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변하라는 언론들, 정작 자신들은?
윤석열의 오만과 불통 있게 한 건 언론 자신
세월호 보도처럼 반성 부재 행태 지금도 계속
'보수'언론들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거세다. 16일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 발언에서 ‘사과의 입장’을 발표했지만 쇄신책 제시와 총리 비서실장 인선 등을 놓고 연일 맹타를 가하고 있다.
이들 언론의 주장과 요구는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한다. 다만 이들은 윤 대통령이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이제야 비로소 발견하게 된 것처럼 얘기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윤석열 정권을 있게 한 것, 윤석열 정권의 파행과 파탄, 총선 참패로 이끈 것이 언론 자신들이었다는 반성은 없다. 15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불편한 인물을 발탁하는 쇄신이어야 대통령이 바뀌었다 느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바뀌는 것과 함께 바뀌어야 할 이들인 언론 자신의 변화의 움직임은 없다.
'선거 지고도 변한 게 없다'는 언론 자신에게 할 말
조선일보는 위의 사설에서 총리와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 상당수가 윤 정부에 참여했거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로 “과연 윤 대통령이 듣기 싫어할 소리를 하며 ‘노(no)’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면서 “선거에 지고도 변한 게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역시 사설에서 “대통령이 변했다는 것을 총리 비서실장 인사로 보여주길”이라고 쓰고 있다. 중앙일보의 주필은 15일자 <분노와 심판은 또 다른 기대다>라는 칼럼에서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2년여 용산의 불통 독선적 태도에 누적돼 온 실망 좌절 무력감이 분출됐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같은 오만과 불통을 윤석열 대통령과 윤석열 정권에게 심어주고 부추긴 것은 과연 누구인가.
이번 선거 평가에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윤석열 대통령이지만 언론은 과연 그와 크게 다를 게 있는가. 보수 언론들은 이번 선거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제대로 현실을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민심의 표출'이라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보인다. 중앙일보의 위의 칼럼은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심판인 이번 선거를 '정치권에 대한 심판'으로 돌린다. 이 칼럼은 어느 쪽에도 투표 안 한 유권자 3분의 1(1400만 명)의 무관심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라고 한다. 대통령과 여야 모두 왜 내게 분노했을까를 곱씹으며 영혼이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대한 분노를 여와 야 모두에 대한 분노로 돌린다. 총 득표 차이는 5.4% 투표율 67%이니 어느 쪽도 유권자 과반엔 턱없는 지지라고 이번 선거 결과를 깎아내리려 한다. "용산과 여야 모두 협치로 응답하라”고 얘기하면서 대통령과 함께 여당은 물론 야당이 그동안 협치에 응하지 않았다고 지적해 야당의 불통과 독선을 함께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불과 0.73%포인트의 차이로 대통령이 된 이가 독선과 폭주를 보일 때 이 신문이 야당과의 소통과 협치를 얼마나 주문했는지 반문하게 하는 지적이다.
조선일보 역시 15일자 사설에서 <반(反) 윤석열 정서 덕 본 야당, 압승을 ‘황당 정책’ 면허로 착각 말아야>라고 해 이번 야당 압승을 '반 윤 정서'에 기댄 것으로 평가절하한다.
윤석열에 대한 칭송과 찬사들 잊었나
윤석열의 오만과 독선을 지적하는 보수 언론들은 그의 독선과 불통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자신들의 과거 지면에서부터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중앙일보의 전 주필이 지난해 9월 4일자에 쓴 칼럼은 윤석열에 대한 칭송과 찬사로 읽는 이들의 얼굴을 뜨겁게 할 정도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신(新)삼각공조를 이끌어냈다면서 ‘최악의 한·일 관계를 과감하게 복원’시켰으며 이것이 ‘윤석열식 외교의 성과’라고 칭송한다. 그러나 이같은 성과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닥치고 반대’ 모드라고 꾸짖는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배출에 반대하는 것을 ‘핵 오염수’라는 잘못된 용어를 사용했다며 비판한다.
이 글의 필자는 이보다 앞선 2022년 8월 침수로 일가족 세 사람이 변을 당한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이 창밖에 앉아서 방안을 구경하듯 내려다보는 대통령의 모습을 “경호원 뿌리치고 금지선 넘어간 대통령이 국민 아픔 품으려는 대통령다움을 보여줬다”고 찬사를 보냈던 이다.
“대통령이 저 먹먹한 슬픔의 공간으로 몸을 밀어넣은 것은 국민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라는 무한책임과 연대의 증거다. 스스로 대통령다움을 입증한 것이다. 이로써 가진 자의 편에 선 오만한 선민(選民)이라는 부당한 편견에서 벗어났다.”
이 글은 대통령에 대해 ‘오직 일로만 승부하려는 담백한 심정’이고 ‘사익(私益)을 멀리하며’ ‘불편한 직언도 주저없이 수용하는’ 이로 그리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절제 있는 행보’를 보인다고”도 했다.
이번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 조선일보의 강천석 고문은 13일 호남 유권자 투표 성향 ‘정말’ 전략적인가, 라는 글에서 승패를 영남 대 호남의 인구 수 대결로 보는 듯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칼럼의 필자는 선거 한 달 전 <‘저 당(黨) 찍었다간 나라 망하겠다’에 다시 갇힌 한국>이라는 칼럼에서 민주당에 표를 주면 나라가 나라가 아주 망하겠다는 걱정이 공포로 변해간다, 고 거의 노골적인 반 민주당 주장을 폈다.
보수 언론들은 벌써부터 야당에 대해 경고한다. “거대 의석을 쥐게 된 야당이 자기 입맛대로 정책을 입안해 밀어붙일 우려 때문에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벌써부터 불안을 심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이나 윤 대통령에 대한 경고와 변화 주문 이전에 보수 언론들은 이번 총선 보도에 대한 반성부터 필요하다. 중앙일보는 13일자 총선 좌담회 보도를 전하면서 총선이 ‘전국 선거’가 돼 버려 지역구 의원 평가할 기회가 사라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신문 자신은 과연 지역구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했는가. 채 상병 수사 외압 피의자들, 이명박 정권 때 여론조작을 위한 댓글공작으로 유죄를 받았던 범죄자들 등에 대한 정보 제공을 얼마나 제대로 했는지는 의문이다.
'기레기' 비하는 전원 구조 오보 탓만은 아냐
16일은 세월호 참사 10주기이자 '기레기' 10주년이기도 하다. 10년 전 이날 오전 세월호 참사 당시 방송과 신문들은 “전원이 구조됐다”는 오보를 내보냈다. 그러나 ‘기레기’라는 조롱과 비하의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비단 이 오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정부에 대한 탄핵의 시초가 된 것은 구조능력의 결여보다는 그 참사에 대한 반성의 결여였던 것처럼 언론에 대해 '기레기'라는 말이 굳어진 것은 언론의 반성의 결여에 있었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신문들은 일제히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희생자를 수습한 잠수사 인터뷰 등을 내보내고 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배·보상 재심의 검토를 거부했다는 소식과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는 배경도 다뤘다. 그러나 ‘기레기 10년’에 대한 자기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10년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 왜곡과 모독은 2014년처럼 계속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16일 세월호 특집 기사로 <세월호 겪고도 해양사고 34%나 증가>라는 기사를 싣고 있다. 이 기사는 초등학교에 생존 수영 교육을 의무화했는데 교실에서 구명조끼 착용법을 배우는 데 그치는 경우도 많다고 개탄한다. 마치 생존수영을 배우지 못해 일어난 사고인 듯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족들의 한 서린 비통함이 왜 계속되고 있는지, 언론이 그에 어떤 책임이 있는지는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중앙일보는 '치유하며 나누기'를 얘기한다.
그러나 10·29 이태원 참사 등 무도한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는 가운데 치유와 나누기를 얘기하기 전에 세월호 유족들이 지금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거듭되고 있는 현실은 이들 언론에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보지 않으려 한다.
대통령 탄핵을 스스로 불러왔던 보수언론의 '세월호 모독', 비판을 넘어 조롱당해 온 '기레기 10년'은 지금에도 언론의 자기반성 없는 윤석열 비판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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