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등을 믿는 분에게는 예루살렘이란 말이 매우 성스럽고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저는 예루살렘 하면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올랜도 블룸 주연의 <킹덤 오브 헤븐>입니다. 이 영화는 십자군 전쟁에 관한 것으로 수많은 기독교인이 성지를 빼앗겠다고 예루살렘까지 쳐들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상상 속 천국을 위해 현실의 세계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속 이야기와 같은 일이 오늘날 예루살렘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은 자신들의 성지라며 그곳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추방·살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스라엘 국가의 사상적 기반은 시오니즘(시온주의)으로 시온(zion)은 예루살렘 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오니스트(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의 역사적·종교적 뿌리가 시온과 예루살렘, 더 크게는 팔레스타인과 대(大)이스라엘에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여기서 대(大)이스라엘은 현재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넘어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등을 포함합니다.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하고, 많은 휴전 요구가 있음에도 이스라엘이 전쟁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데올로기와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헤르츨과 시오니즘
유대인들은 그들 역사의 온 밤 내내 끊임없이 이 당당한 꿈을 꾸어왔다. “다음해에는 예루살렘에서!”는 우리의 오랜 구호이다.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꿈으로부터 대낮처럼 밝은 사상이 생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헤르츨, <유대 국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에 관해 관심을 가진 분들은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헤르츨과 그의 책 <유대 국가-유대인 문제의 현대적 해결 시도>는 유대인의 종교적·민족적 정서를 세속적 이데올로기와 정치 운동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 홈페이지에는 헤르츨을 현대 정치 시오니즘의 아버지라고 지칭하고 있으며, 이는 그가 팔레스타인 지배의 사상적 뿌리임을 말합니다.
영국의 팔레스타인 지배가 끝나는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이 일명 ‘독립선언문’이란 것을 발표합니다. 이스라엘 초대 총리였던 벤구리온(Ben-Gurion)이 선언문을 읽을 당시의 사진을 보면 뒤편 벽에 초상화가 하나 걸려 있는데 그가 바로 헤르츨입니다.
헤르츨은 1860년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1896년 출간한 <유대 국가>는 반유대주의의 해법으로 유대 국가의 건설을 주장한 점과, 이것이 대중적인 운동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내가 이 글에서 상세히 논의하는 사상은 매우 오래된 것이다. 그것은 유대 국가의 수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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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그렇다, 우리는 국가, 그것도 모범적인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우리에게는 우리의 정당한 민족적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지구 표면의 한 부분에 대한 주권이 주어져야 하며, 그 밖의 다른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마련하게 될 것이다. - 헤르츨, 같은 책
유대인이 유대인의 나라를 갖는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는 분도 계실 수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종교적 경향이 강한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이 결정하실 일이므로 현실에서 반드시 유대인의 나라를 만들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또한 많은 유대인은 반유대주의에 대응해 청원이나 순응 등의 방법을 통해 억압을 완화하거나 회피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유대인의 역사에서 예방적인 선제공격과 무장저항 및 복수는 거의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중세가 되자 유대인들은 더 이상 투쟁을 꿈꾸지 않았다…당시 유대인들은 오히려 현실적 권력기관의 보호를 열망했다. 그 권위에 대한 유대인들의 의존은 법적이고 신체적이며 심리적인 것이었다. - 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갖는다는 생각 자체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과거 오스만 제국만 해도 터키인과 아랍인 등 여러 민족이 섞여 있었고, 기독교와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이 하나의 국가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나 중국만 해도 그 종류를 다 알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민족들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보편적으로 지배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는 겔너의 말에 동의해야 한다... 민족의식은 서유럽에서마저 19세기 후반까지 대다수의 민족에게 형성되지 않았다. - 홉스봄,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헤르츨도 19세기 후반 유럽의 민족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습니다. 특히 언론사 특파원으로 파리에 있던 1894년에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은 반유대주의의 해법으로 국가 건설을 떠올리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아니면 아프리카
19세 말부터 시오니스트들은 유럽이 아닌 어딘가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그 장소가 반드시 예루살렘이나 팔레스타인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열강들이 유대 민족에게 중립적인 땅에 대한 주권을 부여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인다면, 유대인 협회는 차지해야 할 땅에 관해 협상하게 될 것이다. 두 지역 즉 팔레스타인과 아르헨티나가 고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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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는 거대한 면적과 소수의 주민과 온화한 기후를 지닌 지구상의 자연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나라들 중 하나이다. 아르헨티나 공화국은 우리에게 영토의 한 부분을 양도하는 데서 아주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 헤르츨, 같은 책
헤르츨에게는 아르헨티나도 유대 국가 건설의 후보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903년에는 영국이 헤르츨에게 자신이 지배하고 있던 동부 아프리카(East Africa)에 유대인 자치 지역을 건설할 것을 제안합니다. 일명 우간다 계획(Uganda Project)으로, 영국의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유입되는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1903년 8월에 있었던 6차 시오니스트 회의(Zionist Congress)에서는 유대 국가는 반드시 팔레스타인에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과 유대 국가의 건설을 위해서는 다른 지역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 사이에 논쟁이 벌어집니다. 결국에는 동부 아프리카 지역이 유대인이 정착하기에 적당한 곳인지 검토하기 위한 위원회를 파견하기로 합니다. 1905년 7차 시오니스트 회의에서 동부 아프리카가 유대 국가 건설지로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뒤에야 팔레스타인에 집중하게 됩니다.
만약 시오니스트들이 이스라엘을 아르헨티나나 아프리카에 건설했다면 그들의 종교나 민족에 대한 서술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이나 솔로몬 왕국이 아르헨티나에 있었다고 하거나, 예루살렘이 사실은 아프리카에 있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나치를 닮은 이스라엘
가난한 소시민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을 떠나보내고 싶어 하는 기독교인들도 전적으로 작은 부분들로 쪼개진 이러한 자금 조달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 헤르츨, 같은 책
반유대주의자들은 오랫동안 유럽에서 살아온 유대인들을 외부로 쫓아내고 싶어 했습니다. 시오니스트들도 유대인들을 유럽 밖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을 것 같은 두 개의 사상이 공통점이 있는 겁니다.
반유대주의와 시오니즘의 또 다른 공통점은 인간을 역사적·선천적 요인을 들어 구별하고 차별한다는 것입니다. 나치는 독일은 독일 민족의 것이지 유대 민족의 것은 아니라고 했고 강제적으로 유대 민족을 독일 땅에서 제거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의 땅이라며 팔레스타인인들을 제거하려 합니다. 시오니스트들의 이러한 행태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곳이 오늘날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입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시오니즘의 인종차별적인 정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70년이 되는 지난 2018년 7월 19일 이스라엘 의회 크네세트(Knesset)는 ‘기본법 : 이스라엘 - 유대 민족 국가(이하 민족국가법)’라는 법을 통과시킵니다. 이 법이 통과되자 당시 이스라엘 총리였던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국가와 시오니즘 역사의 결정적 순간’이라며 환영했습니다. 이에 반해 팔레스타인계 의원들은 해당 법이 팔레스타인인들을 2등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비난했습니다.
민족국가법의 맨 첫 부분 ‘기본 원칙들’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법의 내용은 이스라엘 의회 홈페이지 참고)
이스라엘 땅은 역사적으로 유대인의 조국이다.
얼핏 보면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 내막을 보면 절대 당연하지 않습니다.
첫째 종교의 측면. 시오니스트들은 성경을 근거로 팔레스타인이 유대인의 땅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이라는 기록 또는 창작물의 진위 여부를 떠나, 고대 이스라엘과 현대의 이스라엘은 이름만 같을 뿐 다른 별개의 국가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조선과 김정은의 조선(북한)이 서로 다른 국가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역사의 측면. 팔레스타인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인입니다. 그 가운데는 무슬림·기독교인·유대교인들이 있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유대인들은 외부에서 온 이주민이고, 이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강탈한 것입니다.
셋째 현실의 측면. 이스라엘인은 곧 유대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스라엘 시민권자의 21%, 약 200만 명가량이 팔레스타인인(아랍인)입니다. 그들은 1947~1949년 이스라엘 건국과 나크바(대재앙) 과정에서 죽거나 쫓겨나지 않고 남아있던 사람들과 그의 후손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유대인의 국가’로 규정하는 순간, 팔레스타인인들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유대인과 동등한 권리를 갖기 어려워집니다. 독일을 독일 민족의 국가로 규정하는 순간, 유대인은 그들과 동등해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935년 9월 15일 독일 나치는 ‘국가시민법’이란 것을 통과시킵니다. 국가시민법 2조 1항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해당 법의 내용은 ‘유대인 가상 도서관Jewish Virtual Library’ 홈페이지 참고)
제국시민은 독일 민족 또는 관련 혈통을 가진 국민이다.
이 법에 대한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나치당은 집권하면 인종적으로 순수혈통 독일인만이 독일 시민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공약했었다. 국가시민법이 이것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 법으로 시민을 "독일 민족 또는 관련 혈통"으로 정의했다. 즉 별개의 인종으로 정의된 유대인은 독일의 완전한 시민이 될 수 없었다. 또한 참정권도 없었다. -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 홈페이지
예루살렘에 평화를
‘민족국가법’ 가운데에는 국가의 수도 관련 조항도 있습니다.
완전하고 통합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1949년 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서예루살렘을 차지하고, 1967년 3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동예루살렘까지 차지합니다. 이후 UN을 비롯해 여러 국가는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67년 점령지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제안되었던 두 국가 방안에 따르더라도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국가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서예루살렘은 물론이고 동예루살렘까지 이스라엘의 수도로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가가 이스라엘의 수도를 텔아비브라고 부르는 데 반해 이스라엘은 자신의 수도를 예루살렘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주민이 유대인인 서예루살렘과 달리 다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는 동예루살렘은 거리나 상가의 모습 등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동예루살렘에서는 수시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고 집을 때려 부수고 강제로 쫓아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유대인을 이주·정착시킴으로써 예루살렘의 유대화(Judaization)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평화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시오니즘 정책을 중단시키고, 무슬림·유대교인·기독교인 등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힘겹게 걸음을 옮겼던 곳 예루살렘,
그곳의 평화를 빕니다.
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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