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여자 보호가 '상남자 도리'? 마초의 주장

모든 국민 법앞에 평등한데 권력 사유화하나

염치 아는 것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라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송요훈 편집위원
송요훈 편집위원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 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수 있겠습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머리는 비우고 근육만 키운 ‘마초’ 기질의 수컷이 헛소리를 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국민의힘 소속인 홍준표 대구시장이 한 말이었습니다.

어제 단행된 검찰 고위직 인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방탄용’ 인사이고, 순순히 말을 듣지 않는 검사들을 삭탈관직하다시피 하여 멀리 쫓아낸 ‘보복성 유배’ 인사였습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홍준표 대구시장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방탄이 아니라 최소한의 ‘상남자 도리’랍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난을 감수하고 사내답게 처신한 거랍니다.

내 여자는 무조건 지켜줘야 하는 것이 ‘상남자의 도리’이고, 그것이 도덕이나 법 위의 개념이라면, 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뇌물을 받거나 투기를 하거나 남을 괴롭히거나 남의 것을 뺏는 나쁜 짓은 모두 아내에게 시키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집안에 꽁꽁 숨겨두고 검찰에서 불러도 ‘상남자의 도리’를 내세워 수사에 협조할 수 없다고 막무가내로 강짜를 부리며 사내답게 처신하면 검찰이 ‘참 잘했어요’ 하며 면죄부를 주겠군요. 참 아름다운 마초들의 세상입니다. 대구에선 그러나요?

 

홍준표 대구시장 페이스북 갈무리.
홍준표 대구시장 페이스북 갈무리.

그런데 같은 대구에 사는 유승민 전 의원은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우리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11조 1항의 ‘12자 약속’이 지켜지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정의이고 공정이랍니다. 멋진 말입니다.

대통령도, 대통령의 부인도 '법 앞에 평등한 모든 국민' 중 한 사람일 뿐이고, 대통령이라 해서, 대통령의 부인이라 해서 법 앞의 평등 원칙이 비켜 간다면, 그것은 국가권력의 사유화랍니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지난 2년간 그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답니다. 빙고!

제 귀에는 유승민의 말이 지극히 정상으로 들립니다. 대구시장은 홍준표가 아니라 유승민이어야 지극히 정상적인 세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디올백, 주가조작, 채수근 해병 사건 수사 외압의 핵심은 ‘권력형 의혹’이라는 유승민 전 의원의 지적에 격렬하게 동의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수사에 대한 거부감에 가장 믿을 수 있는 동지마저 내쳐버렸다.”

검사 출신이고 역시 국민의힘 소속인 김웅 의원이 “(좌천성 인사를 당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이나 권순정 법무부 검찰국장은 대통령과 특수부 검사 시절 삶과 죽음을 같이 했던 동지와 같은 사람”이라며 그런 말을 했답니다.

검찰의 수사가 왜 삶과 죽음을 오가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고, 검찰의 수사가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도 아닌데 같은 검사를 ‘동지’라고 부르는 것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쨌거나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의 동지를 내친 건 분명합니다.

 

유승민 전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유승민 전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명박 국정원의 대선개입 댓글공작 사건을 수사할 때, 사건을 축소하라는 외압을 거부하며 했던 말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검찰의 수사가 정권의 정통성을 흔드는 선거법 위반으로까지 확대되지 않도록 수사팀에 압력을 행사했었습니다.

윤석열 검사의 그 말에 많은 국민이 환호했습니다. 저도 그중의 하나였습니다. 검사 윤석열은 진정한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권력과 대통령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노인들도 많았으니까요. 나는 그게 싫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검사 윤석열은 민주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검찰 지상주의, 즉 검찰이 가장 상층부에 존재한다고 믿는 검찰주의자였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 말은 검찰에만 충성한다는 조직 이기주의였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검사 윤석열은 권력의 눈 밖에 나 좌천성 유배를 당했습니다. 이번 ‘김건희 방탄용’ 검찰 인사에서 똑같은 좌천성 유배의 수모를 당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이나 권순정 법무부 검찰국장 역시 그때의 검사 윤석열과 같은 ‘검찰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아닌 검찰에 충성하는 검찰주의자, 검사에서 대통령이 된 윤석열보다 검찰 조직에 더 충성하는 검찰주의자이고 디올백과 주가조작 등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비리에 대해 소환이라도 하는 최소한의 외양을 갖추지 않으면 검찰 조직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니 조직을 위해 소환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고집을 꺾지 않다가 좌천성 유배를 당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습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된 검사 윤석열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과거의 검사 윤석열을 징벌로 다스린 셈이지요. 제 얼굴에 침을 뱉은 것이지요.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것이지요.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듣자 하니 ‘김건희 방탄용’ 인사로 검찰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인사로 검찰을 떠난 최경규 부산고검장은 ‘퇴임의 변’으로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옛말에 ‘청렴하지 않으면 못 받는 것이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 할 짓이 없다’고 했다. 요즘 부끄러움을 갖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최재영 목사가 5월13일 오전 소환조사를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영 목사가 5월13일 오전 소환조사를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교롭게도 최 고검장이 검찰을 떠난 날, 김건희 여사에게 디올백을 선물한 최재영 목사는 검찰에 출두하였는데 검찰청사 앞에서 검찰을 향해 이렇게 호통을 쳤습니다.

“아무것도 받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사건의 본질은 디올백 수수가 아니라 대통령 권한을 이용하고 사유화한 것이다.”

염치(廉恥)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입니다. 요즘 염치를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최경규 고검장은 검사들 사이에서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물망에 오르던 검사라고 합니다. 그 역시 검찰주의자이긴 하겠지만, ‘염치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는 말이 검찰 내부에서 잔잔한 파문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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