪽의 끝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 반대편의 언론이 그만큼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중간은 가운데가 아니라 한편의 극단에서 조금 벗어난 정도에 불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이들 언론이 보도하는 주요 현안들에 대한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무엇보다 특히 최근의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보도들에서 한국일보와 같은 자칭 '중도지'는 조선이나 중앙과는 다소 다른 시각을 보이고는 있다. 그러나 결국 '양비론'에 그쳐 있어 결과적으로 조선 중앙과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 조선 중앙이 주도하는 프레임에 결국 동조화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조선과 중앙일보는 이진숙 후보자 청문 기간 중 이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반면 이를 추궁하는 민주당에 비판적인 기사들을 쏟아냈다. 조선일보의 29일자 <청문회 3일간 해놓고… 野, 이진숙 검증한다며 대전MBC까지 찾아가> 제목의 기사는 야당의 대응이 과도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번 청문회에 대해 여당 의원의 입을 빌어 “청문회가 빵으로 시작해 빵으로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비하하면서 “민주당이 주도한 빵문회 배경이 친야 성향 MBC 사수라는 것은 정치권에서 정설로 통한다”고 해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이진숙 후보자의 의혹투성인 법인카드 사용에 대한 검증을 ‘친야 성향 MBC 지키기’로 규정했다. 조선일보도 이날자 사설을 통해 “엉뚱하게 이 후보자의 빵 구매 의혹을 제기해 빵문회 하느냐는 비판을 받은 노종면 의원”을 거명하기도 했다.
한국일보의 보도는 그와는 분명 다르다. 1일자 한국일보 사설은 이진숙 후보자의 임명 및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 의결 강행을 비판하고 있다. 이진숙 후보자에 대해 ‘퇴행적 언론관’을 지녔다고 비판도 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한국일보가 결국 취하는 것은 양쪽을 모두 비판하면서 둘 다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임명도 문제지만 야당의 탄핵 추진도 문제라면서 양쪽이 ‘식상한 강행 정치’를 벌이고 있다고 나무란다. 이번 사태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에 따라 춤추는 공영방송의 문제’로 정리한다. 현행 방송 3법의 구조적 한계라면서 법과 제도의 문제로 본다.
이 신문의 30일자에 실린 기자 칼럼 <게으른 과방위에 미래를 맡겨도 될까>도 철저한 양비론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의 여야 의원들이 방문진 이사 선임 권한을 갖고 있는 방통위 장악을 두고 무한 충돌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게으른 일”이라고 비판한다. 여야의 정쟁 때문에 과학기술통신플랫폼 등의 정책들이 뒤로 밀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진숙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무한 충돌이며 게으른 일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이 신문의 양비론은 26일자 1면에서도 채상병 특검법 폐기를 전하면서 ‘의석수 대 거부권의 무한 정쟁’으로 규정하는 것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 기사는 특검법 재추진을 야당의 오기라며 여당의 대통령 엄호와 함께 비판하면서 이를 '무한반복의 대치구도에 갇혔다'고 지적한다.
이 칼럼의 위에는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뉴스스탠다드실장이 쓴 칼럼 <검찰, 사람에 충성하지 마라>가 검찰을 신랄하게 질책하고 있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씨에 대한 조사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 반발이 일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검찰은 공정하게 보이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는 이를 “검찰총장이 임기 중 정치에 직행해 대통령이 된 여파가 이런 것이다”라고 진단하고는 “검찰 직할체제를 구축한 대통령과 섣불리 검찰을 개혁한다는 야당 사이에서 제도 자체가 망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도 자체는 견실한데 망가져서 문제라는 것이며, 그것은 대통령도 잘못이지만 야당이 개혁하려 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른바 ‘조중동’ 대열에서 이탈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만큼 윤석열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들이 종종 나오는 동아일보도 '중도지' 위치를 시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신문의 윤석열-김건희 부부 비판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비해 매우 거셌다. "'김건희 리스크'는 총선과 나라의 진로에 지속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면서 "하루빨리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관저를 떠나 서초동 자택 등 사가(私家)로 거처를 옮겨 근신해야 한다"고 주장해 ‘사가 유폐론'을 폈다.
지난 5월, 153일 만에 공개 석상에 나타난 김건희 씨를 두고는 “비교하기 내키진 않지만 5공화국 때 나돌던 유행어가 '육사 위에 여사'였다. 신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를 빗대 나온 말이다. 요즘 야권에선 '검사 위에 여사'라고 조롱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동해 유전 브리핑 때도 조선이나 중앙과는 달리 “굳이 국정 브리핑의 형식으로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라며 비판했다.
이번 이진숙 후보자 관련 보도에서도 조선 중앙과는 다소 달랐다. 그러나 동아일보 역시 양측 모두에 문제가 있다는 양비론을 벗어나지 못한다.
동아일보는 1일자 사설 <어제 하루 방통위에서 벌어진 황당한 일>에서 “KBS와 MBC를 둘러싼 여야간 주도권 다툼이 막가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면서 ’방통위를 둘러싼 여야 대치‘ '방송 장악을 위한 사생결단식 대결'로 서술했다. 이 신문은 청문회에 대해서도 “야당의 도덕성 검증은 인신공격성 막말에 가려졌고 여당은 이 후보자를 둘러싼 많은 논란에도 무작정 두둔하기에만 급급했을 뿐”이라며 역시 양쪽을 ‘균형 있게’ 비판한다. 27일 1면 머릿기사 <여야 공영방송 장악 전쟁>은 '방통위 수장뿐 아니라 직무대행까지 3연속 탄핵-사퇴 악순환'은 각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한 치 양보 없는 전쟁을 벌이다 방통위 전면 공백 상태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고 역시 양비론을 펴고 있다. 사설도 <여야 공영방송 장악 꼼수 다툼>을 지적한다.
같은 날 중앙일보의 1면 톱기사 <거야, 초유의 2중 탄핵 무한정쟁 출구가 없다>가 정쟁으로 몰면서도 야당의 책임을 먼저 지적한 것에 비한다면 이 정도의 양비론만 돼도 '공정하다'고 주장할 것인가. 한국 언론에 중도지라고 자처하는 듯한 신문들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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