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간절함이라는 연료로 큰 불을 지피길

이명재 에디터
이명재 에디터

이재명 대표의 분노, 언론에 대한 그의 분노와 개탄을 이해한다. 언론의 '이재명발 공천 파동'이라는 보도들, 특히 자신의 배우자와 관련한 사천 의혹까지 들고 나오자 그는 연이틀 언론을 직격했다. "중립을 지켜야 할 일부 언론들까지 협잡을 해서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있다"고 그는 거세게 비판했다. 선거전에서 언론을 공격하는 것, 삼가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작정 발언을 한 것은 그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 언론으로부터 난타의 표적이 되고 있는 상황, ‘이재명 당 장악 위한 밀실 사천 공천’이니 ‘친명은 횡재하고 비명은 횡사’ 등의 십자포화의 매도와 같은 보도들에 대한 참고 참았던 감정의 토로로 읽힌다.

이재명에 대한 '언론 테러'

편파와 불공정을 넘어선, 권력과의 유착이나 밀착 정도가 아니라 일체화돼 있는 듯한 다수의 언론들, 게다가 이른바 진보언론에서조차 “사퇴하라”는 주장까지 나오는 사정은 언론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선거판에서 더욱 더 기울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절반은 없는 반쪽 운동장이라고 해야 할 상황이다. '살해 테러'로부터 생환한 이 대표에 대한 언론의 테러라고 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이 대표에게 진심으로 얘기하고 싶다. 언론에 중립을 기대하지 말라. 한국의 언론에 중립이나 공정 따위는 바라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발전한다면 그것은 '언론에 의해서'나 '언론과 함께'가 아니라 ‘언론에도 불구하고’ 이뤄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발전과 성숙은 언론이라는 역류와 저항을 뚫고 이뤄지고 있다는 그 현실을 재확인하는 것, 그같은 현실을 온전히 절감하는 것, 그것이 지금 이 대표가 겪어내야 할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언론보도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2024.3.5 [공동취재]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언론보도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2024.3.5 [공동취재] 연합뉴스

사회발전의 큰 변곡점인 선거를 맞아 언론은 그 현실과 본색을 더욱 명백하게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니, 이 대표에게 지금 더욱 필요한 것은 언론에 대한 분노 표출이 아니다. 그 분노의 심정을 그같은 언론, 그런 언론을 낳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연료로 삼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바꿀 수 있는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한 달여간 이 대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입증해야 한다. 

선거는 정치의 가장 뜨거운 순간이다. 큰 선거는 무엇보다 주인으로서의 민(民)을 확인하는 기회다. 그럼으로써 선거는 정치와 민주주의의 갱생의 기회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처럼 시민들에게 축제의 조건을 갖춘, 재생과 부활제로서의 선거의 의미가 더욱 큰 때가 또 얼마나 있었을까. 이 갱생과 미래로의 축제에서, 우리 사회 재생의 부흥회를 이끌려 하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 맡겨진 소임은 무엇인가.

이번 선거에서 여야 간의 승패가 어떻게 될지는 지금 분명치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가 역대 어느 선거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아니 그런 말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총선이 중요하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이번 선거는 단지 또 하나의 중요한 선거가 아니라 단 하나의 '절대 선거'이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서 이번 선거만을 기다려 온 이들의 마음은 무능하고 무도한 정권을 견제하는 정치세력이 단지 1당을 차지하거나 과반을 차지하는 정도로는 도저히 승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고대와 염원이 투표라는 총탄의 장전으로 오랫동안 준비돼 왔다는 것이다. 

그 염원의 크기, 뜨거운 기다림의 시간은 그러나 그만큼 낙관적인 전망의 원천이고 이유이지만, 그래서 또한 함정이다. 정권과 검찰, 언론의 기득권력 연합 동맹은 선거에 사활을 걸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거니와 무엇보다 보수 수구 정당의 변신술은 위력적이다.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변신과 표백들이 펼쳐지고 있다. 2004년 수백억 원의 기업 비자금을 대선 자금으로 수수한 이른바 '차떼기 사건'에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로 궤멸의 위기였던 이들은 '천막당사'에서의 읍소로 참패를 면했다. 2012년에도 이명박 정권 말기의 패색이 완연했던 선거 전망을 뒤집고 과반 승리의 역전을 이뤄냈다. 그만큼 그 반대편에는 뼈아픈 기억이다. 방심과 안일은 큰 댓가를 지불해야 했다.

심판의 불길은 여전히 활활 타고 있는가

지금 벌어지는 희한한 일들은 그 낙관론을 경계해야 할 이유를 더욱 키운다. 거기엔 윤석열 정권에 대한 부정평가의 역설이 있다. 지난 2년간 윤 정권에 대한 밑바닥 수준의 국민들의 평가는 그러나 그것이 곧 윤석열 정권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정이 실정을 덮고 악재가 악재를 잊게 하는 식의 윤 정권의 2년간은 오히려 조금만 다른 모습을 보여도 망각과 착시를 가져오는 역설을 낳고 있다. 게다가 국민들 앞에 나설수록 화를 돋웠던 윤 대통령은 지금 전국을 다니며 '민생토론회'라는 가설 무대를 차려놓고는 민생 파탄을 눈요기 쇼와 달콤한 사탕으로 발라버리고 있다. 국힘당 계보의 보수 정당들이 선거 때마다 연출했던 변신과 포장술은 2년의 기억을 지우고 국정 파탄에 대한 평가를 흔들리게 한다.

이들은 그야말로 필사적이다. 북을 치듯 선전대 역할을 맡긴 듯한 영화 ‘건국전쟁’의 제목처럼 마치 새로운 나라를 세우듯이 악착과 극력을 다하고 있다.

그와 같은 총력전, 그것이 일으키는 착시는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국민들의 심정에서 확고해 보였던 점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승리를 가르는 기준으로 여겨졌던 것, 단지 의석의 우세, 과반 의석 정도가 아니라 압도하는 것이라야 승리라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당연시됐던 선거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민심의 열기는 심판의 순간만을 바라보며 2년간을 하루같이 달려온 것에 스스로 지친 것인가. 더 큰 폭발을 위해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심판의 불길에 부을 기름과 심지를 찾지 못해 그 불길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이재명 대표에게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다만 사자처럼 용맹하고 담대하게, 또 여우처럼 지혜롭게, 라는 것이다. 용맹담대함으로 심판의 불길을 다시 활활 지펴달라. 절대 다수 국민들의 마음을 빈틈없이 가득 채우던 그 심판의 의지로 타올랐던 불길은 지금 여전히 뜨겁고 맹렬한가. 불길이 꺼져가고 식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징후를 알리는 경계 경보 신호가 감지되고 있지 않은가. 여우처럼 차가운 이성으로 냉철하고 치밀하게 살피라는 것이다. 그 자신이 먼저 그 같은 자문들 앞에 스스로 정면으로 마주서라는 것이다.

진짜 리스크를 극복하는 길

무엇보다 선거에 패배한다면 과연 '다음'이 있는가. 이미 악몽 같은 2년을 안간힘으로 버틴 국민들에게는 다음이란 없다. 2년간의 참담한 시절을 겪으면서 기진한 국민들에는 더이상 갈갈이 찢겨질 마음도, 산산조각 날 현실도 남아 있지 않다. 남은 절반의 ‘지옥문’이 열리기라도 하듯, 마지막 피 한 방울, 머리카락 한 올까지 뽑혀 나가듯 남아나는 것이 없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다음이란 것이 없는데, 자신에게는 다음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마음이야말로 진짜 '리스크'다. 어떤 사법 리스크보다 더 큰 리스크다.

이른바 친명이니 찐명이니 새로운 인물들이 급부상했다는 이번 공천 결과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친명이냐 찐명이냐가가 아니라 바로 그것, '다음'은 없다는 필사의 절실함과 간절함으로 채우느냐 아니냐이다. 그것이 없다면 어떤 새로운 인물들로 바꾼다고 해도 그것은 혁신이라기보다는 낡은 기득권을 새로운 기득권으로 대체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뭔가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낡은 우물을 갈아치우고 가죽을 벗기는 일에 비유된다. 그러자면 큰 솥단지가 필요하다. 그 큰 솥을 끓일 큰 불을 때야 한다. 그 큰 솥을 가득 채우고 큰 불을 땔 연료를 구해야 한다.

시민들의 절실함, 간절함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때 비로소 큰 솥과 큰 불은 마련될 수 있다. 이재명 대표는 시민들의 그 절박감만큼의 절박감으로 그 큰 솥을 채우고 불을 피울 때 언론의 편파니 불공정이니 따위도 그 불로 녹여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이라는 솥이 더 큰 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위협하는 어떠한 '리스크'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