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중독자들에 아무 인권도 없는 한국 사회
경찰, 불법 수사 자행하고 입건 사실까지 유출
인권위, 시민단체 도움 안 돼 '회복연대' 구성
마약 하다 죽는 게 아니라 비난받다 죽는 현실
더 이상 '사회적 타살' 안 돼…26일 국회 포럼
중독 당사자들 스스로 치유하며 정책 제안도
나는 한겨레신문의 기자였다. 그러나 2018년 6월 해고됐다.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됐기 때문이다. 아직 경찰 수사도 끝나지 않았고, 재판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징계 결정을 재판 이후로 미루어달라고 호소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경찰에 입건됐다는 이유만으로 즉시 해고했다. 내 삶은 시궁창이 되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기자로서의 삶은 회복되지 않을 듯하다.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는.
그때 깨달았다. 우리 사회 약물 중독자들에게는 아무런 인권도 없고 이들을 돕는 시민단체조차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했다. 어차피 무죄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깨끗이 죗값을 치른 뒤 내가 겪은 부당한 일들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저항을 시작했다.
내가 경찰에 입건됐다고 해서 내 입건 사실이 정보지 지라시로 퍼뜨려질 이유는 없었다. 내 입건 사실을 유출한 경찰을 잡아 달라고 국가인권위에 호소했다. 내게 '마약을 주겠다'며 SNS 메시지로 꾀어낸 불법 수사를 자행한 경찰을 잡아달라고 역시 호소했다. 그러나 호소에 그쳤다. 인권위는 아무런 수사권이 없다. 2년간 사건을 들고 있다가 인권위는 사건을 종결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여러 시민단체를 찾아가서 도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들은 가슴 아파하되,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중독자들만의 인권단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그때였다. 마침 내 옆에 약물 중독자들의 문제를 연구해온 윤현준 교수가 있었고, 나는 그와 함께 '약물중독회복연대'를 구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회복연대는 국제마약퇴치의날을 기념해 1년에 한 번씩 거리에서 행동하고, 법무부와 국회 등에서 '중독자들의 인권'을 외쳤다. 물론,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바뀐 게 없다. 고 이선균 배우가 겪은 불행한 일들은 그나마 우리 사회에 '경찰이 이런 식으로 수사를 해도 되는 거야?'라는 의문을 품게 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중독자들은 마약을 하다 죽는 게 아니라, 마약을 했다고 비난받다가 죽는다. 정상적인 삶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죽을 때까지 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죽지 못해 살아왔다. 사회적 삶이 회복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이 처지가 바뀌지 않는다면 살아갈 희망이 없다. 비록 몸이 감옥에 갇히진 않았지만, 차별이 구조화된 사회라는 감옥 속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그저 숨만 붙어 있는 채로 간신히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 중독자들 태반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심장을 스스로 멈춰 세운 이선균 배우였지만 사실 그가 겪은 일은 '사회적 타살'에 가깝다. 언제까지 이 같은 불행한 일들을 우리 사회가 반복해야 하는가.
나는 중독 당사자들이 중심이 되어 삶의 회복을 위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중독 당사자 운동은 스스로에 대한 치유 과정이 될 것이라 믿는다. "중독자들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우리 사회에 외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약물 투약 같은 범죄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근해 왔다. 이 채근은 내가 약을 다시 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 믿는다. '중독 당사자 운동'이 그래서 필요하다. 이 운동은 우리 사회를 위한 호소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자아에게 '어떻게든 살아내자'고 설득하는 응원의 호루라기 같은 것이다.
오는 26일 국제마약퇴치의날에는 국회에서 약물 중독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중독 회복 정책 마련을 위한 포럼을 연다. 중독 당사자들은 지금까지 늘 정책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정책을 주장하는 당사자로서 행동하려 한다. 많은 중독 당사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중독 문제를 마주해온 시민사회와 언론이 이 포럼에 함께 해주었으면 한다.
중독 당사자들의 시민운동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때 기꺼이 응원과 함께 국회의 어깨를 내어준 박주민‧김윤 의원에게 감사하다. 마약은 퇴치하고, 사람은 회복해야 한다.
※ 이 글은 6월 26일 국회에서 열리는 '탈중독 친회복 포럼'을 알리기 위해 쓴 글입니다. 중독으로 고통받는 분들, 그리고 중독 문제를 고민해온 연구가, 시민사회가 함께해 주기 바랍니다. 시민언론 뉴탐사에서 포럼을 생중계해주기로 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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