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없는 자의 전횡과 농단

‘여사’와 ‘영부인’, 정확하지 못한 말

우리는 최근 몇 년 새 “김 여사”와 “영부인” 관련 뉴스를 단 하루도 빠짐없이 보고 들어야한다. “김 여사”와 “영부인” 뉴스로 도배되는 시대다. 문제가 되는 그 어떤 일에도 ‘여사’와 ‘영부인’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이러니 가히 ‘여사의 시대’요 ‘영부인의 나라’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여사’나 ‘영부인’이 옳은 용어인지 그리고 이 말들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본래 ‘여사(女史)’란 중국 고대 주나라의 관직명이었다. 주나라 왕실의 관직 제도를 기록하고 있는 <주례(周禮)>에는 “女史,掌之王后禮職,掌内治之贰,以詔治内政”라고 하여 ‘여사(女史)’가 왕후를 보좌하여 왕후의 의례 행사 및 내정의 관련 문서 등 사무를 담당하는 직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여사’란 왕후의 여성 비서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중국에서 명나라 시대까지 이 ‘여사’라는 직책이 궁중에 존재했다. 하지만 이후 이 직책은 사라졌고, 현대 중국에서 이 ‘여사’라는 말은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다.

‘여사’라는 말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한편 일본에서는 이 ‘여사’는 중국의 영향으로 헤이안(平安) 시대 전까지 궁중 직책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시기부터 이 ‘여사(女史)’라는 말은 변용되어 “학자, 예술가, 정치가 등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있는 여성에 대한 경칭(敬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선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더구나 일본 사회에서 이 ‘여사’라는 용어에 대해 성차별 용어라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우선 ‘여사’라는 말은 있지만 ‘남사(男史)’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으며, ‘여사’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일종의 비꼬는 용어로 적잖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언론 기자들이 정확한 일본어를 사용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기자 핸드북>이 출판되는데, 1997년 출판된 <기자 핸드북>의 성차별 항목에 이 ‘여사’라는 단어가 추가되기도 하였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는 지난해 9월 13일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지하에 위치한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300만 원 상당의 디올(Dior) 명품 파우치를 선물 받았다. 김 씨가 받은 쇼핑백에 디올 글자가 보인다. 2023.11.28. 서울의 소리 유튜브 채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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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일본에서 온, 대통령 배우자와 무관한 말

한편, ‘영부인’이란 용어 역시 우리나라에서 잘못 이해되어 그릇되게 사용되고 있는 말이다. 이 ‘영부인’이란 말은 일본 용어로서 일본에서 귀족이나 남의 부인에 대한 경칭, 높임말로서 사용되었던 말이다. 그간 우리 사회 일각에서 ‘영부인’이란 이 일본 용어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가져와 “대통령의 배우자”를 지칭하는 말로 ‘오용’해온 것이다.

‘영부인’이란 용어를 “대통령 부인”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된 때는 바로 박정희 유신정권부터다. 그때부터 “영부인 육영수”라는 표현이 일반화되었고, 이 무렵부터 ‘영부인’이란 용어는 자연스럽게 “대통령의 부인”의 경칭으로서 우리 사회에 자리잡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시대에서 “영애(令愛) 박근혜” “영식(令息) 박지만”이라는 일본식 그대로의 호칭이 사용되어 ‘영부인’ ‘영애’와 관련된 잘못된 용어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 때는 심지어 직접 청와대에서 “대통령 이명박, 영부인 김윤옥”이라고 적힌 기념품까지 배포한 일이 있어 따가운 질타를 받기도 했다. 박정희와 이명박, 공교롭게 일본과 매우 밀접한 대통령들의 시기였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혹은 국가가) 망한다”는 현대 사회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말이다. 아니, 수용이 불가능한 말이 되었다. 대놓고 극심한 성차별을 하고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 말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과 고사를 살펴보자.

중국 고대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은 갈수록 자신의 재능을 믿고 교만해졌다. 특히 절세의 미녀 달기(妲己)를 얻고부터는 전형적인 폭군이 되어 갔다. 온갖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정사를 내팽개쳤다. 오직 달기에만 빠져서 그녀의 말만 들으면서 신하들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은 무조건 처형하였다.

어느 날 달기는 “궁중 음악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사오니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어떤지요?”라고 청하였다. 주왕은 즉시 음악을 담당하는 관리에게 명령하여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미미의 악(靡靡之樂)’이라는 음악을 만들게 하였다. 얼마 뒤 달기가 또 말했다. “폐하, 환락의 극치가 어떠한 것인지 한번 끝까지 가보고 싶사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후회 없는 삶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주왕은 즉시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대공사를 시작하도록 명을 내렸고, 공사가 완성되자 매일같이 연회가 벌어졌다. 낮에는 잠을 자고 저녁부터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마시고 놀며 즐겼다. 이러한 환락의 날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자그마치 120일이나 이어지니, 이를 ‘장야(長夜)의 음(飮)’이라 불렀다. 달기는 재물을 모으기 위해 백성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여 녹대(鹿臺)라는 금고를 만들었는데 그 크기는 넓이가 1리(里)나 되었고 높이는 천 척(尺)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또한 포락지형(炮烙之刑)이라는 형벌도 행해졌다. 포락지형이란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바르고 그 아래 이글거리는 숯불을 피워놓은 후 구리 기둥 위를 죄인들로 하여금 맨발로 걸어가게 하는 형벌이었다.

‘자격 없는 자’의 전횡과 농단을 비판한 것

마침내 주나라 무왕은 전국에 포고문을 발표했다.

<백성들에게 고한다. 옛말에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은나라 주왕은 달기의 말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하늘을 공경할 줄 모르고 포악한 정치를 일삼아 백성들은 도탄에 허덕이고 있다. 나는 이제 천명을 받들어 은나라를 토벌하려 한다. 지금 토벌하지 않으면 천하가 더욱 혼란에 빠질 것이다. 모두 일어서라!>

주나라의 10만 병력은 은나라 공격에 나서 은나라 도읍 부근의 목야(牧野)에 진을 쳤다. 이 소식을 들은 주왕은 코웃음을 쳤다. “아니, 제까짓 놈들이 나를 친다고!” 그러면서 17만 대군을 이끌고 목야로 나갔다. 그런데 주왕의 군대는 주로 노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싸울 의사가 거의 없었고 오히려 주나라가 이기면 자기들도 자유롭게 풀려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병사들이 많았다. 은나라 병사들은 모두 무기를 거꾸로 메고 오히려 주나라 군대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순식간에 승패는 결정되었다.

<사기>의 주본기(周本紀)에도 “암탉이 울면 국가가 망한다”는 대목은 인용되어 있다. “古人有言曰 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 즉, “옛 사람들이 말했다.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는다. 만약 암탉이 새벽에 운다면 그 국가는 망하게 된다”는 의미다(惟: 초래하다. 家: 국가. 索: 다할 盡의 뜻).

동서고금 역사에서 권력자인 남성의 총애를 받는 여성이 남성의 권력을 등에 업고 권력을 참칭하면서 마치 자신이 권력자인 양 제멋대로 권세를 휘두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김없이 좋지 않은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암탉이 울면 국가가 망한다”는 말은 그래서 자격이 없는 자가 권력을 장악하여 전횡하고 농단하게 되면 곧 그 국가가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비유다.

문제는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존재하지 않고, 오직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권한이 있는가의 유무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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