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극단적 미국 정치 따른 "정치 폭력"
윤, 단순 폭력‧테러로 인식…정치 맥락 배제
윤, 서면 브리핑 형식 이어 신년 인사회 활용
바이든, 공식 성명 이어 세 차례 대국민 연설
한국, 물청소에 범인 신상‧당적 공개 거부
미 FBI, 범인 이름‧사진‧당적 곧바로 공개
한국 언론은 "습격" vs 미국 언론은 "암살"
지난 주말 대선 유세 도중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총기 피격 소식은 미국은 물론 전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다행히 총알이 귀를 관통하는 데 그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무사했지만, 임계점에 이른 미국 사회의 정치적 분열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재명, 트럼프 암살 미수…대처 달랐다
정국 향배 가를 중대한 선거 앞두고 발생
불과 6개월 전에 한국에서도 동일한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올해 초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찾았다가 목을 칼에 찔려 치명상을 입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칼이 경정맥 60%만 훼손하면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분열상도 미국 못지않게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6개월의 시차를 두고 벌어졌지만, 이 두 사건은 정국의 향배를 가를 중대한 선거를 앞두고 유력한 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를 상대로 자행된 암살 시도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정권의 중간 심판 성격의 4‧10 총선을 99일 앞둔 1월 2일 백주에 변을 당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도 대선을 115일 앞두고 대낮에 총격을 받았다.
그러나 사건을 대하는 한국과 미국의 행정부, 수사당국, 언론의 자세는 사뭇 달랐다. 먼저 최대 정치적 경쟁자의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처는 일견 비슷하면서도 그 수위에선 차이가 났다. 윤 대통령은 1월 2일 이재명 대표의 피습 소식이 전해진 후 당일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 형식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윤, 단순 폭력‧테러로 인식…정치 맥락 배제
서면 브리핑 형식 이어 신년 인사회 활용
김 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의 피습 소식을 듣고 이재명 대표의 안전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대통령은 또 경찰 등 관계 당국이 신속하게 진상을 파악하고, 이재명 대표의 빠른 병원 이송과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울러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어떠한 경우에라도 이러한 폭력 행위를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튿날인 3일 오전 윤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 인사말을 통해 "원래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시기로 했던 민주당 이재명 대표께서 어제 테러를 당했다. 지금 치료 중"이라고 전한 뒤 "이 대표의 빠른 쾌유를 다 함께 기원하자"고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테러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간에 피해자에 대한 가해행위, 범죄행위를 넘어서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자유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 모두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해 윤 대통령은 "폭력 행위"에 이어 "테러"라고 규정하긴 했지만, 한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 등 정치적 맥락은 배제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바이든, 극단적 미국 정치 따른 "정치 폭력"
공식 성명 발표 이어 세 차례 대국민 연설
11월 5일 대선을 앞두고 사태의 엄중함을 의식한 탓인지 바이든 대통령의 대응은 더 신속하고 적극적이었다. AP 통신 등에 따르면, 토요일인 13일 트럼프 총기 피격 당시 델라웨어주 러호버스비치 교회에서 예배를 보던 바이든은 즉각 공식 성명을 내고 이 사건을 '정치 폭력'으로 규정하고 규탄하는 한편, "그가 안전하고 잘 있다고 들어서 감사하다. 나는 우리가 더 많은 정보를 기다리는 동안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유세에 있었던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트럼프의 안위를 기원했다.
급한 대로 성명을 먼저 발표한 바이든 대통령은 뒤이어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연설에서 바이든은 "미국에서 이런 정치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고 적절하지 않다. 모두가 규탄해야 한다"면서 "미국에서 이런 종류의 폭력이 있을 자리는 없다. 역겹다. 이것은 우리가 이 나라를 통합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백악관으로 복귀해 트럼프와 통화를 했다. 그리고 일요일인 14일 저녁 골든아워에 백악관 집무실에서 다시 대국민 연설을 했다. 이틀 동안 공식 성명을 내고 모두 세 차례의 대국민 연설을 했다.
일요일 저녁 연설에서 바이든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열정의 고조에 따른 정치 폭력의 위험성을 거론한 뒤 "마음을 가라앉힐 때다. 우리는 결코 폭력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다른 정치적 비전들을 내놓고 있지만, 서로의 차이를 평화롭게 해결할 것을 미 국민에게 호소했다. 이번 사건이 극단화하는 미국 정치의 맥락에서 벌어졌음을 정확히 인식하고 미 국민에게 평화적 해결과 통합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이재명 암살 미수 사건에서 정치적 맥락에서 배제하려는 윤 대통령의 인식과는 차이가 났다.
한국 수사당국, 정치적 파장 최소화 주력
현자 물청소에 범인 신상‧당적 공개 거부
두 사건을 정치 상황과 연관 짓느냐가 한국과 미국 수사당국의 접근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 수사 당국은 사건 당일부터 정치적 파장 최소화에 나선 인상이 짙었다. 당일 소방 관계자가 현장에서 작성한 '1보'에는 "목 부위 1.5cm 열상(찢긴 상처)"으로 적혀 있었지만 추후 총리실 산하 대테러종합상황실이 불특정 다수에게 발송한 문자메시지에는 상처 부위가 '1cm'로, 출혈이 적고, 흉기도 '과도'로 표현돼 있었다. 그러나 추후 서울대병원에선 경정맥 60%가 손상되고 열상이 아닌 '자상'(칼로 찔린 상처)으로 확인됐다.
이뿐이 아니었다. 경찰은 암살 미수 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사건 발생 40분 만에 물청소에 나섬으로써 증거 인멸 의혹을 받았다. 또한 사회장 파장을 우려했다는 이유로 암살범 김진성(66)씨의 이름과 사진, 과거 당적 그리고 '거사'에 임하는 심경을 밝힌 이른바 '변명문'(남기는 말)의 공개를 거부했다.
미 FBI, 범인 이름‧사진‧당적 곧바로 공개
한국 언론은 "습격" vs 미국 언론 "암살"
이 변명문은 석 달가량 지난 3월 하순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의 '주기자 라이브'를 통해서야 그 내용이 알려졌다. 변명문을 통해 광적인 극우 보수 성향의 김씨가 철저히 정치적 동기에서 오랜 세월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치밀하게 암살을 준비해온 사실이 확인됐다. 배후 세력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그러나 수사 당국은 초기부터 증오범죄, 극단주의자의 단독 범행으로 몰아가려는 듯한 인상을 줬다. 김씨는 지난 5일 1심에서 살해 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주류 언론 다수가 김씨를 "습격범" "피습범" 등으로 표현하면서 제1야당 대표를 암살하려는 '정치 테러'로 비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미국 수사당국은 사건 이튿날인 14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현장에서 사살된 토머스 매슈 크룩스(20.사망)를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의 용의자로 특정 짓고 그의 이름과 사진, 당적 등을 공개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크룩스는 펜실베이니아주 베설 파크 고교를 졸업했다. 고교 급우들은 그가 학창 시절 특별한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지는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주 유권자 명부에 공화당원으로 등록돼 있었으며,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 당일인 2021년 1월 20일 진보 계열 유권자 단체에 15달러를 기부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FBI는 밝혔다.
FBI는 현재까진 크룩스의 암살 시도 동기를 확정 짓지 못하고 단독 범행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일각에선 경찰에 저격범인 크룩스에 대한 사전 신고가 들어왔지만 이를 묵살한 정황과 관련해 방조 의혹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김진성씨의 이름, 사진, 당적, 변명문 공개를 거부하는 우리 수사당국의 대응과는 전혀 다르다. 또한 AP 통신 등 미국 언론들은 '습격'이나 '피습' 대신에 '명백한 암살 시도'(apparent assassination attempt)란 표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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