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황당 답변에도 '꼬리 질문' 없이 '답변 끝'
예리하고 집요한 질문 없고 밋밋한 질문만
대통령 거짓말 ·언론자유 추락 등 중요 질문 안해
이미 나온 대통령 입장 반복 질문하고 들은 꼴
국민들은 70분 간 대통령 부실 답변 듣기만
"이런 기자회견 왜 하나" 국민들 불만 폭발
9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2주년 기자회견에 대한 언론과 국민의 반응은 대체로 ‘낙제 수준’이다. 무려 1년 9개월 만이고, 취임 2년 만에 겨우 두 번째인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 주류 언론들은 “절망스럽다”(경향), “이런 기자회견 왜 열었나”(한겨레), “총선 민심에 부응 못한 기자회견”(한국)이라며 최악의 평가를 내렸다. 이른바 보수매체인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마저 “동문서답” “진지한 열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주요 현안에 대한 종전 입장 되풀이는 아쉽다”고 깎아내렸다. 극렬 친윤 매체인 조선일보, 서울신문 정도만 “낮은 자세로 소통했다”(서울) “늦었지만 다행”(조선)이라며 이번 기자회견을 두둔하고 나섰다.
기자회견을 본 국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묻지마' 극렬 지지자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상식적인 국민들은 70여분 간 진행된 기자회견을 보면서 분통을 터뜨렸을 것이다. 기자회견이 생중계되는 동안 유튜브에는 “한심하다” “복장 터진다” “이런 기자회견은 무엇하러 하나”는 실시간 댓글이 쏟아졌다.
국민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우선 윤 대통령의 답변 내용 때문이다. 주류 언론들이 지적했듯이, 윤 대통령의 답변은 대부분이 부실하고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과거에 이미 했던 답변을 재탕하거나 질문의 핵심과 본질과는 다른 동문서답식 답변을 내놨다. 불편한 질문에 편안히 답변을 피해갔다.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 직전 별도의 장소에서 혼자 읽어간 담화문을 듣고 기대를 접었을지도 모른다.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대통령이 담화문에서 또다시 “나는 잘했는데 소통이 부족해 국민들이 알아주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식의 말을 전 국민 앞에서 했던 것이다. 성적표를 받고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학생에게 분발을 기대하긴 어렵다. 국민들은 총선 전과 후가 일관된 그의 뇌구조가 궁금할 뿐이다.
윤 대통령의 이런 부실·황당 답변보다 더 국민들의 복장을 터트린 것은 따로 있다. '이런 식'의 기자회견이다. 정치·경제·사회·외교안보 등 여러 분야의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기자들의 질문은 날카롭지 못했고 집요함도 없었다. 1년 9개월 만에 국민 앞에 선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여러 질문들을 기자들은 대신 물어주지 못했다. 대통령이 부실 답변을 내놓아도 그걸로 끝일 뿐, 왜 엉터리 부실 답변을 하는가 혹은 답변을 다시 정확히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결국 국민들은 70여 분 동안 대통령의 부실·황당 답변을 그저 멍하니 듣고 있어야 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답변을 하는 대통령보다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기자들의 질문과 태도때문에 더 분통이 터졌다.
대통령이 부실·황당 답변을 하면 기자는 추가 질문으로 정확한 답변을 받아냈어야 했다. 이른바 ‘꼬리 질문’이다. 예컨대, 채 상병 사고 수사 관련 대통령의 개입,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사퇴 개입 여부를 묻는 기자 질문에 윤 대통령은 엉뚱한 말만 늘어놓고 정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김건희 씨 주가조작,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서는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드러났는데도 예전에 했던 엉터리 답변을 되풀이했다. “김건희 씨와 장모 최은순 씨에 대해 이전 정부에서 탈탈 털었는데 기소 못한 것”이라는 황당한 답변과 “주식투자로 손해를 봤다”는 거짓말에 대해서 기자들이 꼬리를 물고 질문을 던져 답을 받아냈어야 했다. 윤 대통령이 말한 ‘이전 정부’에서 그는 검찰총장 아니었는가? 김건희 씨 모녀는 주식투자로 23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차익을 거뒀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는가? 이런 추가 질문과 답변이 나오지 않으니 기자회견은 맹탕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자회견 동안 추가 질문 혹은 꼬리 질문을 던진 기자가 한 명 있었다. 외신 기자다. 프랑스 AFP기자가 질문 기회를 받고 “대통령은 한국이 북한무기가 러시아를 통해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살에 사용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현재 유엔 등에서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무기 제공에 대한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윤 대통령은 이 질문에 “유엔과 국제사회를 통해 필요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자 영국 BBC 기자가 “추가로 질문하겠다”며 다시 물었다. 추가 질문, 꼬리 질문은 이게 전부였다.
BBC 기자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도 자신의 SNS에 “구체적인 답변을 얻지 못했다”고 썼다. 탐사보도 매체인 뉴스타파 김지윤 기자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대통령 답변이 부실하면 다른 기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때에도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에게도 이렇게 꼬리 질문, 추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부실하고 황당한 답변만 듣고도 더 문제 삼지 않는다면 굳이 생방송 기자회견을 열 필요가 없다. 서면(書面)으로 기자회견을 하면 된다. 기자들이 질문을 적어 대통령에게 전달하면 대통령(실)이 답변을 정리해 회신하는 방식이다. 추가 질문 없이 한 번의 질문과 한 번의 답변으로 끝난다. 서면 인터뷰나 기자회견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도 사용되지만, 주로 답변자의 입장을 최대한 받아주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는 방식이다. 이번 기자회견은 ‘2차원의 서면 기자회견’을 3차원 공간에서 생방송으로 꾸민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기자들의 질문이 좀더 구체적이고 날카롭지 못했고, 꼭 해야 할 질문이 나오지 않은 것도 국민들의 화를 돋웠다. 첫 번째 질문을 던진 기자는 “첫 질문이라 편안한 질문을 드리고 싶지만 정국상 총선 패배에 대해 여쭙지 않을 수 없다”라면서 “총선 패배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국정운영 방식 어떤 부분에서 변화를 추구하려고 하시는지” 물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이미 총선 직후 패배 원인에 대해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총선 이후 그의 언행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회담 결과에서 그가 국정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도 드러났다. 기자회견 바로 직전에도 ‘열심히 했는데 소통이 부족한 게 문제였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국정 기조를 바꾸라는 국민의 명령을 왜 자꾸 외면하는지 먼저 물었어야 했다.
대통령의 계속된 특검 거부, 채 상병 수사 개입, 이종섭 장관 호주대사 임명, 김건희 씨 모녀의 주가조작 등과 관련된 질문도 밋밋하고 뭉뚝했다. 이런 이슈들에 대해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입장 발표는 이미 나와있다. 여러 의혹에 대해서는 총선 이후 새로 드러난 구체적 증거들도 많다. 기자들은 그간 나온 대통령(실)의 입장을 반복해서 들어보겠다는 게 목적이었을까? 똑같은 질문을 던졌고, 의혹에 대한 새로운 증거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역시나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은 녹음기 ‘리플레이’였을 뿐이다.
꼭 물어야할 질문들도 나오지 않았다. 김건희 씨의 명품백 수수를 알고 있었는가? 김건희 씨 일가가 주식투자로 23억원 이익을 거둔 것을 알고 있었는가? 알고 있었다면 왜 “손해를 봤다”고 거짓말 했는가? 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는 이해충돌방지에 어긋나지 않는가? 채 상병 사건 관련해서 대통령이 ‘격노’하고 수사에 개입한 게 사실인가? 방심위원장이 청부민원으로 정부 비판적 방송보도에 법정제재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언론자유도가 62위로 추락한 것에 대한 입장은 또 무엇인가? 지금도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으로 말했고 욕설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여전히 대파 한 단에 875원은 합리적 가격이라고 생각하는가? 친미·친일 편향 외교로 중·러와 관계가 멀어지고 경제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는 비판은 어쩔 것인가? 세수 펑크와 부자감세, 원화가치 급락, 물가급등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구체적인 대책은 무엇인가? 지역소멸, 인구소멸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런 대책이 없었는데 어쩔 것인가? 등등.
이번 기자회견에서 질문할 언론사 선정, 질문 순서, 질문 내용과 방식 등이 대통령실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 것인지, 기자단과 협의 끝에 결정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기자회견이 대통령실 가이드대로 진행되어서도 안 될 일이지만, 협의 끝에 이런 식의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면 더 문제다. 이번 기자회견은 그동안 대통령 전용기 셀카놀이로 비난받아온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오랜만에 존재감을 보여줄 기회였지만 이번에도 기자들은 ‘국민의 복장을 터트린 존재’로 인식되게 생겼다.
취임 이후 30% 전후에 머물던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총선 직후 20%대까지 떨어졌다. 최고권력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대통령이 저렇게 되도록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다. 그나마 이번에는 현안 이슈에 대해 질문이라도 했으니 수고했다고 해야 할까? 문재인 대통령에게 ‘독재자’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거냐’라고 묻던 길들여지지 않은 기자들이 그립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던지는 집요한 외신기자들이 부럽다. 기자님들 수고 많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국민들 속을 뒤집어 놓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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